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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기사입력 2021.08.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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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수면소재지.jpg

     

    우리들의 선조들은 자기 조상의 핏줄을 밝히고 보존하기 위해 족보를 만들었고, 또 후손들은 족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이어가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구석구석 내력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고령군 각 마을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기성세대가 생존해 있을 때 그분들의 기억을 듣기 위해 오래전부터 유병규 前 고령문화원장께서 직접 지역 곳곳을 누비며 조사한 내용과 구전돼 오는 얘기를 한데 묶어 고령문화원에서 발행한 ‘高靈地方의 마을史’를 참고해 본지에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 운수면(雲水面)
    운수면은 고령군 8개 읍·면 중 한 곳이다. 본래 성주군(星州郡) 지역 운라산(雲羅山)의 이름을 따서 운라면이라 해서 운산, 월성, 법암, 거호동, 외화, 금성의 여섯 개 마을을 관할했다.
    1906년(고종 광무 10년) 고령군에 편입됐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구음면(九音面)의 운산, 삼하 2개 동리와 성주군 흑수면의 대성, 내성, 평촌, 순평, 외신, 연봉, 신궁, 봉계, 물한 9개 동리와 도장면(道長面 )의 법동, 연봉, 백전, 팔산, 유동, 개련, 고승 7개 동리를 병합해 운라와 흑수의 이름을 따서 운수면이라 했다. 월산, 화암, 봉평, 대평, 신문, 운산, 법동, 팔산, 유동 등 9개동을 개편·관할했다.
    동쪽으로는 성산면 일부와 대가야읍과 연접해 있고, 서쪽은 덕곡면과 성주군 수륜면, 북쪽은 성주군 용암면과 맞닿는다.
    △ 대평리(大坪里)
    ⑴ 연혁(沿革)
    본래 성주군 흑수면(黑水面) 지역인데, 1906년(고종 광무 10)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성동, 내성동, 평촌동을 병합해 한들(대평)의 이름을 따서 대평동이라 하여 운수면에 편입됐고, 1988년 5월 1일 동(洞)이 리(里)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흑수(黑水) : 대평리에서 가장 큰 대가천 옆 마을인데, 우물을 파면 돌이 검고 또한 물빛이 검어 흑수라 하며 바깥에 있는 큰 마을을 바깥흑수(外黑水), 골짝 안쪽마을을 안흑수(內黑水)라고 한다. 이조 때 흑수면과 흑수원이 있었으며, 대가천 물을 식수로 이용했다.
    * 망건점(網巾店) : 망근점, 망정이, 만금점(萬金店)이라고도 하며, 안흑수 북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이다. 망건(갓을 쓰기 위해 상투를 틀고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머리에 두르는 장식품)을 만들어 파는 점포(店鋪)가 있어 망건점, 망근정, 망정이라 했다. 또 이 마을에 금광이 있어 만금점(萬金店)이라고도 했으며, 뒷산 모양이 망건처럼 생겨 망근점이라고도 한다.
    * 새터, 신기(新基) : 안흑수와 바깥흑수 사이 10여 농가가 살고 있는 마을이다.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해서 새터, 신기라 한다.
    * 가매골, 가마골, 부곡(釜谷) : 바깥흑수와 개울을 건너 이웃한 조그마한 마을이다. 골짜기 모양이 가마(釜)를 닮아 가마골, 가매골, 부곡이라 한다. 웃물을 파면 가마밑을 뚫은 것과 같아 마을이 망한다고 해서 파지 않았다고 한다.
    * 대밭마, 대밀, 죽전(竹田) : 바깥흑수와 가매골 사이에 있는 20여 가구의 농가가 살고 있다. 옛날 이곳 언덕에 대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⑶ 기타
    * 가물넘들 : 흑수 동쪽에 있는 들녘
    * 나망골 : 서당골 옆에 있는 골짜기
    * 감나무개울 : 나망골 옆에 있는 개울로 감나무가 많았다.
