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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성산면) 곳곳에 숨어 있는 재미있는 지명은?

기사입력 2021.10.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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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면(星山面)<3>


    △ 삼대리(三大里)

     

    삼대1리 마을초입.JPG

     

    삼대1리 마을회관.JPG

     

    ⑴ 연혁(沿革)
    성주군 소야면 지역으로 고종 광무 10년(1906년) 고령군에 편입됐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반장동, 덕산동을 병합해 삼대동으로 성산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삼산, 삼대(三垈, 三大) : 임진왜란 전후 1470년 경 금능김(金)씨가 이 마을을 개척 입주할 때 무봉산, 수만산, 수리봉산의세 산 밑에 산다고 삼산이라 하다가 그후 삼대로 불렀다. 얼마 후 금능김씨, 광산이씨, 김해김씨 세 성이 모여 발전을 기약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삼대(三大)라 부르게 됐다는 설과, 삼대(三垈), 반장(班庄), 멍더미 세 마을을 합해 삼대라고도 한다.
    * 판마을, 반마을, 반쟁이, 반장(班庄) : 풍수지리설로 죽은 오리가 금쟁반 위에 놓인 형국이라 해서 반(盤 )마을, 판마을이라 하고 이 마을 개척 당시 창령성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양반마을이라 해 반장(班庄), 또는 반쟁이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 멍더미, 질나루, 덕산포(德山浦), 덕산(德山), 도진(陶津) : 고령교 서쪽 마을인데 기산도요지와 사부도요지에서 생산된 질그릇을 이곳 나루를 통해 김해, 안동 등 각지로 반출해 ‘질나루’ 또는 도진(陶津)이라 했다. 마을 뒷산 이름을 따서 덕산 또는 덕산포라고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 마을 동쪽은 낙동강가의 높은 절벽과 깊은 물이 있어 멍더미라고도 한다.
    ⑶ 기타
    * 구실-골 : 삼대 남쪽에 있는 골짜기
    * 까딱바우 : 부치방이에 있는 바위로 그 위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어 손으로 건드리면 까딱까딱 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경효재(景孝齋) : 금녕인 백촌 김문기(金文起)의 7대손으로 증강능참봉(贈康陵參奉) 김화곡성(金花谷星)을 위해 후손들이 건축한 재실. 1616년 창건, 1967년 중수했다.
    * 느티나무(세충나무) : 삼대 앞에 있는 느티나무로 8아름이나 된다.
    * 망우대 : 반쟁이 동남쪽에 있는 바위
    * 명덕-산 : 멍더미 뒤쪽산
    * 멍덤-들 : 멍더미 앞의 들
    * 부치바우 : 삼대 동쪽 강가에 있는 바위인데 부처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
    * 부치 방이-덤 : 부치바우 가에 있는 벼랑
    * 사망-정 : 삼대리에 위치, 이조 헌종 때 광산인 이홍량(李弘量)을 위해 지은 건물로서 1981년 낙동대교 가설로 인해 현 위치에 이전했다.
    * 삼댓-들 : 삼대 앞에 있는 들
    * 소대가리산 : 삼대 남서쪽에 있는 소머리 모양의 산
    * 수만정산 : 삼대 남서쪽에 있는 산
    * 월칫-골 : 반쟁이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 지릿-재 : 지릿골 막바지에 있는 고개로 삼대에서 오곡으로 넘어가는 고개
    * 지릿-골 : 삼대 남동쪽에 있는 긴 골짜기
    * 진-골 : 삼대 동쪽에 있는 긴 골짜기
    * 추원재(追遠齋) : 광산인 이홍우를 위해 세운 재실(광산이씨 성주 계파 후손들이 선조인 묘제공과 동호공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 이조 철종 5년 1960년 창건)
    * 큰-골 : 삼대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

     

    △ 상용리(上龍里)

    1. 상용리.JPG

    ⑴ 연혁(沿革)
    성주군 가현면 지역으로 고종 광무 10년(1906년)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룡동을 병합해 상용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용기동(龍起洞), 상용동(上龍洞) : 1530년 경 한(韓) 모씨가 지금 마을 뒤 골짜기에 절을 세워 성주골이라 불렀다. 도(都)씨와 여(呂)씨가 들어와 마을 뒷산 밑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이라 해서 용기라 하고, 또 용소 위의 마을이라 상용이라 했다.
    * 운교(구름다리, 대룡동, 군달비) : 용기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1540년 경 도(도)씨가 이 마을을 개척했다. 앞내에 구름다리를 놓았다고 구름다리, 군달비, 운교라라 하고, 처음에는 상용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고 대룡동이라 했다.
    용기에서 놀던 용이 구름을 타고 이곳으로 날아왔다고 해서 운교리라는 설도 있다.
    * 점촌(店村) : 용기 서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 이곳에 옹기점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⑶ 기타
    * 광명사(光明寺) : 용기 서북쪽에 있는 절. 1954년 창건
    * 뒷-들 : 용기 뒤에 있는 들
    * 말맨-바우 : 상용 서북쪽 의봉산 중턱에 있는 바위로 예날 장수가 훈련을 하고 말을 메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목-골 : 용기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못이 있다.
    * 부인사-터(符印寺) : 용서 서쪽에 있는 부인사 터
    * 상용 약수터 : 용기 서북쪽 의봉산에 있는 약수터이다. 물이 매우 좋아 목욕을 하면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했다.
    * 상보 : 상보들에 있는 보(洑)
    * 선박-들 : 점촌 서쪽에 있는 들
    * 성주-골 : 용기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소디-골 : 용서 뒤에 있는 골짜기
    * 앞-들 : 용기 앞에 있는 들
    * 왯-골 : 용기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 용암재(龍岩齋) : 1956년 창건. 고령인 오광열(吳廣烈)을 위한 재실이며, 마을 입구에 국포 오공의 효행비가 있다.
    * 율수재(律修齋) : 1920년 창건, 성주인 이수인(李守認)을 위해 지은 재실
    * 조정-골 : 용기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죽림재(竹林齋) : 1935년 창건, 금성인 나경(羅璟)을 위해 건립한 재실
    * 추모재(追慕齋) : 1949년 창건, 세조 때 원종일등공신(原從一等功臣)인 청도인 김경손(敬孫 자-京始)을 위해 건립한 재실이며, 일명 영모재(永慕齋)라고도 한다.
    * 추모재(追慕齋) : 파평인 윤구락(尹龜洛)을 위해 건립한 재실로 종족인 신암(愼菴) 윤병억(尹炳億)의 기문이 있다.
    * 탑-골 : 용기 북쪽에 탐이 있는 골짜기
    * 탕관-바우 : 용기 서북쪽 봉산 위에 있는 탕건처럼 생긴 바위
     ※ 이곳에는 고중시(高中柿:준시) 감이 많이 나는데 조선조 연산군 때 진주 백성들이 그들의 토산품인 고중시를 임금께 진상하려고 가져가다 중종반정을 듣고 기뻐서 그 감을 모두 이곳에 버리고 갔으므로 그 감씨가 나서 이곳의 명물이 됐다.

     

    고령문화원 발행 고령문화 제7집 ‘高靈地方의 마을史’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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