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엄마”아이들이 놀라 외쳤다.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치킨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에게 젖을 먹일 생각에 앞뒤 볼 것 없이 덥석 물었다.‘철커덕!’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쳤지만, 얼금얼금 철사로 된 덫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선 아이들을 창고 옆으로 가라며 손짓을 했다.“얘들아, 꼼짝 말고 있어. 엄마 곧 돌아올게.”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아이들은 계속 엄마를 불러댔다. 아침이 되니 경비아저씨가 왔다.“에그 녀석, 사람들의 눈에 띄지 말아야지. 신고가 들어왔으니 나도 어쩔 수 없구...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지난호에 이어 “준혁이라. 좋은 이름이구려. 그대는 가족이 있소?”“네, 엄마 아빠가 절 기다릴 거에요. 말도 안 하고 갑자기 없어졌으니···”“만약 그대가 소환으로 이곳에 불려오게 된 것이라면 미안하게 되었소. 우리의 사정이 워낙 다급했음을 그대가 이해해 주었으면 하오. 그대는 여기가 어디인지 아시오?”“대가야··· 대가야라고 들었어요.”“그렇소. 좌로는 백제, 우로는 신라의 거센 도전에 맞서 천신과 지신이 점지해 주신 기름진 땅을 경작하고 한 편으로는 철을 제련하며 토기도 빚고 바다...
시인·소설가 서상조 들풀을 키운 연유-대가야의 기운은 산야에 남아 마주한 바위에 피가 돌아천년 사랑을 나눈들뉘 있어 그 사연 온전히 전하리오 맹문 없는 사가(史家)의 책갈피는 접어라빛나던 금관이 바람에 부스러져허공에 흩어진다 할지라도눈 감고 볼 수 있는 현자가 있다면그 가슴에 금관은 다시 일어서리라 기개는 빛을 휘당겨 태양을 잡고영광은 송화처럼 뜰마다 내렸지마는마지막 일성에 방울 눈물이야구름을 일구고 뚝 뚝 슬픔을 내려백성처럼 어여삐 들풀을 키웠나니 하얀 제비꽃이 피거든 가슴으로 보아라긴 세...
이종갑(시인·시조) 산자락 듬성듬성 구름 같은 풍경이다겨울은 서리 접어 고향으로 돌아갔고개풍을 첫 대면한 산수유가 병이됐다 뜯기고 할퀸 자리 흉터가 남았지만불면의 담을 넘어 봄볕을 만났을때수줍은 옷고름 풀어 감춘 속살 맡겼다 지난밤 둥근달이 놓고 간 흔적일까경칩의 노을 위로 환희의 아우성들활짝 핀 산수유 꽃이 징검돌로 앉는다.
시인 설화영 꽃 비 빗방울 방울방울꽃잎사이로삼동을 이겨내고봉오리 맺은 그 자리에눈부신 축복의 보석을 매달아준다꽃향기 흘러강물로 흐르고나는,꽃이 머금은 빗방울하도 예뻐 눈에 담고 가슴에 담아 싱싱한 꽃잎 눈물 적신다. 작가 프로필KBS라디오 ‘지금은 라디오 정보시대’ 고령통신원 역임시낭송 출연고령문협 회원고령사무기 운영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지난호에 이어 나는 피식 웃으며 내가 그려진 부분을 떼어내 크로스백 안에 넣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잘하셨어요. 기념으로 이건 제가 갖고 있을···”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부서져라 벌컥 열리며, 어른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서더니 우리를 둘러쌌다.“무슨 일이오!”“이 자를 데려가겠소.”“무슨 일이냐고 묻질 않소!”“왕명이오.”“아저씨!”내가 겁을 먹고 아저씨에게 매달리자, 아저씨가 나를 다독거리며 말했다.“무슨 연유로 이 아이를 찾는지만 이라도 알려 주시오.”“저 안 갈래요! 아저씨랑 같...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지난호에 이어 나는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지껄이며 자루를 양손으로 힘껏 움켜쥐고 마구 목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아저씨의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약이 바짝 오른 나는, 씩씩거리고 숨을 몰아쉬며 계속해서 목검을 놓치고 말았다. 목검은 내 손아귀를 홀랑 빠져나가 아저씨를 스치고, 아저씨가 서 있는 곳 뒤의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으악! 어떻게, 아저씨 안 다쳤어요?”내가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는 가운데, 아저씨가 뺨을 매만졌다. 아저씨의 손끝에 약간의 피가...
