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박씨(高靈朴氏) 호장공파(戶長公派)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특집

고령박씨(高靈朴氏) 호장공파(戶長公派)

만남재<쌍림면 만남재길 26(평지리)>

 

1. 씨족연원(氏族淵源)

(1) 고령박씨(高靈朴氏) 시조(始祖) 박언성(朴彦成)
① 경명왕(景明王)의 8대군(八大君) 분봉(分封)
현종 3년(1662년) 박승건(朴承健)이 발간한 밀양박씨(密陽朴氏) 임인보(壬寅譜)와 영조 36년(1760년)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세욱(朴世旭)이 작성한 신라(新羅) 소원록(溯源錄)에 경명왕(景明王)의 8대군 분봉사실이 처음 기록되어 있다.
·박언침(朴彦忱)은 밀성대군(密城大君) 지금의 밀양(密陽), ·박언성(朴彦成)은 고양대군(高陽大君) 지금의 고령(高靈), ·박언신(朴彦信)은 속함대군(速咸大君) 지금의 함양(咸陽), ·박언립(朴彦立)은 죽성대군(竹城大君) 지금의 죽산(竹山), ·박언창(朴彦昌)은 사벌대군(沙伐大君) 지금의 상주(尙州), ·박언화(朴彦華)는 완산대군(完山大君) 지금의 전주(全州), ·박언지(朴彦智)는 강남대군(江南大君) 지금의 순천(順天), ·박언의(朴彦儀)는 월성대군(月城大君) 지금의 경주(慶州)
② 고령박씨(高靈朴氏) 시조(始祖)는 시조왕(始祖王) 박혁거세(朴赫居世)의 30세손이고 신라 54대 경명왕(景明王)의 둘째 왕자인 고양대군(高陽大君) 박언성(朴彦成)이며 본관(本貫)의 유래(由來)는 고양대군(高陽大君)의 봉토(封土)가 지금의 고령(高靈)인데 연유(緣由)한다.
(2) 고령박씨(高靈朴氏) 분파(分派)
① 1987년 정묘(丁卯) 대동보(大同譜) 편찬시 부창정공파(副倉正公派)와 주부공파(主簿公派)의 상계(上系) 선조명(先祖名)이 실전(失傳)되어 상호 보조를 맞추기 위해 고양대군(高陽大君)의 7세를 기준으로 호장공파(戶長公派), 부창정공파(副倉正公派), 주부공파(主簿公派) 등 3계종파(三系宗派)로 분류하였으며 그후 15개 지파(支派)로 분파(分派)되었다.
◉ 호장공파(戶長公派) : 중시조(中始祖) → 내대어사(內臺御使) 박섬(朴暹)
교수공파(敎授公派), 영참판공파(嶺參判公派), 직강공파(直講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경참판공파(京參判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읍취헌공파(挹翠軒公派) 등 7개 지파(支派)
◉ 부창정공파(副倉正公派) : 중시조(中始祖) → 부창정(副倉正) 박환(朴還)
사정공파(司正公派), 현감공파(縣監公派), 무숙공파(武肅公派), 감사공파(監司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판관공파(判官公派), 소윤공파(少尹公派) 등 7개 지파 (支派)
◉ 주부공파(主簿公派) : 중시조(中始祖) → 북부주부(北部主簿) 박연(朴連)
21세 한성부(漢城府) 우윤(右尹) 박상빈(朴尙彬)을 우윤공파(右尹公派)의 파조(派祖)로 하고 있어 1개 지파(支派)
②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고족(高足)이며 외종숙(外從叔)이었던 내암(萊菴) 정인홍(鄭仁弘) 문하에서 출입하여 학문이 높았던 무민당(无悶堂) 박인(朴絪)은 자신의 문집인 ‘무민당집(无悶堂集)’에서 자신의 세계도(世系圖)를 소개하면서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었음을 아래와 같이 인정하였다.

本貫慶尙道高靈縣 新羅國王封其子爲高陽君 子孫因爲姓貫 而羅麗以來累經兵燹 世系未詳 故以副倉正公爲始祖云耳

본관은 경상도 고령현이며 신라 국왕이 그 아들을 고양군으로 봉하였고 자손들은 이로 인하여 관향을 고양(현재 고령)으로 삼았다. 신라와 고려 이래 여러 차례 병화(兵禍)를 겪어 세계는 확실하거나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부창정공을 시조로 이를 뿐이다.

