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유씨(杞溪兪氏) 경송정(景松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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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기계유씨(杞溪兪氏) 경송정(景松亭)

경송정(대가야읍 장기리 37-2)

 

1. 경송정(景松亭) 유래(由來)

(1) 고려 말 좌찬승(左贊承) 벼슬을 하였던 유탄(兪)이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일으켜 조선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조선 왕조의 신하가 될 것을 누차 권유하였으나 불복하자 신분이 강등(降等)되어 고령향리(高靈鄕吏)가 되었다.

(2) 경송정(景松亭)은 공이 전조(前朝)인 고려 왕조에 대하여 꿋꿋한 절개를 지키고 기세(棄世)하자 후손들이 1941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37-2 번지 솥질 금산의 거북등 자락에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창건(創建)한 정자(亭子)이다. 

(3) 경송정(景松亭)이라고 현판을 재호(齋號)한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① 공이 고령의 호장(戶長)으로 신분이 낮아져 강속(降屬)되었어도 고려의 옛 도읍인 송도(松都)의 진산(鎭山)인 송악산(松嶽山)을 바라보면서 충절(忠節)을 지켜 송(松)을 취하였다.
②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변하지 않는 소나무처럼 절개가 꿋꿋하다는 의미의 ‘세한송백(歲寒松柏)’에서 유래된 말이다. 《논어(論語)》〈자한(子罕)〉에 이르기를, “추운 겨울철을 지내보아야 송백(松柏)이 나중에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라고 하였는데, 역경(逆境) 속에서 지조를 변치 않는 공을 비유하여 칭송하는 의미로 소나무 송(松)을 이름하였다.
③ 소나무 한 줄기에서 천 만 가지로 장차 몇 억으로 기운차게 뻗어가듯이 자손들이 번연(蕃衍)하기를 염원하는 뜻에서 소나무를 뜻하는 송(松)을 취하였다.

2. 건축형태

 경송정(景松亭) 입구에는 애일문(愛日門)이라고 편액(扁額)한 3칸의 솟을 대문이 있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우측 2칸은 온돌방을 만들고 그 사이의 1칸은 대청을 놓았다.

3. 주변 경관

경송정(景松亭) 입구에는 찬승공(贊承公) 유탄(兪)의 고려 왕조에 대한 지조와 절개를 기리는 듯 가지가 길게 축축 늘어진 키가 큰 소나무가 낙락장송(落落長松)의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으며 ‘주부(主簿) 기계유공(杞溪兪公) 휘(諱) 득주(得珠) 유허비(遺墟碑)’와 ‘기계유씨(杞溪兪氏) 삼효자(三孝子) 세적비(世蹟碑)’가 충효가문(忠孝家門)의 내력(來歷)을 말없이 웅변(雄辯)하고 있다.

 

 

4. 추숭인물(追崇人物) 유탄(兪)

 

고려 때 조회(朝會)와 의례(儀禮)를 맡아보던 관아(官衙)인 통례문(通禮門)의 지후(祗候) 벼슬을 지낸 유보(兪甫)의 후예로 여말(麗末) 좌찬승(左贊承)을 지낸 유탄(兪)이 고려조의 세신(世臣)으로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일으켜 조선을 창업(創業)할 때 항거하고 절개를 지켜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급을 낮추어 고령현(高靈縣) 호장(戶長)을 지냈다. 이러한 사실은 정조 1년(1777년) 이진흥(李震興)이 편찬한 연조귀감(掾曹龜鑑)의 불복신벌정록(不服臣罰定錄)에 기록되어 있다.

