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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시대별 구분에 따른 고령군 연혁(沿革) (下)

기사입력 2018.12.1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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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기부터 현대까지 고령의 변천사를 재조명하다

     

    3)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

    ① 신라 진흥왕 23년(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되어 그 땅으로 대가야군(大加耶郡)을 삼았으며 군주(軍主) 한 사람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② 신라 경덕왕 16년(757년) 고령군(高靈郡)으로 개명하여 강주(康州 : 현재 진주)에 소속되었으며 영현(領縣)이 둘이다. 야로현(冶爐縣)은 본시 적화현(赤火縣)인데 경덕왕이 야로(冶爐)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현재 합천군 야로면). 신복현(新復縣)은 본시 가시혜현(加尸兮縣)으로 경덕왕이 신복(新復)으로 개명하였으나 지금은 미상(未詳)이다.
    ③ 신라 선덕왕(宣德王) 때에는 군주(軍主)를 없애고 군태수(郡太守) 한 사람을 두었다.

    4) 고려(高麗) 시대
    ① 태조 23년(940년) 군현제(郡縣制)을 정비(整備)하면서 전정(田丁)과 호구(戶口)가 현(縣)에 미치지 못하였던 신복현(新復縣)이 폐현(廢縣)되었다.
    ② 현종 9년(1018년) ‘주현속현제도(主縣屬縣制度)’로 완성됨에 따라 고령군(高靈郡)은 경산부(京山府)에 소속되었으며 야로현(冶爐縣)은 합주(陜州)로 이속(移屬)되었다.
    ③ 명종 5년(1175년)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경산부(京山府)의 속읍(屬邑)에서 벗어나 주현(州縣)으로서 위상을 갖게 되었다.
    ④ 세종 7년(1425년)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지리지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 지리지 다음가는 오래된 지리지로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이 책에 고령군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어 원문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본디 가야국(伽倻國)인데 신라 진흥왕(眞興王) 때 이를 멸(滅)하고 그 땅을 대가야군(大伽倻郡)을 만들었으며 경덕왕 때에 고령군(高靈郡)으로 고쳤다고 신라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때에는 고양대도호부(高陽大都護府)라 칭하였고 또 영천(靈川)이라고도 칭하였으며 목사(牧使)을 두었다고 민간(民間) 사이에 전(傳)하여 내려온다. 또 고령군으로 개칭(改稱)하고 감무(監務)를 두었다고 하나 연대는 미상이다.
    高靈縣 本大伽倻國 新羅眞興王滅之以其地爲大伽倻郡 景德王時改名高靈郡此載羅史. 高麗時稱高陽大都護府 又稱靈川牧官則諺傳也 又改高靈郡爲監務年代未詳”
    또한 중종 25(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 고령현조에 의하면 군명(郡名)이 “대가야(大加倻)ㆍ고양(高陽)ㆍ영천(靈川).”으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문종 1년(1451년)에 편찬된 역사지리서인 『고려사(高麗史) 지리지(地理誌)』에는 고령(高靈)을 ‘고양(高陽), 영천(靈川)’이라고 칭하였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아 고령군(高靈郡)에 관한 기록을 소개한다.
    “본래 대가야국(大伽倻國)1)으로 시조인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함】으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에 이르기까지 무릇 16대 520년 동안 국가를 유지했다. 신라의 진흥왕이 멸망시키고 그 땅을 대가야군(大伽倻郡)으로 삼았다.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내속시켰다. 명종 5년(1175년)에 감무를 두었다.
    本大伽倻國, 自始祖伊珍阿鼓王【一云內珍朱智】, 至道設智王, 凡十六世, 五百二十年. 新羅眞興王滅之, 以其地, 爲大伽倻郡. 景德王, 改今名. 高麗初, 來屬. 明宗五年, 置監務.”
     그러나 고령을 관향(貫鄕)으로 삼는 토성(土姓) 중 고령박씨, 고령이씨, 고령김씨 시조(始祖) 박언성(朴彦成), 이헌(李憲), 김남득(金南得)이 각각 ‘고양대군(高陽大君)’, ‘고양군(高陽君)’,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으로 피봉(被封)된 사실이 있고 1910년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이 편찬한 고령 최초 사찬(私撰) 읍지(邑誌)인 고령지(高靈誌)에 “고려 초에 고양군(高陽郡)을 영천군(靈川郡)으로 바꾸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고려 때 ‘고양(高陽), 영천(靈川)’이 변천하여 현재 고령군(高靈郡)으로 개칭(改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문헌상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