(3) 고령박씨(高靈朴氏) 호장공파(戶長公派) 파조(派祖)
고양대군(高陽大君) 박언성(朴彦成)의 장자(長子)인 박인황(朴仁晃)으로 고려 초기에 태어나 향직(鄕職)인 호장(戶長)을 역임하였다. 명종 5년(1175년) 고령지역에 중앙관리인 감무(監務)가 파견되기전에는 중앙집권체제(中央集權體制)에 의한 통치권(統治權)의 범위가 미치지 않았으므로 호장(戶長)이 고령 지역의 토착세력(土着勢力)으로서 입법(立法), 사법(司法), 행정(行政) 등 전권(全權)을 행사하였으며 오늘날 지방자치단체장(地方自治團體長) 역할을 하였다.
(4) 고령박씨(高靈朴氏) 관내 세거(世居) 현황
①『2000년 인구주택총조사 성씨 및 본관보고서』에 의하면 고령군 관내에 고령박씨는 186가구 471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② 호장공파(戶長公派) 중 교수공파(敎授公派)는 쌍림면 백산, 산당, 개진면 직리, 우곡면 사촌리 등지에, 부창정공파(副倉正公派) 중 현감공파(縣監公派) 후손들은 쌍림면 하거 1리, 우곡면 대곡1동에, 소윤공파(少尹公派) 후손들은 우곡면 도진리, 쌍림면 하거 1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2. 현조(顯祖)
(1) 고려시대
① 박지순(朴之順)
고양대군(高陽大君)으로 피봉(被封)된 시조 박언성(朴彦成) 후손들은 3대에 걸쳐 향직(鄕職)인 호장(戶長)을 세습(世襲)하였으나 박지순(朴之順)이 상경종사(上京從仕 : 서울에 올라가서 벼슬길에 나아감)하여 고려조의 대장군(大將軍)으로 강서인(江西人)의 난(亂)이 일어나자 초기에 평정한 공로로 초삼등(超三等)과 검교흥위위대장군(檢校興衛威大將軍 : 종3품)의 직을 받아 최초로 재경관인(在京官人)이 되었다. 배위는 여진(女眞)을 토벌한 전공(戰功)으로 고양군(高陽君)에 봉해지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동평장사(同平章事)에 올랐던 여주이씨(驪州李氏) 고령입향조 이헌(李憲)의 따님이다.
② 박섬(朴暹)
내대어사(內臺御史) 수화(秀華)와 흥위위(興衛威) 별장(別將) 정(正)의 따님인 경산김씨(京山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려조에서 급제한 후에 내대어사(內臺御史)를 역임하였으며 호장공파(戶長公派)의 중시조(中始祖)이다.
③ 박돈(朴暾)
통례문사인(通禮門舍人) 윤정(允晶)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려조에서 정순대부(正順大夫)와 고려 전기 왕실의 보첩(譜牒) 등을 관장하던 종부시(宗簿寺)의 종3품 관직인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를 지냈다.
④ 박사겸(朴思謙)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돈(暾)과 흥위위(興衛威) 상호군(上護軍) 연(璉)의 따님인 청주한씨(淸州韓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통직랑(通直郞)으로 호구(戶口)·공부(貢賦 : 공물과 세금)·전량(錢粮 : 돈과 식량)의 정사(政事)를 관장하던 판도사(版圖四)의 정랑(正郞)과 지춘주사(知春州事 : 현재 춘천시장)을 역임하였다.
⑤ 박원후(朴原厚)
지춘주사(知春州事) 사겸(思謙)과 전령치사(典令致仕) 성세(成世)의 따님인 부윤조씨(富潤趙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려조에 중직대부(中直大夫)와 여러 궁(宮)에 올리는 음식물, 포목(布木) 등(等)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官廳)인 내섬시(內贍寺)의 종3품 벼슬인 내섬윤(內贍尹)을 지냈다.
(2) 조선시대
① 박지(朴持)
중직대부(中直大夫) 내섬윤(內贍尹)을 지낸 원후(原厚)와 사재감사(司宰監事)를 지낸 운보(云寶)의 따님인 강양이씨(江陽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호조좌랑(戶曹佐郞)을 거쳐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냈다. 호장공파(戶長公派)에 속한 7개 지파(支派)의 도조상(都祖上)이다. 몰년(沒年)은 미상(未詳)이다. 묘는 고령군 쌍림면 평지리 만대산 술좌(戌座)이다. 배위는 호조판서(戶曹判書) 중로(仲老)의 따님인 공인(恭人)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공을 추모하는 재실(齋室)인 만남재(萬南齋)는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48호로 지정되어 있고 묘소 입구에는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세운 “고령만대산박씨조지(高靈萬代山朴氏祖地)”라고 대서(大書)한 석주(石柱)가 있다.