5. 경송정기(景松亭記)

 경송정(景松亭)은 고령군 동쪽 금산(錦山)에 있다. 유씨(兪氏) 여러분의 중조(中祖)되시는 좌찬승(左贊承) 탄공(侹公)을 위해 세운 정자이다. 그런데 경송정이란 이름을 금산(錦山)에서 취하지 않고 송(松)으로써 나타내었으랴. 첫째 이유는 찬승공(贊成公)이 고려조(高麗朝)의 세신(世臣)으로서 이태조(李太祖) 임금이 등극(登極)한 날에도 옛 임금에 대한 절개(節槪)를 굽히지 않았으므로 이에 벼슬을 낮추어 고령현(高靈縣)의 호장(戶長)으로 보내매 고령에서 사시다가 거기서 돌아가셨는데 그 분이 평생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 개성 송악산(松嶽山)이었던 고로 자손들이 그 뜻을 받들어 이 송(松)으로 표방(標榜)하여 사모(思慕)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뜻에서 따온 바요. 둘째는 솔(松)은 상록수(常綠樹)로서 아무리 차고 조락(凋落)하는 겨울에도 산줄기에서 푸르러 어두움이 없음은 마치 찬승공(贊承公)의 충절(忠節)과 늠름(凜凜)한 풍도(風度)와 합치(合致)되는 일이며 셋째는 오늘날 찬승공(贊承公)의 후예(後裔)가 번성함이 이와 같으니 한 줄기에서 천 만 가지로 장차 몇 억으로 뻗어 아름다움을 자아낼 것이니 이러므로 정자 아름에 솔이 좋지 않겠는가? 이같이 솔로써 표방(標榜)하는 세 가지 까닭은 이미 여러분이 다 아는 바이라서 내가 거듭 말할 필요가 없으니 누구나 깊은 산속의 솔을 보면 저절로 알 것이다. 그런데 정정하게 자라도 재목(材木)이 못되면 나무꾼이 베어 아궁이의 땔나무가 되기도 하고 아름드리의 재목이 되면 목수가 기둥이나 들보로 삼기도 하니 사물을 보고 취하고 버리고 싫어하게 됨이 자기의 탓인가? 남의 탓인가? 오늘날과 같이 어려움이 심한 세상에 다스려지는 때가 반드시 오리니 원건대 여러분은 가정에서 자녀를 잘 가르치고 나아가서는 일가(一家)를 권면(勸勉)하여 경전(經典)을 읽게 하고 나라 다스리는 길을 강론(講論)하며 출세(出世)에 예비(豫備)하여 때에 따라 대비하면 후일에 나라의 큰 재목이 반드시 될 것이니 이러한 열매를 세상에서 얻는 것이 찬승공(贊承公)을 욕되지 않게 하는 길이요 또한 이 정자를 빛내게 하는 도리니 갖은 정성을 기울이어 힘쓸 것이니라. 행여나 이 말을 멀리하지 말며 물리치지 않기를 바라노라. 나에게 유인식(兪仁植) 형이 글을 청했는데 이는 문중의 어른 판순(判淳), 병우(炳祐), 병년(炳年), 병완(炳完) 등 제씨(諸氏)의 부탁에 따른다고 했다.

경신년(庚申年 : 1980년) 맹춘(孟春 : 음력 정월) 광주(光州) 노근용(盧根容)  

(註釋 1) 중조(中祖)
쇠퇴(衰退)한 집안을 다시 일으킨 조상(祖上)을 뜻하며 중시조(中始祖)의 약칭(略稱)이다.

(註釋 2) 표방(標榜)
어떠한 명목(名目)을 붙여 주의(主義), 주장(主張)을 앞에 내세움. 또는 남의 선행(善行)을 칭찬(稱讚)하고 기록(記錄)하여 여러 사람에게 보임

(註釋 3) 조락(凋落)
초목(草木)의 잎이 시들어 떨어짐

(註釋 4) 늠름(凜凜)
의젓하고 당당(堂堂)함

(註釋 5) 풍도(風度)
풍채(風采)와 태도(態度)

(註釋 6) 들보
크고 두꺼운 목재를 뜻한다.
 