    ⑤ 13세기 초 해인사 계통의 반룡사(盤龍寺)에서 화엄결사(華嚴結社)가 결성되었다. 반룡사(盤龍寺) 화엄결사(華嚴結社)는 최충헌(崔忠獻)에 의한 무신정권시대(武臣政權時代) 교종(敎宗) 침체기에 비롯된 화엄종(華嚴宗) 승려들의 결사로
    이인로(李仁老)의 숙부인 흥왕사(興王寺) 승통(僧統) 요일(寥一)이 학불자(學佛子)가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데 그치는 것을 민망히 여겨 책려(策勵)를 기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며 반룡사를 개창(開創)하고자 함에 있었다.
    ⑥ 우왕 7년(1381년) 5월 경상도 고령군(高靈郡)에도 기근(饑饉)이 들어 버려진 아이가 길에 가득 찼고 굶어 죽은 자도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하여 고령지역이 기근의 피해를 크게 입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⑦ 우왕 때에 대마도를 정벌한 박위(朴威)가 경상도 도순문사(都巡問使)로 있으면서 고령현(高靈縣)에 침입한 왜구를 공격하여 35명의 목을 베었다는 사실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5) 조선시대
    ① 태종 13년(1413년) 지방행정제도를 개편하여 고령현(高靈縣)이 되었고 고려 이래 파견되었던 감무(監務) 대신에 종6품 현감(縣監)이 파견되었으며 아울러 지방 교학의 진흥을 위하여 세종 때부터 훈도(訓導) 1명이 파견되었다.
    ② 세조 1년(1455년) 내륙지방에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주변의 여러 고을을 분속(分屬)시키는 조치를 취하며 전국적으로 군익도(軍翼道)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고령은 성주도(星州道)의 중익(中翼)에 소속되었다.
    ③ 세조 3년(1457년) 진관제(鎭管制)가 확립됨에 따라 경상도는 8개의 거진(巨鎭)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의 진을 관할하였다. 이때 고령은 상주진(尙州鎭)에 속하며 초계, 합천, 거창, 지례와 함께 성주진(星州鎭)에 편제(編制)되었다.
    ④ 광해군 7년(1614년) 8월 성주 사람 이창록(李昌祿)이 왕의 비행(非行)과 조정을 비방(誹謗)한 흉서(兇書) 사건으로 성주목(星州牧)이 폐지되고 고령현(高靈縣)에 예속(隸屬)되었다.
    ⑤ 광해군 9년(1616년) 1월 성주(星州)를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하고 고령현(高靈縣)에서 분리(分離)하였다.
    ⑥ 고종 32년(1895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사는 선비 신모(辛某)는 다수의 농민을 이끌고 현청(縣廳)에 난입하여 현감(縣監) 김영준(金永駿)의 전세(田稅)·삼수미세(三收米稅)·대동미(大同米) 등 각종 세금의 과징(過徵)과 족징(族徵) 등 군정의 강행에 대한 현감의 해명과 개선책을 요구는 ‘을미년(乙未年) 농민항쟁’을 일으켜 경상감영(慶尙監營)에서는 사실을 확인하고 현감 김영준을 탐관오리(貪官汚吏)로 치죄(治罪)하여 파직하였다.
    ⑦ 고종 32년(1895년) 고령현(高靈縣)은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고령은 군(郡)으로 승격되어 고령군(高靈郡)으로 개칭되고 대구부(大邱府)에 속하게 되었다. 현감(縣監) 대신 군수(郡守)와 그 아래 세무주사(稅務主事) 1인을 두었다.
    ⑧ 고종 33년(1896년) 8월 4일에 칙령 제35호로 13도제(道制)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慶尙北道)라는 명칭이 최초로 쓰이게 되었고 고령군(高靈郡)은 경상북도(慶尙北道)에 속하게 되었다.
    ⑨ 광무 10년(1906년)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고령군(高靈郡)에는 군수(郡守)외에 군주사(郡主事) 2인, 재무서장(財務署長), 재무주사(財務主事), 경찰부장(警察部長)과 지방위원 각 1인, 관속(官屬), 서기(書記), 순검(巡檢) 각 수인, 청사(廳使) 수 명을 두었다.
    ⑩ 광무 10년(1906년) 지방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성주군(星州郡)의 다산(茶山), 덕곡(德谷), 인곡(仁谷), 소야(所也), 벌지(伐知), 가현(加縣), 도장(道長), 흑수(黑水), 운라(雲羅)의 9방(坊, 面)과 현풍군(玄風郡)의 진촌(津村), 답곡(沓谷), 왕지(旺旨)의 3방(坊, 面)을 편입하여 26방(坊, 面)이 되었다.

    6) 근대
    ① 1914년 3월에 부(府)·군(郡)·면(面) 통폐합에 따라 고령면(高靈面), 덕곡면(德谷面), 운수면(雲水面), 성산면(星山面), 다산면(茶山面), 개진면(開津面), 우곡면(牛谷面), 임천면(林泉面), 쌍동면(雙洞面) 등 9면(面)으로 개편되었다.
    ② 1930년에 쌍동면(雙洞面)과 임천면(林泉面)을 병합하여 쌍림면(雙林面)이 되어 고령 지역이 관할하는 지역은 총 8개면이 되었다.

