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경(수필가) 형이 생겼어요 가끔, 같이 사는 남자가 외로워 보일 때가 있다. 다섯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누나들이 있고, 한 여자와 결혼해 두 딸을 낳았으며 홀어머니를 두고 있는 그는 여인국(女人國)에 난파된 걸리버처럼 이질적이다. 다행인 것은 그 남자의 성향은 지극히 남성 지향적이고 또한 스포츠에 열광한다는 점이다. 월드컵, 올림픽은 물론이고 각종 프로리그도 빠짐없이 챙겨본다. 야구선수에 대한 프로필이나 그들의 경력이나 중요 포지션은 해설가 수준이다. 응원도...
시인, 소설가 서상조 마음으로 여는 세상 신축년의 태양이 생명의 빛을 온 누리에 펼치어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다 축복의 거룩한 날을 맞이하네 삶은 정체가 아닌 흐르는 세월의 진리위에 있는 것이라 때로는 푸른 잔디의 길이 또 어떤 때는 가시의 길이 기다리네 이제 우리의 지혜를 시험하는 도전이 있어 희미한 내일을 닦아내는 투쟁이 되네 눈에 드러나지 않는 저것을 어찌 눈으로 보랴 고요히 마음을 낮추고 마음으로 보아야지 천년을 사는 한 그루 나무는 발도 없고 눈도 없이 그 어떤 도전도 물리...
시인 김영식 힘 있는 나라들이 쓸고 간백신 앞에는먹고 살기 조차 힘든가난한 사람들의냉혹한 생명의 밧줄이사치스런 꿈같은 이야기로〔빵이 먼저다〕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생명도 국력 순으로모순을 사고 팔고 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코로나 19 백신 확보를 위한물밑 작업 쟁탈전이치열한데블룸버그 통신 보고서에는돈의 위력이 더럽게위대하여 부끄럽다 은둔의 나라 인도에서캐나다 미국 영국 EU호주 칠레 이스라엘 뉴질랜드홍콩 일본 싱가포르 중국러시아 멕시코 브라질한국에 종점을 찍고 유전은 생존하고무전은 사망이라코로나 19 ...
春江 이 종 갑 내가 구름이었나 구름이 나였나흰머리 나부끼는 허공으로아~ 저녁 종소리매달지 않아도 될 등불 하나 걸어온다삭막한 거리에는 가난한 욕망들만 나뒹굴고곱하고 나누며 가지 사이로 흐르는 세월뜨겁던 또 한해는 바람을 등에 지고부탁의 그림 한 폭 남기고 간다허방세상 절룩이며 배알을 팽개치던 날도바람 울듯 흐느끼던 대쪽 같은 그런 날도낙조가 말아 가듯 파리한 그 얼굴을 왜가리가 물고 간다쓸쓸하게 찔린 가슴 희망으로 이어줄 그런 해는 어디 있나먼지 이는 세상을 시렁위에 걸어 놓고옷깃 펄럭이는 쓸쓸한 언덕 누가 부는 ...
서상조시인·소설가 처음으로 가 보는 길이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야어쩌면 그 처음의 길이보배로운 길인지도 몰라이제, 한 번쯤 멀리서 바라보는 거야그렇게 오래 멀리 있어 보면너의 몸짓 하나도 그리움 속에서열정의 사랑처럼 다시 절실해지고그저 느낌 없이 누렸던 일상도하나하나가 가치 있어지겠지우리는 너무 많이 부대끼며 살았잖아그 속에서 정이 든 만큼이나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죽여 가고 있었어넓디넓은 대지를 잠시 망각하고오븐 속의 팝콘처럼서로를 못살게 튀겨대고 있었던 거야이제 떨어져서 치유할 시간이야서로 떨어져서 그리울 때까지기다리...
