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태 문화관광해설사, 중화리 풍물단장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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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태 문화관광해설사, 중화리 풍물단장의 일상

고향에서 공직 10년
중화리에 뿌리 내려
고향 귀촌 문화해설

개진면 개포가 고향인 심규태(58) 문화관광해설사(중화리 풍물단장)의 삶은 굴곡이 많았다. 고향에서 공무원으로 출발해 군청과 쌍림면사무소, 읍사무소 근무 10여년 만에 당시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을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인근 도시로 나갔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공사 감리가 주 업무였는데 보람을 느끼면서 일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젊은 나이에 중풍 질환이 왔다. 수족 한 쪽이 마비되는 증상으로 삶의 의욕마저 상실할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가족을 생각하면서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오기가 생겨 치료에만 전념했다. 그 결과 의사가 놀랄 정도로 호전돼 갔다. 담당 의사는 그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빨리 병원을 찾았고, 두 번째는 환자의 체력이 받쳐주었고, 또 낳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젊었다는 것, 이 3박자가 잘 맞아서 회복이 빠르다는 것이다.


거의 완쾌 수준이었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고향인 고령에서 소규모로 건설업을 하셨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건설업에 동참했다. 마침 건설업 면허가 있었기에 아버지와 함께 건설업체를 만들어 공사 수주에 들어갔는데, 첫 공사가 중화리였다. 과거 공무원 때 낫질 어르신들과 두터운 인연을 쌓았고, 당시 청정지역이라는 매력에 이끌려 언젠가 이곳에서 살아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현실로 옮겨졌다. 2014년 중화리에 터를 구해 집을 짓고 살게 된 것이 어느덧 4년의 세월이 됐다.


첫해 어버이날 주민들이 회관에 모여 신명나게 한 판 놀았는데, 다음날 이순근 이장이 확인해보니 주방에 있던 냄비며 뚜껑이 모두 쭈그렁바가지가 돼 있더라는 것이다. 모두들 얼마나 두들기며 신나게 놀았던지 그야말로 난장판(?) 그 자체였다고 했다. 그때 이장은 문득 심규태씨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심씨가 대구에서 생활할 때 풍물을 정통으로 배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순근 이장은 이참에 풍물단을 하나 조직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심규태씨에게 타진한 결과 기꺼이 동의해 ‘중화리 풍물단’이 창단된 것이다. 14명으로 구성돼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회관에 모여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초창기 주민 모두가 찬성한 것은 아니고 더러는 시끄럽다고 불평하는 주민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들 주민 화합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고 이해를 해 주는 편이다.


정월이면 풍물단의 지신밟기로 새해를 열고, 좋은날이면 풍물로 한바탕 잔치마당을 여는데, 며칠 전 있었던 인문학 발표회 행사 때 식전공연으로 풍물 한마당으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해 극찬을 받은바 있다.


풍물단 창단과 비슷한 시기에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면서 관광객들에게 대가야 고령을 알리는데도 큰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 있다. 심규태 단장의 바램은 풍물단이 중화리로 한정하지 말고 낫질 5개리로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인터뷰에 배석한 이순근 이장은 “지금 생각해도 풍물단을 조직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심 단장 같은 훌륭한 선생님이 있고, 또 마을 주민 화합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라고 귀띔했다. 


심 단장은 부인 김경옥(55)씨와 슬하에 아들 형제를 뒀는데 큰 아들은 결혼을 했고, 남들이 부러울 정도로 부부 금슬이 좋다고 알려졌다.  

최종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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