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의 향토문화유산을 찾아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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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향토문화유산을 찾아서(1)

고령군에서는 향토문화유산을 보다 체계적으로 등록·보존·관리해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하고 후세에 전승하고자 향토문화유산 지정 및 도지정문화재 승격, 정비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군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4건 중 기 소개(본지 100호 6면)한 4건을 제외한 10건을 연재를 통해 이번호부터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다음호에는 문화유산 5,6,7,8 연재합니다

1. 봉평리 암각화(鳳坪里岩刻畵)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1호
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
소 재 지  경북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 산102
시      대  청동기

 

1.봉평리 암각화.jpg
 
봉평리에서 대평리로 향하는 중간 지점에 있는 순평마을 동편에 형성된 해발 220m 야산의 서쪽 능선 사면 산록에 암각화가 위치하고 있다.
암각화가 새겨진 전체 바위면은 450×210cm 정도로 최하단부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비스듬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앞쪽 바닥에도 일부 암반이 노출돼 있다. 현재 암각화는 바위면 하부의 280×90cm 정도되는 범위에서만 확인되는데, 원래는 바위 전면에 새겨져 있었지만 상부는 풍화작용으로 박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암각은 바닥면에서 160cm 정도 위에 있는 바위면 중앙 상단부에 지름 10cm, 깊이 4cm 정도의 바위구멍이 한 개 파여 있다. 그 아래인 바닥으로부터 90cm정도 되는 바위면에는 대략 열다섯 개 정도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제작 방식은 폭 1cm 내외, 깊이 2~3mm의 규모로 바위면을 쪼아 홈을 낸 다음 여러 차례 문질러 음각선으로 형태를 표현했다.
바위면 오른쪽에는 마제석검형(磨製石劍形) 암각이 3개 정도 확인되는데, 모두 돌칼이 아래로 향한 모양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 1점은 검신과 손잡이의 형태가 세형동검(細形銅劍)과 유사하다. 그리고 왼쪽에는 톱니 모양의 기하문이 새겨져 있으며, 그 위쪽에는 말굽형으로 보이는 암각이 새겨져 있다. 바위면의 왼쪽에는 비파형동모(琵琶形銅棠)의 암각이 아래로 향하게 표현돼 있으며, 역시 아래를 향하고 있는 무경식석촉(無頸式石鏃)도 새겨져 있다. 그 외 가운데의 성혈을 중심으로 한 겹의 원을 둘러놓은 원형암각이 4~5점 정도가 확인된다. 그와 함께 바위면 전체에서 사선을 그어놓은 선각과 20여 개 내외의 쪼은 흔적이 곳곳에 있다. 한편 이곳에서 남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산록의 수직 바위면 하단에는 세로로 길쭉한 홈을 파놓은 여성성기형의 암각이 확인된다.
봉평리 암각화의 발견은 암각화의 제작 시기와 관련한 실마리를 확보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암각화 앞면의 퇴적층에서는 석기박편 포함층이 확인된 바 있고, 전면에 펼쳐진 봉평들에는 다수의 지석묘와 대규모 석기제작장 등이 분포하고 있다. 더불어 그림의 주요 모티브가 석검, 비파형동모, 세형동검 등으로 청동기시대 유물이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이 암각화는 봉평들 일대에 청동기시대 대규모 석기제작장을 운영했던 집단이 석기 제작과 관련한 제의를 행하면서 조성한 유적이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2. 나씨 할매릉(羅氏祖母陵)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2호
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
소 재 지 경북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 산25일대

 

2.나씨할매릉.jpg

 

 

