1. 봉평리 암각화(鳳坪里岩刻畵)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1호
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
소 재 지 경북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 산102
시 대 청동기
2. 나씨 할매릉(羅氏祖母陵)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2호
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
소 재 지 경북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 산25일대
「나씨 할매무덤」설화는 다산면 노곡리 답곡마을에 전승되는 나씨 할매[소저시]의 인물담이자, 나씨 할매무덤의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4일 경북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 답곡마을 주민 민병태[남, 84]에게서 채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을 보면, 궁궐에 소저시라는 궁녀가 살고 있었다. 궁녀는 원래 결혼을하지 못하므로 소저시가 늙자 자신의 무덤 자리를 궁에서 연을 날린 후 연이 내려앉는 자리로 정하기로 했다. 소저시는 연을 날렸고, 이 연이 노곡리 뒷산의 나무에 걸렸으므로 그 나무 주변에 무덤을 만들었다. 소저시는 산 채로 묻혔는데, 이 무덤이 생긴 후에 한동안 이곳에서 쌀뜨물이 흘러 나왔다고 한다. 궁에 있었던 사람답게 무덤 안에 여러 유물도 함께 묻었는데, 안타깝게도 유물은 도난당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무덤 앞에서 빌면 복을 받는다고 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연이 걸렸던 나무도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 여겨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에서 제를 지낸다고 한다.
「나씨 할매무덤」의 주요 모티프는 ‘연으로 정한 무덤자리’, ‘쌀뜨물이 나온 소저시 무덤’, ‘신목이 된 연이 걸린 나무’ 등이다. 이 이야기는 보통 사람의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큰 소저시라는 궁녀의 무덤에 관한 인물설화이며, 쌀뜨물이 흘러 나왔다는 나씨 할매 [소저시] 무덤에 관한 내력을 담고 있으므로 지명유래설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덤 앞에서 정성을 드리면 복을 받는다거나 연이 걸린 나무가 신목이 됐다는 점에서 보면 기복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현재 정비돼 있는데, 이 무덤을 삼국시대로 추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현황으로미루어 보면 조선시대 이후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3. 미륵불상(彌勒佛像)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3호
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
소 재 지 경북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 산29-3
미륵봉(194m)에서 상곡마을 쪽으로 흘러내린 미륵골의 산중턱에 있는 상곡리 절터 내에 불상이 위치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불상을 미륵부처라고 부르면서 신성시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 보아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주변에는 고려~조선시대의 기와편과 청자편, 백자편 등이 흩어져 있다. 전체 높이는 150cm 정도이고, 하나의 바위를 이용해서 조각했는데, 얼굴과 몸체는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모돼 있다.
4. 대분(大墳)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4호
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
소 재 지 경북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 산81 일대
광도마을 북쪽으로 광도 앞골이 북쪽에서 작골과 불당골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111 중앙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 말단부에 남향해 대분 3기가 위치하고 있다. 북쪽 상부로부터 남쪽 아래로 정부인 나씨묘(貞夫人羅氏墓), 박형의 묘(正憲大夫知訓練院事朴公炯之墓), 박형의 아들인 박계조와 그의 부인 합장묘(通訓大夫行梁山郡守朴淑夫人全州柳氏合葬之墓)가 일렬로 자리 잡고 있다.
박형(朴炯)은 세종 때 무과에 등재한 이후 첨지중추원사, 동지중추원사, 도진무, 행첨지중추원사 겸 경상우도도절제사, 경상좌도수군절도사, 훈련원사를 지냈고, 이시애의 난 때에 원종공신이 됐다.
아들인 박계조(1465~1525)는 진주판관, 경산현령을 역임할 때 삼포왜란을 토벌한 공을 세워 양산군수로 승차했는데, 박계조란 이름은 부친이 나라를 위해 그 직무를 다했기에 세조가 사명(賜名)한 것이라 한다.
가장 북쪽 상부에 위치한 정부인 나씨묘는 2단으로 석축을 쌓아 터를 만든 뒤 상단에 봉분과 묘상비, 상석을 배치하고, 하단에는 석주 한쌍을 배열했다. 박형묘는 나씨묘에서 아래로 6m 가량 이격해 3단으로 터를 닦고, 상단에 봉분과 그 앞에 묘상비와 상석을 차례로 놓았다. 중단에는 석주 한쌍, 하단에는 문인석 한쌍을 차례로 배치했다. 박형묘에서 아래로 6m 정도 떨어져 위치한 박계조와 부인합장묘는 석축을 2단으로 구성해 터를 조성한 뒤, 상단에 봉분과 상석, 묘상비, 하단에 묘비 2개씩을 좌우로 대칭 배치했다.
특히 상단의 좌측 묘비는 귀부, 비신, 이수 등을 갖춘 것으로 조각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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