이병연 오픈스터디 회원 봄이 왔다기에길목에봄을 마중 갔더니봄은 아니 보이고찬 바람만휭하니 불어봄은 무슨 봄아직은 아니야푸념만 했었네 나야 나 여기 있어누군가나를 불러그 소리를 따라고개를 돌렸더니내 발아래에서꽃다지가 웃으며손짓을 하네 자세히 보아라보이기 시작하는 봄작고 노오란앙증맞은 꽃다지가봄 편지 받으라고말하고 있었네 2020경북장애인종합예술제 詩 부문 수상 작품
시인 김청수 귀 열고도 듣지 못하는 말천년의 시간 품은 팽 나무의 굽은 허리를나는 느리게 감싸 안았다 용트림과 인고의 세월 앞에경봉선사는 어디 가시고아픈 역사의 상처와 기억, 저 노인네와 함께 했을까 부드러운 바람이 볼을 쓰다듬는 날나무 그늘 아래 휘어진 이야기 듣다마음이 붉은 수박을 먹는다 단내 맡고 달려드는 파리 떼 보살날았다, 앉았다삶이란 저렇게 단맛에 흠뻑 젖는 것 바람이 염불소리를 타고팽나무 가지를 돌아 나올 때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운명물까치전설을 물고 날아간다
김상룡(수필가) 일요일 오후, 나는 매번 무채색이 된다. 문득 ‘의미’라는 단어가 끼어든다. 해석과 평가 사이를 줄타기에 앞서 나에게 의미란 매번 1,067m의 허들로 나타난다. 넘어야 되는 강박이 싫다. 오늘은 어지러운 세상 소식에서 멀어지리라 다짐하면서 해석과 평가가 필요 없는 채널을 돌렸다. 매번 화면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한국 청년이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를 소개하고 있었다.지루해진 여행 프로그램에 눈꺼풀이 무거워질 즘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인을 만난 듯 백년지기 친구를 만난 듯 ‘발타사’...
시인 곽호영 기원 주산 신령님이 산안개로 향을 피우고천신님께 제를 올린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게 하소서마스크 같은 거 쓰지 않고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것도 하지 말고사람끼리 서로 부대끼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작가 프로필월간 한비문학 詩 등단 / 한국문인협회 고령지부 사무국장 역임한국한비문학회 회원 / 시인과 사색 동인 / 시집 : 연꽃 눈물
시인 설화영 슬픔 주는 사람 아닌기쁨 주는 인연으로 영글어지고 시기하는 사람 아닌격려하는 인연으로 갈채의 힘이 되고 비난하는 사람 아닌칭찬하는 인연으로 한 송이 꽃을 보듯 원망하는 사람 아닌 감사하는 인연으로 매사 향기로운 변덕스러운 사람 아닌한결같은 인연으로 바라는 것 없이 잘 익은 석류알처럼속마음이 빛나는 인연이고 싶다.
시인·시조시인 春江 이종갑 잘 익은 풍경 위로 나뒹구는 달을 보며절룩이며 오던 가을 홍역에 걸렸는지 불타듯 붉어진 산이 낙조가 무색했다 뚝뚝 농염의 피로 짓물러 떨어지는한 장의 낙엽 속엔 얼룩진 숱한 사연 쓸쓸한 고독의 뜰에 아픔으로 쌓인다 들판에 가로 누운 강물을 바라보며내 작은 우주 속에 위성 하나 띄워 놓고누군가 그리워하는 사유의 시간이다.
정아경(수필가) 따르릉 따르릉, 손만 내밀어 알람을 끈다. 연인의 품 같은 이불 속에서 떨쳐 일어나기란 쉽지 않다. 뭉그적대는 사이 또 울린다. 알람 간격이 10분이니, 10분이란 시간이 그토록 달콤할 수가 없다. 이제 일어나지 않으면 줄줄이 지각 사태가 이어진다. 새벽형인 나에게 아침잠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늘 힘겹다.알람이 울리지 않는 일요일이 며칠 남았는지 헤아리며 반수면 상태로 세수하고 쌀을 씻는다. 압력밥솥에 취사 버튼을 누르고, 전날 준비해 놓은 찌개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며 ‘일어나라, 밥 먹어라’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