② 박효림(朴孝臨)
초명은 여(旅)이고 자는 숙보(肅甫)이며 호는 무첨당(無忝堂)이다.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낸 지(持)와 호조판서(戶曹判書) 중노(仲老)의 따님인 공인(恭人) 죽산안씨(竹山安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건원능참봉(健元陵參奉)을 거쳐 물고기를 잡는 어장(漁場) 및 하천과 호수에 관계되는 일을 맡아본 관청인 사재시(司宰寺)에 소속된 으뜸 벼슬인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를 지냈다. 생몰년(生沒年)은 미상이고 묘소는 합천군 용주면 고품리 소룡산 발봉 아래 유좌(酉坐)에 있었으나 실전(失傳)되었다. 고령박씨 호장공파 중 향파(鄕派)의 파조(派祖)이다. 배위는 시중(侍中)을 지낸 효건(孝謇)의 따님인 영인(令人) 여흥민씨(驪興閔氏)이다.
③ 박수림(朴秀林)
초휘는 정(旌)이며 자는 영보(榮甫)이다.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낸 지(持)와 호조판서(戶曹判書) 중노(仲老)의 따님인 공인(恭人) 죽산안씨(竹山安氏) 사이에서 세종 원년(1419년) 차남으로 태어났다. 서부령(西部令)을 거쳐 교하현감(交河縣監)으로 벼슬을 마쳤으며 품계는 봉렬대부(奉列大夫)였다. 성종조(成宗朝)에 원종공신(原從功臣)의 호를 하사받았다. 공은 호장공파(戶長公派) 중 경파(京派)의 파조(派祖)이다. 성종 4년(1474년) 향년 56세에 병으로 졸(卒)하였다 묘는 용인시 내사면 식금리 사좌원(巳坐原)이다. 배위는 우찬성(右贊成)에 증직된 계복(季復)의 따님인 영인(令人)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④ 박유동(朴庾童)
초휘는 유생(庾生)이며 자는 군부(君富)이다.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를 지낸 효림(孝林)과 시중(侍中)을 지낸 효건(孝謇)의 따님인 영인(令人) 여흥민씨(驪興閔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구부교수(大邱府敎授)를 지냈다. 종손가(宗孫家)인 교수공파(敎授公派) 파조(派祖)이며 생몰년(生沒年) 및 묘는 미상(未詳)이다. 배위는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 탁(濯)의 따님인 류씨(柳氏)이다.
⑤ 박금동(朴金童)
초휘(初諱)는 금생(金生)이며 자는 군미(君美)이다.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를 지낸 효림(孝林)과 시중(侍中)을 지낸 효건(孝謇)의 따님인 영인(令人) 여흥민씨(驪興閔氏)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김종서(金宗瑞)를 도와 두만강 유역의 6진(六鎭) 개척과 여진족 정벌에 전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증직(贈職)받았다. 영참판공파(嶺參判公派)의 파조(派祖)이다. 생몰년(生沒年)은 미상(未詳)이다. 묘는 고령군 쌍림면 평지리 만대산 청하공묘(淸河公墓) 좌강(左岡) 술좌원(戌座原)이다. 초취(初娶)는 예문관(藝文館) 봉교(奉敎)를 지낸 성림(成林)의 따님인 증(贈) 정부인(貞夫人) 월성이씨(月城李氏)이며 재취(再娶)는 참판(參判)을 지낸 소(昭)의 따님인 증(贈) 정부인(貞夫人) 밀양박씨(密陽朴氏)이고 삼취(三聚)는 군수(郡守)를 지낸 홍(洪)의 따님인 증(贈) 정부인(貞夫人)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⑥ 박숙동(朴叔童)
초휘(初諱)는 숙생(叔生)이고 자는 군행(君行)이다.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를 지낸 효림(孝林)과 시중(侍中)을 지낸 효건(孝謇)의 따님인 영인(令人) 여흥민씨(驪興閔氏)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성균관(成均館) 직강(直講)을 지냈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합천군 용주면 고품리에 은거하였다. 직강공파(直講公派) 파조(派祖)이다. 생몰년(生沒年) 미상(未詳)이다. 묘 및 배위는 실전(失傳)이다.

