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조(시인·소설가) 영순은 작은 돌을 하나 집어 들고 일부러 호수의 가장자리에 툭 던졌다. 작고 힘없어 보이는 물결이 일었다. 그러나 그 물결은 힘을 잃지 않고 달이 있는 곳까지 거뜬히 가서 달을 나뭇잎처럼 일렁거리게 했다. 자신도 무엇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영순은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감격인 듯 눈물 번진 눈자위와 어설픈 웃음의 입 모양이 거울을 보는 것처럼 느껴져 얼른 바위에 다시 걸터앉으며 볼에 번진 눈물을 두 손으로 훔쳤다. 그 때였다. ‘삐-이’ 하고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아!”영순은 흐르는 피...
서상조(시인·소설가) 작은 호수엔 반달이 조심스레 발을 담근다. 저물어 가는 가을의 그리움 같은 달이 영순을 앞서 호수를 찾은 것이다. 보고 있으면 가지 않고 보지 않으면 어느새 성큼 가버리는 저 달의 걸음이 흐르는 세월의 모양일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덧 낯선 시집생활이 삼 년을 다 채워 가고 영순은 꽤나 길었던 그 세월을 마음 다독이며 잘 견뎌왔다. 저녁 설거지가 끝난 뒤에는 집 옆의 호숫가, 자그마한 바위에 걸터앉아 능금같이 상큼한 스물다섯 살의 마음을 풀어놓았다가 주워 담기를 수없이 하였었다. 그 사이에 팔뚝만큼의 굵...
곽도경 시인 플러그를 뽑자 서울 신림동 어느 반지하폭우에 갇힌 가족들빠져나오지 못하고생을 마감했다는 뉴스 참담하다 자동차, 플라스틱, 비닐, 전자제품인간이 편하자고 만든 것들이부메랑 되어 재앙으로 돌아오는 병든 세상지구 어디쯤에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야다시 새살 돋고 치료될까 에어컨을 끄고 부채질을 하니허파 속으로 바람이 들어온다지구를 위해우리를 위해나는 지금 플러그를 뽑는다
정순분시인 바람이 시려파르르 경끼를 한다 햇살, 비, 바람살결 부비며 새잎 올리고 시간 여행 즐겼더니황혼에 물들었네! 금산재 내리막길 자동차 움직임 따라떼구르르 폴폴 후두둑정전기를 일으킨다 곤두박질 친 잎사귀젖은 몸 짓눌리고마른 몸 바스러진다 프로필한국문인협회 고령지부 회원
오해옥시인 사랑하고 싶다눈뜨는 아침도이글대는 정오도빛 따라해거름까지 그물에 얽힌 새우처럼바다 품속 파도에서파닥대고 싶다 노을 붉은 당신과약속하지 않아도그 자리그 틈바구니 변치 않는 건계획을 세우는 그 순간의 첫 감정 따개비와 바위에게 철썩 처얼썩순환하는 사랑 이야기듣는다 거센 파도가 쳐도찰싹 붙어살아가고 싶다 고령 쌍림면 출생, 〈문장〉 수필 2017,〈한국시학〉 시 신인상 등단, 통일부장관상(2017년 한민족통일협의회 백일장) 수상, 대구문인협회·문장작가회·죽순문학회·고령문협 회...
설화영(시인) 고개 들어 아스라이 낙동강을 바라보게 돌아보면 굽이진 세월 금산재 허리 따라 바람의 길은 회천을 가슴에 품어 가야의 혼으로 길을 열었네 머리 푼 역사의 오솔길 위에 삶터를 지난 수많은 영혼들은 슬픔의 칠성판 위에 숨을 죽이고 짝 잃은 쑥국새 처절히 울고 지친 나그네 자줏빛 노을이던가 청정한 새벽에 서린 기운 여기 대가야 산림 숲 정혈의 푸르름 무성한 잎새로 청아한 새소리 영원하여라
이길호(시인) 문득 어린 시절 생각에담벼락을 의지하며물구나무를 서 보았네 하늘 바다엔조각구름이 떠다니고나무들은 머릴 풀어바람결에 깃발처럼 흔들고 있네 세상을 거꾸로 보니시간도 되돌아가잊었던 풍경이 다시 보이네
김영식 (시인) 청춘은아침 햇살이다청초한 풀잎의 이슬이다 시냇가의 싱싱한 송사리떼의신선함이다 옛날 내가 잃어버린추억이다 번개처럼 번쩍천둥과 함께 사라진꿈이었다.
강기철고령문인협회 회원, 고무신STUDY 글방 회원 거짓 없이 투명한 유리잔에 순수한 얼음 다섯 개가 먼저 담겨져 잔을 차갑게 식히고 난 후 이윽고 버번 특유의 스모키하면서 달달한 향과 과일향 그리고 고소한 견과류 향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황금색 위스키가 담기고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탄산과 오랜지가 가니쉬로 얻혀진 잭 다니엘 하이볼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사장님이 말씀 하셨다 "자 이리오게 같이 한 잔 하세" "오늘도 수고 많았어, 강 군이 없었으면 요즘처럼 바쁜 시기에는 나 혼자는 무리였을 꺼야 , 그렇다고 ...
강기철고령문인협회 회원, 고무신STUDY 글방 회원) 필요한 만큼의 바람은 풍선의 모양을 만들고 가벼워지게 한다.그러나 그 이상의 행운은 풍선을 부풀려 터트리거나 우주로 날려 버리고 만다.그렇게 듣고 사장님의 저 배를 보니 곧 둘 중 하나의 작용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아니 괘씸하고 미운 마음에 꼭 그리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기도 했었다.그러나 진짜 독하게 행운을 싹쓸이 해간 인간은 그런 표시조차 나지 않는다 했다.허우대 멀쩡하고 미끈하게 생긴 얼마 전 다녀간 사장의 25살 외아들 이야기다.듣기로는 어려서 부터 거...
이 종 갑시인·시조시인 두껍게 옷을 입는 그런 날이 잦아졌다어두운 고샅길을 울며 가는 가랑잎들뒷산에 걸린 조각달 입술이 시퍼렇다 창앞에 잎 다 지운 라일락을 짚고 서면덧없이 흘러버린 한생이 휘감기고조용히 고요를 찢는 냇물소리 처연하다 목없는 수수대가 팔 내둘러 더듬는 밤바람이 시려운 듯 하나둘 불도 꺼지고멀리서 개짖는 소리 적막이 흔들린다 내다 버리고 싶은 무거운 이밤을하얀 저 떨림은 또 누구의 흔들림인가바람에 눈물을 짓는 별들이 수심차다.
강기철고령문인협회 회원고무신STUDY 글방 회원 총·칼 앞에 두 손을 꽁꽁 묶여서 끌려가던, 눈물의 이별 고개를 넘어 갈 때처럼 나는 묶인 것도 없는데 어쩌지 못하고 묶여서 끌려가듯이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BTS 노래를 들으며 마지못해 출근을 한다. "아 정말 가고 싶지 않다"는 자조 섞인 말과 함께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을 안고 대중교통의 수많은 냄새에 잡아먹혀 나도 커다란 하나의 냄새가 되어서 간다.나의 사장님은 외모만 보면 누구나 생각 하는 것처럼 별 볼일 없는 한 마리 짐승이다. 그렇다고 그에 비해 내면은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