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라> 직업에 보람 느끼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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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필나라> 직업에 보람 느끼는 날

 며칠 전 정오쯤, 점심 수저를 막 드는 순간 휴대폰 전화가 방정맞게 울린다.
“뭐 좀 물어보입시더, 거가 잘 죽는 거 가르쳐 주는 곳 맞심니꺼?”
“???”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혀 대꾸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잘 죽는 거를 가르쳐 주다니….”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네~ 할머니, 여기는 웰다잉 고령지회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아, 잘 살고 잘 죽을라카마 이리로 전화 해 보라케서….

지난 4월 18일 대한웰다잉협회 고령군지회 개소식이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참석해 아직은 다소 생소한 단어인 “웰다잉이 뭐꼬?” 란 것에 모두들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설렜다.
개소식 날 지회장님이 대한웰다협회 고령지회에서 펼치는 사업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한 보람이 있었던지, ‘웰다잉지도자 기본과정’ 수강에 대해  문의전화가 많았다, 더러는 웰다잉 지도자의 과정이 개설되면 꼭 연락해 달라는 신청자의 부탁도 있었다.  또 지인에게 사전연명의료계획서를 전달하겠다며 용지를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용지에 작성을 한다고 법적 효력을 가질 사항이 아니기에 그분들에게는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에 따른 긴 설명이 필요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등록된 기관, 상담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의 충분한 설명을 듣고 난 뒤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니 매우 난감해하는 눈치다.
나야말로 참 난감한 상황이다. “어르신! 생명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귀한 권리이므로 충분한 상담 후에 결정을 하시는 게 중요하다.”고 장황하게 말씀드렸더니 겨우 이해를 하시는 듯 “한번 방문하겠노라며 전화를 끊는다.
며칠 전 지인의 전화를 한통 받았다. 사연인즉 어머님이 건강이 안 좋아 병원에 가야하는데 그 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
건강이 나빠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가는 환자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권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평소 건강할 때는 연명의료 필요 없다고 할지라도 막상 건강이 악화되면 삶에 대한 집착이 남달리 강해지는 게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진 삶에 대한 강한 본능이자 의지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그 집을 방문했다. 그냥 담담히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얘기와 호스피스 제도에 대한 애기를 해드린 후 작성을 도와 드리겠다고 했다. 어르신은 딸들과의 충분한 대화가 오고 갔음인지 흔쾌히 서투른 글씨로 필요한 서식에다 힘없는 손가락에 힘을 줘가며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성명을 기입했다. 내일이면 병원으로 가서 정밀 진찰을 받으실 분이 행여 반감이라도 가질까 걱정이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어머니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마친 후, 두 딸도 덩달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며 “맨날 미루고만 있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하고나니 그렇게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다.”며, 세 모녀가 활짝 웃는다.
그날 저녁 또 한통의 상담전화가 걸려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한 상담요청 전화다. 언니네 부부에게 꼭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서 등록하도록 하고 싶다는 처제였다.
이제 조금씩 죽음준비 교육이라는 매뉴얼이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이 되는구나! 싶어 괜히 기분이 들뜬다.
한 개인의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 가도록 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활동이기에 오히려 그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오늘은 ‘웰다잉상담사’라는 직업에 대한 보람이 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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