곽도경(시인) 붉은 별이 있었네 겨울 애월통나무집 창가에먼나무 한 그루 홀로 서 있네 잔가지마다 별들을 매달고 휘날리는 눈발 다 맞으며 서서알 수 없는 신호들 쉼없이 날려 보내네 나무의 신호음들 수없이 몸을 들락거리며 마음을 스캔해 가는 동안나는 그저 속수무책 겨울 애원통나무집 창가에한 남자 홀로 서 있네 그 사람 당신 같아서가만히 다가가 등 뒤에서 안았더니발아래 수북 붉은 별이 지네 작가 프로필계간 ‘시선’으로 등단2018년 고령문학상 수상2019년 제5회 누리달공모전 대상 ...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지난호에 이어“그러면 아껴야 하는 것 아니냐. 재미는 있었지만, 이런 것을 보며 남은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향후 정말로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을 찾아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그럼 일단 꺼둘게요.”나는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도록 폰의 전원을 완전히 내렸다.“아저씬 무슨 일 해요?”“나는 백성이 도둑이나 무뢰배 등으로 위험에 처하지 않는가 살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전쟁이 나면 전쟁에도 참여하지.”“그럼 칼싸움 발하겠네요.”“목검으로 수련은 늘 하고 있다만··· 아무래도 시대가 평화롭다 보...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지난호에 이어“대신 무엇이든 알아낼 수 있는 물건을 들고 있지 않느냐.”“아···”“네가 말했던 통신사라는 것도 아마 그 물건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함께 건너온 게 아닐까 싶구나.”“그럴까요. 하긴 언노운이란 통신사는 들어 본 적도 없어요.”나는 내친김에 언노운의 뜻을 검색해 봤다. 그건 알려지지 않은 무안가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언노운 통신사로도 검색해 봤으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이를 어쩐다···”“뭘요?”“네가 대가야의 명운을 알리기 위해 성공적으로 소환됐고, 네가 살고 있는...
시인 설화영 마알간 하늘 잠긴 옹달샘거기,내 모습이 일렁인다. 표정을 숨기고 쓰는 비밀스런 편지는나도 모르게 젖어있다. 넘실대는 욕심도 흘려보내고잔잔함 속 깊은 울림 같은성냄도 씻어버리고 개구리 첨벙되어 흐려진혜안의 어리석음도다시금 다듬는다. 그래야만, 물 위에 쓴 젖은 편지가저 강물에 닿아맑은 속삭임으로 반짝이겠지. 작가 프로필KBS라디오 ‘지금은 라디오 정보시대’ 고령통신원 역임, 시낭송 출연, 고령문협 회원고령사무기 운영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지난호에 이어내 얼굴이 걱정으로 가득해지자, 어저씨는 어쩐지 내 눈치를 보는 듯 하더니 내던지듯 말했다. “모친이 찾고 계시는 것이냐?”“그럴 걸요, 아마도.”“네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으냐?”“당연하죠.”“허나 나는 방법을 모른다. 너는 이런 물건을 만든 너희 시대의 기술로 인해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냐?”“근데요, 저더러 자꾸 미래에서 왔다고 하시는데 지금도 통신사 신호가 잡히거든요?”“아까부터 통신사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전화 신호 보내 주는 곳이요.”“왜 없어요? 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