    7) 현대
    ①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따라 고령면(高靈面)이 고령읍(高靈邑)으로 승격하여 현재 1읍 7면에 이르렀다.
    ② 1983년 1월 10일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거한 행정 구역 조정에 따라 덕곡면(德谷面) 성동(聖洞)을 성주군 수륜면(修倫面)에 편입하였다.
    ③ 1988년 5월 1일 동(洞)을 이(里)로 바꾸었다.
    ④ 1987년 1월 1일 개진면 양전리 일부인 알터를 고령읍에 편입하였다.
    ⑤ 2014년 11월 고령읍의 행정명칭을 대가야읍으로 변경하고자 고령읍 전 가구를 대상으로 명칭변경 찬반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 가구 3천 406가구의 83.1%인 2천 831가구가 찬성함에 따라 2015년 4월 2일 고령읍(高靈邑)이 대가야읍(大加耶邑)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3. 현재의 고령과 비전

    과거 고령은 대구광역시와 인접한 관계로 도시근교농업(都市近郊農業)이 주축을 이루었으나 1989년 조성된 소규모 쌍림농공단지를 시작으로 하여 1990년대 다산일반산업단지(주물업종), 개진일반산업단지(섬유업종), 개진농공단지 2008년 다산2차일반산업단지(조립금속업종) 등을 조성하고 중소기업체를 유치함으로써 경상북도 군부(郡部)에서 칠곡에 이어 두 번째로 기업체수(1000개)가 많은 기업도시로 발돋음 하였다. 향후 동고령, 월성, 열뫼일반산업단지의 추진과 함께 동고령 IC물류단지, LNG 발전소, 첨단의료산업의 투자유치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신성장 산업 동력이 될 것이다. 현재 고령군은 지역내총생산(GRDP) 5년간 평균성장율 도내 1위, 1인당 생산액 도내 3위, 군부 1위를 차지하는 역동적(力動的)인 도시로 변모하는 중이다.
    고령군 농업의 특징 중 하나는 식량작물(食糧作物) 생산에 비해 원예작물(園藝作物)의 생산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며 특히 과채류(果菜類) 생산액이 전체 채소 생산액의 80%를 차지한다. 또한 고령군은 경상북도에서 생산되는 감자의 24.2%, 수박의 38.4%, 딸기의 37.5%, 멜론의 59.85%를 길러내 전국 최고 수준의 품질을 자랑함에 따라 수박, 멜론과 감자 등 우수 농산물의 해외시장 판로 개척을 추진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따라서 고령군은 5대 전략품목(딸기·참외·멜론·수박·감자)의 ‘재도약 명품화’와 3대 육성품목(무화과·부추·호박)의 ‘신성장 동력 확보’라는 원예산업 육성 목표를 세우고 농·특산물 판로 확대와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역사와 문화의 도시를 꿈꾸고 있는 고령군은 대가야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개최되는 축제인 ‘대가야체험축제(大加耶體驗祝祭)’가 2013년부터 5년간 ‘대한민국 우수 축제’로 지정되어 대가야 역사를 직접 체험하는 생생한 교육형 체험축제로서 자리잡았다.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은 2013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 되었으며 2015년 3월에는 우선등재 추진대상으로 선정된 후 2018년 12월 문화재청의 세계유산 등재신청 후보로 선정되면, 2020년 세계유산센터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해 2021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전망이다. 기존의 대가야박물관, 대가야문화누리,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농촌체험특구와 함께 가야의 역사·문화·미래를 보여줄 가야국역사루트 재현사업이 2018년 완성되고 대가야 역사문화클러스터(cluster), 대가야 휴(休)문화유수(流水)사업, 대가야 걷는길 관광자원화사업, 빛의 길 조성사업, 관광순환도로, 황금테마파크 조성 등으로 대가야 문화벨트가 확장되며 "글로벌 관광 메카"가 될 것이다.
     특히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선정된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를 비롯해 총 사업비 약4조 8987억원, 총연장 191km의 대구∼광주간 동서내륙철도(달빛내륙철도)와 총 사업비 약5조 8000억원, 총연장 172km의 김천∼거제간 KTX조기 착공 추진은 우리 고령군이 ‘글로벌 관광도시’와 ‘경쟁력 있고 역동적인 도시’로 탈바꿈되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산동(山東)지역 중심의 ‘낙동강 경제벨트’와 산서(山西)지역 중심 ‘대가야 문화벨트’가 조화를 이루어 균형적인 발전을 이룬다면 우리 고령군은 군민 모두가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자족도시(自足都市)’가 될 것이다.

    ·집필 : 향토사학자 이동훈
    ·정리 : 최종동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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