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정 길 생(전 건국대학교 총장) 이곳 S 실버타운에서 가장 편한 곳은 공중 목욕탕이다. 그곳은 언제 가도 우리 노인네들에게 몸과 마음의 안식을 준다. 또 그곳에 가면 체면과 자존심 같은 것들은 모두 벗어던지고 벌거숭이가 되어 서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 노인들이 목욕탕에서 나누는 대화 중 가장 자주 듣는 화제는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 안부전화를 하는 자녀들의 효심을 자랑하는 노인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그런 노인들과는 달리 당신에 대한 자녀들의 무관심을 섭섭해하는 노인들이 더 많다. 지난 주...
시인 이문익 단풍 향기무심하게 강물에 흐르고푸른 하늘엔바람도 구름을 안고산 넘고 강 건너 들판을 지나정처 없이 흘러가는데 일렁이는 기억 너머로갈꽃이 춤추는 해거름 들녘에서동무들과 어울려소 치며 꼴 베고 놀던사금파리 같은 갈색 향수와유년의 시간이 겹쳐잔잔하게 파문이 쌓여만 간다 하교 길십오 리 굽은 신작로를 뛰다가 걷다가 징금다리 개울가에 책 보따리 던져 놓고피라미를 잡고 놀던 소년이어느새가슴 한 곳이 비어버린서리가 내리는 중년이 되어 서 있다.
시인 이문익 빛에 찌든 삐쩍 마른 어둠을 개고 하얗게 쉰 세월의 저 강에 저린 가슴 풀어놓으면해빙기질퍽이는 비탈길에서 봉합한 시간들이눈에 녹아내린다 겨울이 남아있는 잿빛 하늘이 낮게 흐르는 강에는 낡은 허주에 기러기 울음만 쌓여가고뒤듬바리 걸음으로 쫓아온 날들은뒷짐을 진 채 돌아서 있구나 스산한 계절 사이로회색 바람이 불어오던 날낙동강 모래톱에 묻은 상념의 뿌리가 어지럽게 자란 강변에는 갈밭을 배회하는 바람이 생각을 여미고 간다.
이말호수필가 칠월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초복 날, 김 작가님이랑 문우님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시간도 있고 해서 수묵화를 그려놓은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고즈넉한 국도로 차가 달린다.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든지 고속도로며 국도도 잘 돼 있어 편하고 좋았다. 김천으로 가는 길도 4차선 도로가 만들어져 고속도로보다 더 한가하고 조용하며 주위에 경관들도 감상하며 가니까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전에 없던 김천 부항댐 출렁다리며 지나가는 길에 캠핑장도 보게 됐는데, 그 높이가 꽤나 스릴이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들 ...
시인 이문익 은하수 푸른 강가엔견우의 한숨 가득하고하염없는 직녀의 통곡은강물로 흐르네일 년 삼백예순날마르지 않는 눈물바다에단 하루오작교 다리 놓아견우직녀 만나는 날무심한 하늘에는 짓궂은 비 추적추적 내리는 구나
이말호수필가 꽃나무가 거리를 화사하게 밝히는 계절이다. sns가 꽃 사진으로 도배되는 날 짬을 내어 공원을 찾았다. 긴 겨울을 끝낸 공원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오늘 따라 바람이 몹시 분다. 호수의 물빛이 맑아 햇살에 비친 윤슬이 아름다워 호숫가를 한바퀴 도는데,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들의 나들이가 물결처럼 출렁이며 지나간다. 찬바람 때문인지 밤새 기침이 나서 이튿날 병원에 갔더니 “코로나 양성입니다.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 받으세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어찌된 일인가. 반갑지도 않은 불청객이 들어와 이놈이 ...
시인 이문익 회상의 강가에 흔들리는 내 영혼말간 하늘에 그리움 엮어네 이름 부르면강물이 소리 내 흐르고눈꽃처럼 네 모습 가슴에 핀다 하얗게 얼어붙은 기억 저 깊은 곳에는만년설처럼 빙하가 흐르고그날에 멈춰버린 생각의 조각들숱한 별이 되어 쌓여 가는데 길 잃은 바람 어둠을 부여안고어서가자고 밤을 재촉하면오랜 전 지워버린 창백한 네 이름 석 자알 수 없는 여로에서 꿈을 꾼다.
이상유시인·수필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실은 긴 열차가 끝없는 평행의 철로 위를 뱀처럼 미끄러지며 달리고 있다. 강산이 여섯 번이나 변하는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옛날의 그 기찻길은 지금도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며 육중한 열차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다. 괴물같이 생긴 검은 증기기관차가 ‘칙칙폭폭’ 흰 콧숨을 내뿜으며 우렁차게 저 길을 달렸었고 붉은 머리의 디젤기관차는 내 어린 시절의 꿈을 싣고 들판을 가로질러 질주하다 산모퉁이 뒤로 꼬리를 감추곤 했다.어린 우리에게 열차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호기심과 희망의 상징이었...
시인 이문익 네 체온이 묻어날 것 같은빛바랜 빈 의자에는 나른한 햇살이 졸고 있고서산 노을에 가슴이 젖은 바람빈 의자에 비켜 앉아회상의 먼 바다에 잠들면수은등 불빛 피어나는어스름 강변에는 풀벌레 소리 맑은 은하수를 이루고깊어가는 소설한 밤윤슬 따라 흔들리는 갈꽃 향기사방이 가을로 가득한데갈 곳 잃은 고즈넉한 달빛빈 의자에 기댄 채 검푸른 강만 하염없이 바라보는구나
춘강 이종갑시인·시조시인 석양이 서천에다 노을을 내다걸면냇바람은 하루를 들고 자박자박 산을넘네마음의지뢰밭에는 그리움의 달이 뜨고 육월을 받쳐든 그대의 발소리에 기약없는 기다림은 파도처럼 밀려와서가슴에 장미한송이피워보는 시간이다 산딸기 익는 저녁 간절한 기다림에그때 그 맺은언약 마음의 담을넘고어둠에묻친 골짜기엔두견이만 애절하다.
이문익시인 주홍빛 노을이낮게 흐르는 강가에 회상에 젖은 바람이 불어오면 붉게 물든 하늘은 노을이 빚어낸 눈부신 오선지에세월이라는 악보를 그리고바람은 쪽배를 타고 비켜 가버린 세월 속 나목에 앉아 바이올린 연주를 하지만시린 눈밭에서눈荀을 키우는 산 목련처럼잠자던 시어들은 서걱거리는 갈밭에서 꿈을 키우고시는, 세월의 뜨락에 흔적을 모아뒹구는 낙엽에 그리움 엮어 세월을 그린다.
이상유시인·수필가 며칠 전 아내와 칠성시장에 갔다. 칠성시장은 서문시장 다음으로 대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없는 물건이 없다고 할 정도로 소문난 곳이다. 지하철 칠성시장역에서 내려 계단을 오를 때부터 시큼 짭짤하면서도 구수한 장터 냄새가 풍겨왔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도로 가장자리에 길에 늘어선 좌판과 그 위에 쌓인 갖가지 물건들이 우리를 반긴다. “사가이세이!”하고 아주머니들이 던지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어린 시절 고향 장터의 낭만을 되살아나게 한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감 어린 맛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