「나씨 할매무덤」설화는 다산면 노곡리 답곡마을에 전승되는 나씨 할매[소저시]의 인물담이자, 나씨 할매무덤의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4일 경북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 답곡마을 주민 민병태[남, 84]에게서 채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을 보면, 궁궐에 소저시라는 궁녀가 살고 있었다. 궁녀는 원래 결혼을하지 못하므로 소저시가 늙자 자신의 무덤 자리를 궁에서 연을 날린 후 연이 내려앉는 자리로 정하기로 했다. 소저시는 연을 날렸고, 이 연이 노곡리 뒷산의 나무에 걸렸으므로 그 나무 주변에 무덤을 만들었다. 소저시는 산 채로 묻혔는데, 이 무덤이 생긴 후에 한동안 이곳에서 쌀뜨물이 흘러 나왔다고 한다. 궁에 있었던 사람답게 무덤 안에 여러 유물도 함께 묻었는데, 안타깝게도 유물은 도난당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무덤 앞에서 빌면 복을 받는다고 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연이 걸렸던 나무도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 여겨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에서 제를 지낸다고 한다.
「나씨 할매무덤」의 주요 모티프는 ‘연으로 정한 무덤자리’, ‘쌀뜨물이 나온 소저시 무덤’, ‘신목이 된 연이 걸린 나무’ 등이다. 이 이야기는 보통 사람의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큰 소저시라는 궁녀의 무덤에 관한 인물설화이며, 쌀뜨물이 흘러 나왔다는 나씨 할매 [소저시] 무덤에 관한 내력을 담고 있으므로 지명유래설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덤 앞에서 정성을 드리면 복을 받는다거나 연이 걸린 나무가 신목이 됐다는 점에서 보면 기복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현재 정비돼 있는데, 이 무덤을 삼국시대로 추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현황으로미루어 보면 조선시대 이후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3. 미륵불상(彌勒佛像)

 

3.미륵불상.jpg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3호
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
소 재 지  경북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 산29-3

 

미륵봉(194m)에서 상곡마을 쪽으로 흘러내린 미륵골의 산중턱에 있는 상곡리 절터 내에 불상이 위치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불상을 미륵부처라고 부르면서 신성시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 보아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주변에는 고려~조선시대의 기와편과 청자편, 백자편 등이 흩어져 있다. 전체 높이는 150cm 정도이고, 하나의 바위를 이용해서 조각했는데, 얼굴과 몸체는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모돼 있다.

 

 

4. 대분(大墳)

 

4.대분.jpg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4호
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
소 재 지 경북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 산81 일대

 

광도마을 북쪽으로 광도 앞골이 북쪽에서 작골과 불당골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111 중앙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 말단부에 남향해 대분 3기가 위치하고 있다. 북쪽 상부로부터 남쪽 아래로 정부인 나씨묘(貞夫人羅氏墓), 박형의 묘(正憲大夫知訓練院事朴公炯之墓), 박형의 아들인 박계조와 그의 부인 합장묘(通訓大夫行梁山郡守朴淑夫人全州柳氏合葬之墓)가 일렬로 자리 잡고 있다.
박형(朴炯)은 세종 때 무과에 등재한 이후 첨지중추원사, 동지중추원사, 도진무, 행첨지중추원사 겸 경상우도도절제사, 경상좌도수군절도사, 훈련원사를 지냈고, 이시애의 난 때에 원종공신이 됐다.
아들인 박계조(1465~1525)는 진주판관, 경산현령을 역임할 때 삼포왜란을 토벌한 공을 세워 양산군수로 승차했는데, 박계조란 이름은 부친이 나라를 위해 그 직무를 다했기에 세조가 사명(賜名)한 것이라 한다.
가장 북쪽 상부에 위치한 정부인 나씨묘는 2단으로 석축을 쌓아 터를 만든 뒤 상단에 봉분과 묘상비, 상석을 배치하고, 하단에는 석주 한쌍을 배열했다. 박형묘는 나씨묘에서 아래로 6m 가량 이격해 3단으로 터를 닦고, 상단에 봉분과 그 앞에 묘상비와 상석을 차례로 놓았다. 중단에는 석주 한쌍, 하단에는 문인석 한쌍을 차례로 배치했다. 박형묘에서 아래로 6m 정도 떨어져 위치한 박계조와 부인합장묘는 석축을 2단으로 구성해 터를 조성한 뒤, 상단에 봉분과 상석, 묘상비, 하단에 묘비 2개씩을 좌우로 대칭 배치했다.
특히 상단의 좌측 묘비는 귀부, 비신, 이수 등을 갖춘 것으로 조각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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