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영웅들이 갖추어야할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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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눈물은 영웅들이 갖추어야할 감정이다

​                             김 년 수

                              수필가

남자는 쉽게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사회분위 속에서 실컷 목 놓아 울어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제 한번 실컷 울어보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을 듯하다.


남자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져 대한민국 사나이들은 노소(老少) 불구하고 눈물을 보여서는 안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남자는 태어나 3번 울어야 한다고 배웠는데, 태어날 때 울고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울며, 나라가 망했을 때 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눈물이 메말라 버려 건조한 광야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의 모습가운데 촉촉한 눈물 한 방울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그만큼 이 시대와 사람들이 냉랭(冷冷)해지고 건조해지고, 메말랐다는 증거가 아닐까?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수치와 부끄럼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을 보고도 탄식의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아파하지 않고 무관심으로 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는 목 놓아 실컷 울고 싶은 장소를 하나 추천하고 있다.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를 위한 사절단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로 들어갈 때 만주벌판을 처음 본 연암은 그 광활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소감을 이렇게 외쳤다.


‘참으로 울기 좋은 장소로다!(好哭場可以哭矣) 한번 이곳에서 실컷 울어보고 싶구나’


같이 갔던 정(鄭)진사(정각鄭珏)는 호곡장이란 연암의 외침에, 이렇게 넓은 벌판을 보고 하필이면 호곡장, 즉‘울음 울기 좋은 터’라는 표현을 쓰냐고 묻는다.
‘울음은 슬퍼서만 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인 칠정(七情)이 극에 이르면 모두 울음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즉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 사랑과 증오, 그리고 욕심, 이런 감정들이 극에 다다르면 결국 울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영웅호걸들은 잘 우는 사람들이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연암은 진정한 영웅과 천하의 미인은 모두 잘 우는 사람이라며 리더의 눈물을 긍정했다.


차가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사는 것도 멋있어 보이지만 눈물이 없다면 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눈물은 남자들의 금기가 아니라 영웅들이 갖추어야 할 당연한 감정이다.

영웅은 울 때를 알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英雄善泣 美人多淚)’라고 했다. 차가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사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사는 사람 같고 멋있어 보이지만, 따뜻한 가슴이 없으면 많은 사람을 품에 안을 수 없다. 따라서 따뜻한 가슴은 눈물의 샘이기 때문에 이 눈물의 샘이 마른 사람은 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라오면서 ‘남자란 눈물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가정의 기둥이요, 나라의 동량(棟梁)이 되는 남자가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려서는 큰일을 하지 못한다는 뜻의 가르침이었지, 남을 따뜻하게 품을 가슴을 가지지 말라는 가르침은 아니었다.


요즈음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서 국민들은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진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지도자를 보지 못했으며, 오히려 여?야 정치인들의 쌈박질에 눈살을 찌푸렸다.

메르스 사건에도 죽음을 걸고 치료에 임하는 많은 의료인들을 오히려 응원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은 없고 ‘질책’에만 매달려 있었다. 여의도 정치판에서 매일 불을 품어대는 바람에 지난여름 극심한 가뭄을 겪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온 나라가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데도 아픈 농민의 가슴을 적셔주는 눈물이 정치인들에게는 보지 못한 것 같다. 농민들은 뜨거운 햇빛아래에서 가뭄과 사투를 벌리는데, 여의도 정치인들은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놓고 싸움만 하는 모습만 보였다.


리더는 조금은 비어있는 듯한 어리숙함이 있어야 하고, 따뜻한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눈물이 남자들의 금기가 아니라 영웅이 갖추어야 할 당연한 감정인 듯하다.


눈물은 패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승자들도 남몰래 눈물을 흘린다. 승리의 축배에는 땀이 반, 눈물이 반이다. 눈물이 승자를 만들고, 영웅을 만든다. 영웅은 눈물을 먹고 자란다. “눈물은 패했을 때 흘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승했을 때 흘리는 것이다.”


맨유 무리뉴 감독은 가는 곳마다 우승을 일궈 ‘스페셜 원“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그러나 무리뉴가 늘 승승장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가 맡은 레알 마드리드가 라이벌 FC바르셀로나에 패했을 때 가진 인터뷰에서 “눈물은 패했을 때 흘리는 것이 아니라 이겼을 때 흘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의 말처럼 무리뉴는 우승의 고지에 올랐을 때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 영웅선읍(英雄善泣). 영웅은 울기를 잘한다는 말이 있다. 다만 울어야 할 때를 알고 아무 데서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비는 눈물로 천하를 얻었다고 한다. 울기만 잘 울어도 천하영웅이 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의 유명한 천하쟁패도 눈물로 막을 내린다. 승자인 유방도, 패자인 항우도 마지막에는 똑같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물은 그 색깔이 달랐다. 초패왕(楚覇王) 항우는 사면초가(四面楚歌)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항우의 군대는 해하(垓下)에 보루를 구축했지만 군사는 적고, 양식은 거의 바닥이 나 있었다. 그 상태에서 한(漢)나라 군대와 제후의 병사들에게 여러 겹으로 포위당했다. 이윽고 밤이 되자 한군이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楚歌)를 불렀다. 항우가 크게 놀라 말했다.

 “한군이 이미 초나라의 모든 땅을 점령했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초나라 사람들이 저렇게 많을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고 항우는 한밤중에 일어나 술을 마셨다. 산을 뽑을 만큼 힘이 세고, 온 세상을 덮을 만큼 기세등등했던 영웅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항우는 이렇게 눈물을 흘린 후 혼신의 힘을 다해 포위망을 뚫고 오강(烏江)에서 면목이 없어 강을 건너지 못하겠다며 자결하고 만다. 


한고조(漢高祖) 유방도 항우와 똑같이 두 뺨에 몇 줄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유방이 눈물을 흘린 것은 자결을 택한 항우와 달리 천하를 제패하고 금의환향했을 때의 일이다. 


유방도 울었고 항우도 울었다. 천하의 패권을 겨룬 두 영웅이 마지막에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똑같은 눈물이지만 그 명암은 달랐다. 항우는 졌을 때 울었지만, 유방은 끝났을 때 울었다.

 인생이 끝나는 것은 패배했을 때가 아니라 포기했을 때라는 말이 있다. ‘무면도강’을 들먹이며 강 건너기를 포기한 항우는 패배를 패배로 끝내고 말았다. 진짜 패배는 패했을 때가 아니라 포기했을 때 찾아오는 것임을 항우는 보여주고 있다. 눈물 없는 인생은 없다. 그러나 눈물만 있는 인생도 없다.

특별한 순간까지는 눈물을 감춰라. 졌을 때 울지 말고 끝났을 때 울어라. 영웅은 울 때를 안다. 다들 울 때 홀로 울지 않을 수 있다면 그대는 영웅이 될 자격을 갖췄다. 울고 싶을 때 울지 않는 사람은 패배를 패배로 끝내지 않는다.

 차가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사는 것도 멋있어 보이지만 눈물이 없다면 큰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눈물은 남자들의 금기가 아니라 영웅들이 갖추어야 할 당연한 감정이다. 영웅은 제때 울 줄 알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울고 싶을 때는 참지 말고 울어라.


이 시대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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