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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토끼의 뿔(5)

기사입력 2021.07.3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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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호에 이어>

    서상조(홈페이지용).jpg

    서 상 조<시인·소설가>

     

    정혜는 차분하고도 단호하게 얘기하고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가서 김치와 소주 두병을 가지고 와서 잔도 없이 병 채로 마시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채 잠들었다가 다시 깬 것은 다음날 점심때가 다 되어 갈 때 쯤 이었다.
    주인언니가 독이 오른 말소리로 정혜를 깨웠다. 연락소장이 이른 아침부터 군청 위생계로 출근하다시피 나와서는 ‘희 다방‘을 불법 티켓다방으로 고발했다는 것이다. 담당 공무원은 등이 떠밀리다시피 벌금과 영업정지 기일이 기재된 통보서를 주고 같다고 독사 같은 얼굴로 상황 전달을 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상세한 전달태도는 모든 책임을 정혜에게 지우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숨어 있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손해 부분이 채워질 때까지 노예의 신분이 되는 것이다.
     정혜는 그 사내의 태도로 봐서, 고발이 아니라 군수를 들먹이며 아예 단속지시를 내렸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란 판단이 정혜의 본능에서 느껴졌다.
     정혜는 비장한 마음으로 결전의 의지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
    그 무엇보다도 마그마처럼 끓고 있는 가슴속의 분노였다. 여기서 한걸음이라도 물러서라는 권유가 있다면 정혜는 스스로 자신을 난도질해 버릴 것 같은 심정이었다.
     점심도 먹지 않고 준비를 했다. 이 방을 나서면 피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오든지 속 시원한 승리의 쾌감을 안고 돌아오든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을 일이었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작전상 일부러 치마를 차려입은 정혜는 다방을 나섰다. 혹시 영영 도망이라도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싶은 주인언니의 염려가 등 뒤로 느껴졌다.
      군청3층에 자리한 군수비서실에서 정혜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온 손님이 계신다는 비서실장의 안내에 따라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정혜는 속으로 웃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당장 저 비서실장이 군수에게 질책 받을 일이 떠오르기도 했고, 자신을 대면한 군수가 어느 정도의 그릇이 될 것인지 그 부분들이 흥미롭게도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한참 후에 세 명의 남자가 번들거리는 얼굴로 청와대에나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처럼 자랑스런 표정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 중에는 그저께 같은 자리에 있었던 신문사 사주란 사내도 언뜻 보였다. 정혜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린 채 일부러 비서실장이 부를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저- 손님, 이제 들어가시면 되는 데요.”
    “아유- 실장님도 친절하셔라. 고마워요-.” 정혜는 교태스러운 표정으로 비서실장을 바라보며 윙크를 날렸다. 어차피 전쟁을 치르기 위해 온 마당에 혼란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당황해 하는 비서실장에게 한 번 더 웃어 주고는 군수실로 들어갔다.
    한 팀을 치르고 난 군수는 다시 책상에 점잖을 떨면서 앉아 있었다.
    “군수님,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나 긴박한 애로사항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군수는 그저께의 ‘민양’이라고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뜻밖의 젊은 여자가 들어서자 야릇한 반가움의 표정으로 벌떡 일어섰다.
    “자 - 자, 이리로 앉으세요.”
    소파 쪽으로 정혜를 안내한 다음 군수도 중앙 소파에 앉았다. 비서실의 여직원이 녹차인 듯한 차를 다소곳이 가져다주고 나갔다.
     차를 배달하고 대접하며 살다가 정중히 바치는 잔을 받아보니 배꼽 밑, 갈비뼈 속에 있던 간이 목구멍 쪽으로 ‘스윽’하고 올라붙는 기분이었다.
     내공이 약한 자는 바뀌어 지는 환경에 따라서 마음의 모양새가 늘 교활할 정도로 바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미인 분께서”
    “저는, 사실은 희다방의 ‘민양’인데요.”
    “뭐? 어젯밤에 연락소장이 얘기하던 그……”
    갑자기 군수의 태도가 독충을 대하듯 경계와 경멸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예, 그저께 밤에 제가 술자리 시중도 들었잖아요.”
    “시중은 무슨, 일을 순리대로 해야지. 아가씨는 뭘 착각하고 있더구만.”
    불만과 강압의 태도로, 불량 면담자를 걸러내지 못한 비서실을 원망하듯 문 쪽을 한번 힐끗 보면서 말한다.
    “군수님 말씀대로 순리대로 하셔야죠. 연락소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군수님조차 일처리를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사실, 저는 희다방 벌금과 영업정지에 대해 군수님께서 아시는지 그 여부를 여쭙고자 왔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연락소장과 이미 교감을 나누신 결과물들이네요?”
    정혜는 눈을 내리깔고 보는 군수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정혜의 눈빛은 흡사 군수의 동공을 통해 오장육부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 같았다.
    “아니!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까불고 있어.”
    군수는 금방이라도 정혜를 내칠 기세로 변해갔다.
    그 때 갑자기 정혜는 일어서면서 치마를 확 뒤집어 보였다.
    군수 쪽으로 한 발 다가가면서 목도리 도마뱀의 목도리 펼치기 기술을 연상케 하는 동작이었다. 군수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눈앞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치켜든 치마 밑의 늘씬한 하체와 가랑이의 거뭇한 모습만 흐릿하게 보았다.
    “어! 어! 이게 뭐야, 이게 무슨 짓이야.”
    군수는 고개를 아예 돌린 채 손으로 정혜 쪽을 가리고 있었다.
    “뭐긴 뭐예요. 수컷들이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꿀단지죠, 꿀단지. 한 단지 하실래요?”
    행동과는 달리 군수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속삭이듯 말을 한 정혜는 다시 자리에 앉은 다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군수님, 우리 순리대로 살기로 하죠. 저도 불법 티켓 행위 했지만, 부른 건 군수님 일행이잖아요? 희다방에 피해 없게 하고, 연락소장 한 테 내 티켓비 주라고 하세요.”
    기습공격에다가 너무나 능청스럽게, 하나의 흔들림도 없는 정혜의 태도에 군수는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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