3. 고령(高靈) 정착 및 세거


고양대군(高陽大君) 박언성(朴彦成)의 장자(長子)로서 호장공파(戶長公派) 파조(派祖)인 박인황(朴仁晃)이 고려 초기부터 봉지(封地)인 고령(高靈)에 정착한 후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박효림(朴孝林)의 후손인 향파(鄕派)는 묘지 및 재실 관리를 위하여 영남지방에 세거하였으며 교하현감(交河縣監) 박수림(朴秀林)의 후손인 경파(京派)는 1400년대 초반에 상경종사(上京從仕)를 위하여 고령을 떠나 현재 서울, 보은, 파주, 양주, 포천, 대전 ,논산, 음성, 이천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4. 호장공파(戶長公派) 분파(分派) 및 파조(派祖)


(1) 향파(鄕派) :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박효림(朴孝林) 후손 지파(支派)
① 교수공파(敎授公派) : 대구부 교수(大邱府 敎授) 13세 박유동(朴庾童)
고령박씨 대종손(大宗孫)이 속한 지파이며 고령지역 세거(世居) 고령박씨 중
1000여 년 이상 정주(定住)하여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지파(支派)이다.
② 영참판공파(嶺參判公派) : 증(贈) 병조참판(兵曹參判) 13세 박금동(朴金童)
③ 직강공파(直講公派) : 성균관(成均館) 직강(直講) 13세 박숙동(朴叔童)
박정희(朴正熙),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을 배출한 지파(支派)이다.
(2) 경파(京派) : 교하현감(交河縣監) 박수림(朴秀林)의 후손 지파(支派)
① 승지공파(承旨公派) :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15세 박세광(朴世匡)
② 경참판공파(京參判公派) : 증(贈) 이조참판(吏曹參判) 15세 박세정(朴世貞)
③ 진사공파(進士公派) : 진사(進士)로 사헌부 집의(執義) 15세 박세필(朴世弼)
주요 인물은 4조판서(四曹判書)를 지낸 박장원(朴長遠), 암행어사(暗行御使) 및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박문수(朴文秀), 6조판서(六曹判書)와 좌의정(左議政)에 올랐던 박영원(朴永元), 공조판서(工曹判書)·형조판서(刑曹判書)를 지낸 박영보(朴永輔) 등이 있다.
④ 읍취헌공파(挹翠軒公派) : 경연관(經筵官), 읍취헌(挹翠軒) 14세 박은(朴誾) 요절(夭折)한 조선 최고의 천재 시인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이 있다. 

5. 직강공파(直講公派) 고찰


(1) 고령박씨(高靈朴氏) 성주(星州) 입향조(入鄕祖) 박망달(朴望達) : 성균관(成均館) 직강(直講) 박숙동(朴叔童)의 아들로서 현령(縣令)을 지낸 박망달(朴望達)이 연산군 10년(1504년) 6촌인 읍취헌(揖翠軒) 박은(朴誾)이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류(連累)되어 사형(死刑)되자 화(禍)를 염려하여 세거지 고령을 떠나 성주로 이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2) 고령박씨(高靈朴氏) 직강공파(直講公派) 성주(星州) 세거지(世居地)
① 성주 입향조 박망달(朴望達)의 장현손(長玄孫)으로 호군(護軍)을 역임한 박천서(朴天瑞)의 후손들은 성주군 선남면 성원리 황신(黃新)마을에 살았다.
② 차현손(次玄孫)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와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한 박천신(朴天信)의 후손들은 성주군 월항면 장산리 철산(哲山)마을로 분파하여 살았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박천신(朴天信)의 11세손이다.
(3) 박성빈(朴成彬)의 구미시(龜尾市) 상모동(上毛洞) 전거(轉居) :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영변군수(寧邊郡守)를 역임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선고(先考) 박성빈(朴成彬)은 1893년 전후에 성주군 월항면 장산리에서 부친 박영규(朴永奎)를 따라 외삼촌이 있는 칠곡군 약목면으로 이사를 하여 거주하다가 1916년경 처가(妻家)인 구미시(龜尾市) 상모동(上毛洞)으로 전거(轉居)한 것으로 파악된다. 

6. 교수공파(敎授公派) 근·현대인물


(1) 박환권(朴煥權 : 1932년)  → 육군 소령
(2) 박용택(朴鏞澤 : 1936년) → 대구경북콘크리트협동조합 17,18대 이사장
(2) 박광동(朴光東 : 1941년) → 현대증권 상무이사
(3) 박형준(朴炯俊 : 1973년) → 녹십자 부장

자료제공 : 고령박씨 호장공파 세보(2014년) 및 기타 문헌에 근거해 집필
집필 : 향토사학자 이동훈(李東勳)
정리 : 최종동 편집국장 ​

구독 후원 하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