    * 염수재(念修齋), 내화재(逝華齋) : 서기 1572년 당시 중국 명나라의 병부시랑 시윤제(施允濟)의 아들로 태어난 시문용(施文用)은 원래 명나라에서 병부좌랑을 지냈다. 1597년(선조 30년)에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범(정유재란)해 옴에 명나라의 신종(神宗)이 1만의 병력을 동원 공에게 난을 평정하는 중군(中軍)으로 오게 돼 합천과 가야산에서 적을 무찔러 큰 공을 세웠다. 무장(武將) 시문용(施文用)은 전쟁이 끝나고 명군이 철수할 때 어깨의 큰 부상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성주에 정착해 절강시씨(浙江施氏)의 시조(始祖)가 됐다. 그 후 시문용은 창녕장씨를 아내로 맞이해 슬하에 아들 영건(永建)과 영달(永達)을 낳아 절강시씨의 양대산맥을 이루게 했다.
    광해군 때 당시 영의정(領議政)이던 정인홍(鄭仁弘)의 추천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으나 인조반정이 일어나 정인홍이 실각되자 성주 보월리로 돌아와 학문연구에 전력했다. 1643년 72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
    절강시씨 후손들이 시조 시문용(施文用)을 추모하기 위해 염수재(운수면 대평리, 1839년 창건)와 내화재(화암리, 1922년 창건) 두 재실을 각각 건립했다.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소재 모명재도 시문용을 기리는 재실이다.
    * 노시골 : 노시울이라고도 한다. 든봉 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 대성동(大成洞) : 든봉 입봉이라고도 한다. 안흑수 동쪽 골짜기 마을이다. 지형이 듬병(둠병)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 도배미들 : 흑수 북쪽에 있는 들녘
    * 돌다리골 : 석교곡이라고도 한다. 칭이골 위의 골짜기로 돌다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동골 : 쪽짓골 위에 있는 골짜기다.
    * 든봉재 : 든봉 위에 있는 고개
    * 망근점골 : 망근점 뒤에 있는 골짜기
    * 매국재(梅菊齋) : 1782년 창건됐으며, 고려시중을 지낸 성주인 문열공 매운당 이조년(李兆年)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성주이씨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 매국정(梅菊亭) : 대평동에 있는 정자로 성주이씨가 이조년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 목골 : 감나무 개울 옆 못이 있는 골짜기
    * 배암동 : 노시골 안에 있는 골짜기로 모양이 뱀처럼 꼬불꼬불해 붙여진 이름이다.
    * 배앗골 : 흑수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사붓골 : 든봉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새들 : 신평이라고도 한다. 한들 남쪽에 새로 생긴 들녘
    * 서당골 : 서당곡이라고도 하며 큰골 옆 골짜기로 서당이 있어 붙여졌다.
    * 앵글들 : 흑수 동북쪽에 있는 들
    * 울내리골 : 목골 옆의 골짜기
    * 작은 배앗골 : 배앗골 옆 작은 골짜기
    * 장댓들 : 든봉 입구에 있는 들
    * 절골 : 사곡이라고도 한다. 작은 배앗골 위의 골짜기로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다.
    * 존댕이 : 절골 위에 있는 골짜기
    * 쪽짓골 : 탈박골 위에 있는 골짜기
    * 칠령재 : 망정이 뒤에 있는 고개로 흑수에서 성주군 용암면 덕평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 칭이골 : 존댕이 뒤 골짜기인데 키(칭이) 같이 생긴 골짜기
    * 큰골 : 배암동 아래 큰 골짜기
    * 탈박골 : 돈다릿골 위의 골짜기
    * 태봉골, 태봉곡(胎峯谷) : 새터 북쪽에 있는 긴 골짜기로 태봉재 밑에 있다.
    * 태봉재 : 태봉령이라고도 한다. 태봉골 북쪽 막바지에 있는 고개로 흑수에서 성주군 용암면 대봉동으로 넘어가는 재
    * 한들 : 큰들, 대평으로 흑수 앞의 큰들
    * 해무랑공 : 망근점 입구의 골짜기
    * 흑수면소터 : 흑수에 있는 옛날 흑수면사무소 터, 조선조 때 흑수면으로 대성, 평촌, 순평, 연봉, 백전, 신평, 내성, 외신, 신궁, 조양, 봉계, 물한, 탑립, 대교 등 14개 동리를 관할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운수면에 통합됐다.
    *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문화 제7집
     ‘高靈地方의 마을史’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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