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시인 / 국제문인협회 회원) 나에게 주어진 귀한 하루무작정 걷는다나의 애마인 신발과 함께 갈 곳을 정하지도 못한 채바람이 귓가에 투정하는 소리 따라따가운 햇볕이 미는 방향 따라무작정 걷는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애마는 무거워지는데머리는 가벼워지고가슴은 자유로워지고 있다 가슴에 숨 쉴 조그마한 공간이 생긴다그곳에 그대를 부른다 그대가 웃는다무작정 같이 걷는다인생 여정
시인 이문익 너와 함께 무수히 거닐었던호수 같은 강변 저 멀리붉은 노을이 피면 하늘은 온통 그리움으로 물들어 가고보에 물소리 네 맑은 웃음처럼귓전을 맴돌아 흐른다 어둑어둑 땅거미 가슴에 내리고상현달빛 물에 어리면 부서지는 은파, 애절한 시가 되어강물을 적시며 노래를 하고 네 체온이 남아있는 내 가슴에는 그리움이 노을처럼 핀다.
시인 이문익 단풍 향기무심하게 강물에 흐르고푸른 하늘엔바람도 구름을 안고산 넘고 강 건너 들판을 지나정처 없이 흘러가는데 일렁이는 기억 너머로갈꽃이 춤추는 해거름 들녘에서동무들과 어울려소 치며 꼴 베고 놀던사금파리 같은 갈색 향수와유년의 시간이 겹쳐잔잔하게 파문이 쌓여만 간다 하교 길십오 리 굽은 신작로를 뛰다가 걷다가 징금다리 개울가에 책 보따리 던져 놓고피라미를 잡고 놀던 소년이어느새가슴 한 곳이 비어버린서리가 내리는 중년이 되어 서 있다.
시인 이문익 빛에 찌든 삐쩍 마른 어둠을 개고 하얗게 쉰 세월의 저 강에 저린 가슴 풀어놓으면해빙기질퍽이는 비탈길에서 봉합한 시간들이눈에 녹아내린다 겨울이 남아있는 잿빛 하늘이 낮게 흐르는 강에는 낡은 허주에 기러기 울음만 쌓여가고뒤듬바리 걸음으로 쫓아온 날들은뒷짐을 진 채 돌아서 있구나 스산한 계절 사이로회색 바람이 불어오던 날낙동강 모래톱에 묻은 상념의 뿌리가 어지럽게 자란 강변에는 갈밭을 배회하는 바람이 생각을 여미고 간다.
시인 이문익 은하수 푸른 강가엔견우의 한숨 가득하고하염없는 직녀의 통곡은강물로 흐르네일 년 삼백예순날마르지 않는 눈물바다에단 하루오작교 다리 놓아견우직녀 만나는 날무심한 하늘에는 짓궂은 비 추적추적 내리는 구나
시인 이문익 회상의 강가에 흔들리는 내 영혼말간 하늘에 그리움 엮어네 이름 부르면강물이 소리 내 흐르고눈꽃처럼 네 모습 가슴에 핀다 하얗게 얼어붙은 기억 저 깊은 곳에는만년설처럼 빙하가 흐르고그날에 멈춰버린 생각의 조각들숱한 별이 되어 쌓여 가는데 길 잃은 바람 어둠을 부여안고어서가자고 밤을 재촉하면오랜 전 지워버린 창백한 네 이름 석 자알 수 없는 여로에서 꿈을 꾼다.
시인 이문익 네 체온이 묻어날 것 같은빛바랜 빈 의자에는 나른한 햇살이 졸고 있고서산 노을에 가슴이 젖은 바람빈 의자에 비켜 앉아회상의 먼 바다에 잠들면수은등 불빛 피어나는어스름 강변에는 풀벌레 소리 맑은 은하수를 이루고깊어가는 소설한 밤윤슬 따라 흔들리는 갈꽃 향기사방이 가을로 가득한데갈 곳 잃은 고즈넉한 달빛빈 의자에 기댄 채 검푸른 강만 하염없이 바라보는구나
이문익시인 주홍빛 노을이낮게 흐르는 강가에 회상에 젖은 바람이 불어오면 붉게 물든 하늘은 노을이 빚어낸 눈부신 오선지에세월이라는 악보를 그리고바람은 쪽배를 타고 비켜 가버린 세월 속 나목에 앉아 바이올린 연주를 하지만시린 눈밭에서눈荀을 키우는 산 목련처럼잠자던 시어들은 서걱거리는 갈밭에서 꿈을 키우고시는, 세월의 뜨락에 흔적을 모아뒹구는 낙엽에 그리움 엮어 세월을 그린다.
가을 하늘 다소니 그리는 마음잘 못 이루다가설핏설핏 노루잠 속으로 살포시 왔다 가버린 그미 그림자 은가람에 윤슬처럼 흐르는 지난 날 이야기 애움길 너머해거름에 꽃노을 피는 하늘 멀리 가을을 타는 참붉이 가슴 번놓고 맴도는 고추잠자리 나래에 띄워 보내고 늘솔길 거닐던구름발치 너머로 멀어져간가나른 하얀 얼굴시나브로 다가오는 그미의 해맑은 하늘 격랑의 세월 알 수 없는 내일은긴 꼬리를 달고 어두운 터널을 향하는데격랑의 세월을 지고 가는 반복되는 일상은 충혈된 눈으로 또 하루를 꿰맨...
김청수시인 부처 아닌 게 없더라 천년 고목에 보름 달빛이 촛불처럼 걸렸습니다산문(山門)에 들어 묵언하며 지낸 지도 달포가 지나가고그렇게 겨울의 끝자락에서 다시 새봄을 만났습니다산새 노랫소리에 새벽 아침을 열고 솔숲에 들면세상에 다 들어내 놓고말하지 못하고 살아온 삼십년 세월의 보따리를 풀어계곡물에 철철 흘려보냈습니다산길에서 만나는 모든 풀잎과 부처 아닌 게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곽호영시인 고혹적인 자태로진한 향 풍기는 아까시아꽃 촉촉한 피부가애기 궁뎅이처럼 탱탱하다 새하얀 옷깃 속뇌쇄적인 몸매는일벌조차 향락으로 빠트린다 봄이 지나간다 아까시 향 뿌리며또,이렇게한 봄이 지나간다
춘강 이종갑시인·시조시인 조용한 봄날이었지.당신의 그때 그 눈 속엔욕망의 슬픈 눈빛이 별빛처럼 빛났습니다.그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몰랐지만,차가운 겨울밤에도 별처럼 빛났습니다.까만 조약돌이 그저 반짝이는 줄로만 알았습니다.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욕망이 회오리로 일렁이던 그 눈빛.그것이 추억일까… 아픔일까…푸르던 그 입술의 풍경을 깨트리지 못해눈자위 검은 가로등으로 서 있어야만 했던물속에 달의 깊이를 가르쳐 주던 그대여.풍진세상의 걸레가 되어 구름을 밟노라면갈잎에 걸린 바람처럼 한없이 뜨겁습니다.허공에 걸린 저 눈빛…….새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