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세 사회의 출현과 ‘군자불기(君子不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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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20세 사회의 출현과 ‘군자불기(君子不器)’

요즘도 ‘그릇’을 사용하여 사람의 능력과 국량(局量)을 말한다. “저 사람의 그릇이 크다” “저사람의 그릇은 좁쌀만큼 작다” 등등이 그러한 용례이다. 사실 공자는 이러한 용례를 즐겨 사용한 사람이다. 그는 제(齊)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들어서 춘추시대가 낳은 최고의 영웅 중의 한 사람인 관중(管仲)을 두고 “관중의 그릇이 작다”라고 말했다. 관중은 재상(宰相)을 맡으면서 관직의 겸직을 허용하지 않아 재정 낭비를 방치하고 자신이 왕인 양 온갖 사치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군자를 그릇이 큰 사람으로 설명하면 될 터인데 왜 그릇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것은 그릇이라는 말 자체에 주목해 봐야 한다. 공자는 그릇을 생업과 연관시켜서 사용하고 있다. 즉 그릇은 특정한 용도에만 한정해서 쓰이는 도구를 말한다.


그릇이 도구라는 한정된 의미를 나타낼 때 군자와 그릇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다. 군자는 특정한 직종에 속해서 한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자는 제빵사, 요리사, 농부, 어부가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여러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또 직종을 떠나서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삶의 문제에 대해 조언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군자는 빵을 만들 수 없고 요리를 할 줄 모르고 땅을 갈 수도 없으며 배를 몰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군자는 사람들이 겪으면서 힘들어하고 모든 사람들이 겪는 난관을 뚫어낼 수 있는 길을 찾는 사람이다. 공자는 바로 군자의 이러한 측면을 부각시켜서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 말은 군자는 특정한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고 일반적인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군자불기(君子不器)”라고 표현한 것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오늘날 자신의 삶을 덜 후회하고 더 의미 있는 삶으로 인도할 수 있는 ‘군자불기’가 더 절실해 보인다.


현대인은 고대인에 비해 평균 수명이 크게 늘었다. 건강관리를 잘 하면 사람이 120세까지 살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60세라도 ‘노인’ 대접 받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노인의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상향 조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옛날에 70세를 먹기가 힘들다는 뜻에서 고희(古稀)라고 했지만 지금 70세가 기본인 사회가 되고 있다.

이렇게 초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군자불기”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기대 수명이 늘어난 만큼 사람은 여러 가지 특정한 기술을 익혀서 은퇴 이후에도 먹고 살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술보다는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을 갖춰서 미래의 삶을 항해할 수 있는 기준을 가져야 할까?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변화와 곡절이 생길 가능성이 그만큼 늘어난다. 변화를 맞이했을 때 사람은 숙고를 통해 합리적 선택을 내려야 한다. 이때 그 판단이 적절하면 이후의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부적절하면 이후의 삶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판단의 중요성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중요하다. 좋은 판단을 할 수 있으면 그 상황에 맞는 가장 절실한 방안을 찾아낼 수가 있다. 전체를 보는 안목을 가진다는 것은 더욱더 부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120세의 사회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자신의 삶을 덜 후회하고 더 의미 있는 삶으로 인도할 수 있는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자세가 더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군자불기”는 짧은 시간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서 지속되는 항해를 목적지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지혜를 가지라는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외(社外)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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