(註釋 7) 강론(講論)
학술이나 도의(道義)의 뜻을 해설하며 토론함

6. 경송정(景松亭) 상량문(上樑文)

 높으신 분의 행장(行狀)을 남긴 곳에 풍기는 향기는 몇 백 년을 우러러 보아도 그 흠구(欽求)하는 마음은 같고 흥망성쇠(興亡盛衰)하는 세상 가운데 천년을 넘겨도 넉넉히 증거가 남으니 무릇 사람의 떳떳한 도리는 다 지혜롭게 덕을 좋아하며 더욱이 어진 이를 간절히 사모하기를 더하니라. 조용히 생각건대 찬승공(贊承公)은 전조(前朝) 고려의 조신(朝臣)이라. 일찍이 백성들과 짝이 되어 한마음이 되어 고려의 기울어짐을 한탄하고 천명(天命)이 덧없음을 슬퍼하며 다만 슬픈 옛 시를 읊으실 뿐이었다. 먹구름에 송악산(松嶽山)이 다 잠기고 가시밭에 누운 말이 홀연(忽然)히 꿈을 깨고 가야(伽倻)의 옛 터에 봄은 돌아와 달빛에 두견(杜鵑)의 우는 소리만 들렸다. 세상길은 차디차매 덧없는 목숨을 멀리 구름과 호수 위의 조각배에 맡기고 다만 왕의 총애(寵愛)를 받고 살기 어려움을 알 뿐 이었다. 강동(江東)의 순채(蓴菜)는 서로 낌새를 먼저 보는데 지나지 않는데 그 모습이 가리워져 희미하니 감히 오는 세상일을 듣기 어렵구나. 그 온화(溫和)하고 담백(淡白)한 마음을 선왕(先王)에게 바치어 저승에 외로운 뜻을 안고 들어가시니 이것이 자손들에게 끼친 일경(一境)이 되니라. 정자의 규모가 장엄(莊嚴)하고 자손들이 정성스런 향불(香火)을 올릴 경건한 묘소가 완연(宛然)하다. 항시 집안 단합의 어려움과 지난 날의 묵은 원한(怨恨)을 풀 수 없음을 한탄하다가 여기 두서너 칸의 남향집 짓기를 꾀하여 서로 모여 의논하고 터를 닦아 설계하여 사업이 꽃망우리지고 무르익으니 서로 성금(誠金)을 내어 기와를 사고 또 나무를 사게 되었도다. 부조(父祖)로부터 이어받은 사업이라 집 뜰이 바르고 계단 마련이 좋고 주방(廚房)을 내어 정결히 씻고 요리하는 시설도 잘 갖추었다. 경영하기 일 년만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하루같이 건립되어 소나무 울창한 이곳 신령(神靈)이 무궁토록 기뻐하시리라. 모든 제도가 이미 이루어져 후손이 조상께 제사를 드림에 어려움이 없도다. 난간(欄干) 사이에 산세(山勢)의 절경(絶景)을 바라볼 수 있고 풍기는 향기 더욱 경건하므로 보는 사람마다 갸륵하다 하리라. 애오라지 짧은 노래를 부르고 마룻대 올리는 일을 돕나니 마룻대의 동쪽으로 눈을 던지면 금산(錦山)의 수려(秀麗)한 빛이 맑은 하늘에 꽂혀 있고 인가(人家)는 창연(蒼然)한 옛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다. 남으로 눈을 돌리면 회선대(懷先臺)위에 구름이 덮혀있고 정령(精靈)이 봉황수레를 달려 가는듯 굽어보니 인파(人波)가 웅성거린다.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금천(錦川)의 물빛이 유리와 같아서 그 옛날 그 때 일을 생각하니 갈매기와 벗하기로 깊은 맹세하던 일이 완연(宛然)하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몇 개의 홀(笏)과 옥빛 같은 솔숲이 미인의 눈썹과 같도다. 유유(悠悠)히 하늘 한쪽을 보고 생각하니 그 분은 완연히 있으되 소식이 없구나. 위를 바라보니 밝고 빛나는 하늘만 밝다. 순환(循環)하는 대기(大氣)는 예나 지금이나 같고 오는 가는 물결의 이치는 어긋남이 없도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뭇 자손들이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세시(歲時)의 제물(祭物)이 정결하니 누구인들 복을 받지 않으리오. 엎드려 원하기는 상량(上樑)한 후에 무덤 속 혼령(魂靈)이 편안하고 산수(山水)가 광채(光彩)를 더하고 풍우(風雨)를 피하고 새와 쥐의 피해를 멀리하며 처마와 기둥이 내내 해가 없고 술과 단술을 후하게 올리고 기름진 고기를 드려 오래오래 공경하기를 바라오니 후손의 복록(福祿)이 바야흐로 성(盛)하고 선조의 아름다운 공적이 변하지 않고 더욱더 빛나리라.

