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군민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공직자 여러분! 정확히 1년 전 오늘, 새롭게 달라질 고령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군민의 이름으로’힘차게 출범한 민선 8기가 어느새 1주년을 맞았습니다.‘젊은 고령! 힘 있는 고령!’이라는 원대한 꿈을 향해 가는 민선 8기 고령호의 항해는 언제나 하나 된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는 군민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과 격려라는 연료 덕분에 오늘도 순항 중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더불어, 항상 군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지역의 재도약을 위해 함께 해주신 군의회 의원님들, 그리고 한결같이 자신의 ...
쌍림면 개실마을 ◆ 이인임(李仁任)본관은 성주이며 자는 자중(子重)이고 호는 승암(勝岩)이다. 검교시중을 지낸 아버지 포(褒)와 경주군부인 설씨 사이에서 충선왕 4년(1312년) 차남으로 고령군 운수면 연봉리에서 태어났다. 처음 문음(門蔭)으로 전객시승(典客寺丞)이 된 후 전법총랑(典法摠郞)을 거쳐 공민왕 7년(1358년)에는 좌부승선(左副承宣)이 되었다. 이듬해 홍건적이 침입해 의주를 함락시키자 서경존무사(西京存撫使)에 임명되어 홍건적에 대비했고, 1361년의 재차 침입했을 때에도 크게 활약했다. 1363년에는 원나라...
문화누리 분수대 ◆ 이옹(李蓊)본관은 상산이다. 수의부의를 지낸 석보와 단인 봉화금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봉대부 예문관 한림, 예습관을 역임했다. 문학사장이 한 세상에 이름을 드러냈다. 묘소는 성주군 가천면 법전동 상법림촌후 해좌에 있다. 배위는 대사간 술의 딸인 영인 죽산안씨이다.※ 참고문헌 : 성산이씨 세보(무자보),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 이유석(李惟碩)본관은 성산이며 자는 대이(大而) 호는 매헌이다. 국포 문룡과 참봉을 지낸 취해(就海)의 딸인 진양하씨 사이에서 선조 37년(160...
낙동강 수변 관광개발(두레관광지) ◆ 이서(李서) 본관은 광산이며 자는 이직이고 호는 동호이다. 진사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소모관으로 활약했던 모재(茅齋) 홍우와 참봉 개(漑)의 딸인 진양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명종 21년(1566년) 11월 12일 태어났다.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의 문인이며 문학과 의로운 행실로 사림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선조 30년(1605년) 진사에 오르고, 선조 41년(1608년)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었으나 불사했다. 광해군 1년에 서황산찰방에 제수되었고, 동년에 스승인 대사간한...
대가야종묘 ◆ 박경덕(朴慶悳)본관은 고령이고 자는 응초(應初)이며 호는 소암(素庵)이다. 유학(幼學) 지국(砥國)과 의조(儀朝)의 딸인 현풍곽씨 사이에서 영조 38년(1762년) 태어났다. 백부(伯父) 한국(翰國)에게 출계하였다. 정조 14년(1790년) 증광(增廣) 무과에 급제한 후 통정대부 장기현감을 거쳐 평안도병마우후 겸 토포사(討捕使)를 지냈으며, 유문집(遺文集)이 있다.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 겸 우림장군에 제수한다는 교지(敎旨)가 전한다.순조 29년(1829년) 8월 8일에 졸했다. 묘소는 고령군 우곡면 예곡동...
5월 하우스 수박으로 전국 제일의 맛과 품질을 자랑해 수박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고령수박은 우곡면이 주산지로 낙동강변의 사질양토에서 뛰어난 기술과 벌을 이용한 친환경 수정과 영양분 공급, 매년 정밀 토양 검정에 의한 맞춤비료를 시용하고 시설 내에서의 다년간 이어짓기(연작)는 토양병해 및 생리장해 등 연작장해가 발생하게 된다. 타 지역에서는 이러한 연작 장해가 문제가 되고 있어 농가에서는 토양관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토지를 태양열 소독하고 녹비작물 재배로 땅심을 키우는 등의 방법으로 토양관리와 병해충 방제 등 ...
이진아시왕 대가야국은 AD 42년에 건국해 562년 신라에 멸망할 때까지 520년간의 흔적이 현재 고령관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시대별, 분야별로 고령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본지에서는 2017년 고령문화원에서 발행한 ‘고령군 인물지’를 근거로 가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재평가하기 위해 이번호부터 연재하기로 했다. 2. 고려, 조선시대 인물문무관(文武官) ◆ 강군보(姜君寶)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증(贈) 중대...
신철휴 선생 기념비(우곡면 우곡로 1146) ▣ 고령체육회 발족에도 기여 1946년 3월 고령읍(현, 대가야읍) 쾌빈리 소재 중앙여관 사무실에 당시 체육인들이 모여 고령체육회를 결성했다.당시 참여한 인사로 영남체육회 창립13인 중의 한사람이며 우리나라 빙상계의 거목인 차성호(車性鎬) 선생을 비롯해 애국지사 해영(海影) 신철휴(申喆休) 선생, 유 일(兪逸)씨, 김홍식 전 국회의원, 유상호 전 도의원 등 장년층과 서규원, 이준구, 이동환, 이우년, 최인두, 김세균, 석태균, 정규택, 김문배, 이하영, 문위준씨 등 젊은...
신철휴 선생 내외분(부인 김소선 여사)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이 병원이지 시설이나 치료약도 제대로 없었고, 치료나 투약 역시 형식적이었다. 병원에 들어온 지 1개월이 지난 어느 날 병원에서는 나가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선생은 등에 업혀 다시 감방으로 왔다. 이제는 기진맥진해 앉아 있을 힘마저 없어 늘 누워 있게 됐다.이 딱한 사정을 본 같은 감방의 죄수들은 밖에 나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종종 간수의 눈을 피해 ‘참새 새끼’ 또는 ‘지렁이’를 잡아다 먹였다. 여기에서 선생은 효과를 얻어 점차 건강이 회복됐다. ...
해영 신철휴 선생 어둠 컴컴한 지하 비밀실에는 몇몇 동지들이 폭탄을 만들고 있었고, 그들이 만든 폭탄은 한쪽편에 쌓여져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김성근은 나직한 그러나 힘주어 해영 선생 일행에게 말했다. ‘동지들 참 잘 왔소, 조국 강토는 지난번 3.1만세 사건으로 말미암아 피로 물들이고 있고, 2만 우리 동포는 맨 주먹으로 항쟁(抗爭)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하루속히 단 하나의 폭탄이라도 더 만들어서 일제를 때려 부셔야만 하지 않겠소. 자~ 동지들, 먼저 내가 시범으로 만들어 볼 테니 ...
신철휴 선생 묘소(대전 국립현충원) 저항기(抵抗期)의 광복운동(光復運動) 1. 비운(悲運)의 조국을 등지고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조약(韓日合邦條約) 조인 이후 대한제국조선(大韓帝國朝鮮)으로 개칭하고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설치한 일제는 초대 총독에 사내정의(寺內正毅)를 앉히고 강압과 흉계(凶計)는 날이 갈수록 심해만 갔다.그해 11월에는 우리 한국인이 저작한 각 학교용 교과서는 모조리 몰수하는가 하면 총독부에서는 소위 식민지교육(植民地敎育)을 위한 교원심득(敎員心得)이란 짓을 만들어 공포했다. 이제는 ...
신철휴 선생 흉상(우곡면 우곡로 1146) 고령군 고령면(현, 대가야읍) 고아리에서 1898년 출생한 해영(海影) 신철휴(申喆休, 이하 해영) 선생은 일제(日帝) 강점기인 1919년 20대의 젊은 나이에 가족과 고향산천을 뒤로하고 만주로 망명했다.국가와 민족이 풍전등화와 같은 엄중한 시기에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오로지 민족의 독립만을 위한 결단이었다. 만주로 건너간 해영 선생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1919년 3월 해인사 지방학림사건에 대구, 현풍, 고령지역 책임담당으로 활동했다.독립운동의 산실인 만주 신흥무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