신사년(辛巳年 : 1941년) 중하(仲夏 : 음력 5월) 광산(光山) 김수(金銖) 지음

(註釋 1) 행장(行狀)
한문체의 하나로, 사람이 죽은 뒤에 그의 행적을 적은 글을 말하며 보통 죽은 이의 제자나 친구·동료·아들 등이 죽은 이의 세계(世系)·성명·자호·관작·관향(貫鄕)·생몰연월·자손·언행 등을 기록하여 명문(銘文)·만장(輓章)·전기 등을 만들거나 역사 편찬의 자료로 쓴다.

(註釋 2) 흠구(欽求)
정성을 들여 구함

(註釋 3) 찬승공(贊成公)
여말(麗末) 좌찬성(左贊成)을 지냈으나 고려조의 세신(世臣)으로서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혁명을 일으킬 때 항거하고 절개를 지켜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급을 낮추어 고령현(高靈縣) 호장(戶長)으로 삼았던 유탄(兪)을 말한다.

(註釋 4) 전조(前朝)
바로 전대의 왕조를 말한다.

(註釋 5) 조신(朝臣)
조정에서 벼슬살이를 하는 신하를 말한다.

(註釋 6) 천명(天命)
하늘의 뜻을 말한다.

(註釋 7) 강동(江東)의 순채(蓴菜)는 서로 낌새를 먼저 보는데
진(晉)나라 때 오중(吳中) 출신 장한(張翰)은 자가 계응(季鷹)인데,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 강동(江東) 오중(吳中) 의 순챗국(蓴羹 : 순갱)과 송강(松江)의 농어회(鱸鱠 : 노회)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은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어찌 수천 리 타관에서 벼슬에 얽매여 명성과 작위를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人生貴得適志, 何能羈宦數千里以要名爵乎?]” 하고는 즉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고사에 근거해 한 말이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註釋 8) 담백(淡白)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함

(註釋 9) 선왕(先王)
옛날의 어진 임금을 말한다.

(註釋 10) 일경(一境)
어떤 곳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을 말한다.

(註釋 11) 완연(宛然)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주 뚜렷함

(註釋 12) 신령(神靈)
풍습(風習)으로 섬기는 모든 신

(註釋 13) 애오라지
순우리말 뜻은 다만, 오직, 마음에 부족하나마, 겨우, 그나마 라는 뜻이다.

(註釋 14) 마룻대
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를 말한다.

(註釋 15) 창연(蒼然)
색깔이 푸른 모양. 오래된 모양

(註釋 16) 회선대(懷先臺)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알터에 있는 높이 10여m의 기암절벽(奇巖絶壁)으로 임진왜란시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개진면 양전동에 살았을 때 효심(孝心)이 깊어 매일 이 대(臺)위에서 멀리 쌍림면 고곡리 칠동 선영을 바라보고 멀리서 절을 하였다고 하여 회선대(懷先臺)라고 하였다.  

(註釋 17) 정령(精靈)
죽은 사람의 혼백(魂魄 : 넋)을 뜻한다.

(註釋 18) 세시(歲時)
1년 중(中)의 때때. 1년 동안의 제철을 말하나 본문에서는 시사(時祀)·시향제(時享祭)라고도 하는 묘제(墓祭)를 뜻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註釋 19) 복록(福祿)
타고난 복과 나라에서 주는 벼슬아치의 녹봉(祿俸)을 뜻한다. 

자료제공 : 총무 유상근(兪尙根)
집필 : 향토사학자 이동훈(李東勳)
정리 : 최종동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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