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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명예로운 퇴역군인의 삶 재조명’

기사입력 2018.07.0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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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는 고령인으로써 명성을 가진 명사들을 찾아 대담을 통해 그분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이번호에는 개진면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14기)를 졸업하고 30여 년 동안 국토방위를 위해 온 정열을 쏟고 육군 소장으로 예편해 시인으로 등단, 문무겸전의 길을 걸으며 세 권의 시집을 출판하고 왕성한 시작(詩作) 활동을 하는 예송(叡松) 이용수(여주인, 85세) 장군을 초대해 장군의 인생 2모작 얘기를 들어본다. 이용수 장군을 만나기 위해 장군의 제씨인 제호(前 기업인)씨와 이동훈 여주이씨 대종회장과 함께 대구에서 KTX편으로 상경,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위치한 L호텔에서 이용수 장군을 만났다. 육군 장성으로서 위압감 같은 선입견은 몇 말씀 나눈 후 말끔히 사라졌다. 인정 많으신 이웃 할아버지 같은 후덕하고 인자함이 장군의 연륜 속에 묻어났고, 노병(老兵)의 인생관이 엿보였다.           <편집부> 

     

    이용수 장군, 문무겸전의 길 걷다

     

    * 장군(將軍)과 시인(詩人)이라는 문무겸전(文武兼全) 단어가 떠오릅니다

    1987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고 여가선용 차원에서 시(詩)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인 등단 전부터 시를 써왔지만, 2004년 ‘한국전쟁문학’을 통해 신인상과 본상을 수상한 후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니 나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었던 것은 고려 최고 문장가로 ‘동방의 시성(詩聖)’으로 불렸던 이규보(李奎報, 여주인) 선조의 유전인자(DNA)가 내 몸에 잠재하고 있었던 것이 퇴역 후 발현된 것은 아닌지”라며 웃음으로 겸손해한다.


    첫 시집을 내고 몇 차례 큰상을 타기도 했고, 서울 현충원에 나의 ‘시(詩) 현판’이 서 있기도 하고, 특히 2004년 제24차 세계시인대회를 기해 발간된 지구촌 최초의 시 사전 ‘Dictionary of International Poets'에 나의 졸시 7수(首)가 프로필과 함께 수록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이 시 사전에는 하이네, 릴케, 타골, 한용운, 윤동주, 이상, 고은, 김지하, 성기조, 이근배, 오세영 등 동서고금의 내로라하는 약 670여 명의 명사 시인들 대표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써온 시편들 가운데 나의 소신에 걸맞고 부끄럽지 않는 시편들을 골라서 시집 ‘미궁에도 미로가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부처님은 말씀하셨다네’ 등 세 권의 시집을 펴냈습니다. 또한 충남 보령군에 소재한 개화예술공원에 나의 시비(詩碑)가 건립되어 시인으로서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회원이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주간지, 월간지, 문예지 등에 자주 시편을 싣고 있습니다.

    * 군 시절 얘기를 들려주십시오

    1958년 육군사관학교(14기)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해 사단수색중대인 비무장지대 소대장을 시작으로 군인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미태평양정보학교 수료 후 육군정보학교 교관, 군단 작전참모, 보병대대 중화기 중대장과 연대전투지원 중대장, 사단 작전처작전과장, 육군사관학교 훈육관으로 발탁되었습니다.


    보병학교 고등군사반 수료 후 보병연대 작전참모를 거쳐 소령 진급 후 사단 작전처 보좌관, 육군대학 정규과정 수료 후 월남에 파병되었습니다.


    백마부대 황금박쥐연대 작전참모 시절 훗날 대통령이 되신 전두환 사령관을 제가 직접 모시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또한 육사 16기인 후배 장세동 전 경호실장과 함께 근무하기도 했고, 저의 전공으로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하기도 했습니다.

    * 제1땅굴 발견 공로로 보국훈장 삼일장 수훈’

    사단작전참모시절 저의 제1땅굴 발견은 전군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하나의 사건으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날이 1975년 11월 25일인데, 땅굴 발견 소식을 들으신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 우리 부대를 긴급 방문해 저로부터 브리핑을 들으셨고, 박정희 대통령의 격려와 함께 부대전체가 훈장을 받았습니다.


    대령으로 진급해 군단 감찰참모, 사단참모장, 연대장, 육군본부 인사처 과장, 논산 제2훈련소 참모장 등 군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준장으로 진급 후 합동참모부전략기획국 차장, 소장 진급과 함께 사단장, 부군단장을 역임하고 육군 소장으로 전역했습니다.

    * 고령(高靈)에 대해 어느 정도 기억하십니까?

    제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개포에서 대구로 나갔기 때문에 어릴 적 고향에서의 기억은 많지 않지만 성산이씨인 어머니로부터 외가가 ‘기싯대’라는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기싯대가 운수 어디인지 지금도 무척 궁금하지만 아직도 정확한 장소를 모르고 있습니다. 증조부 이상 선영은 대가야읍 금산에 있고, 개진면 개포리에는 증조부 이하 선영과 부모님의 산소가 있습니다.


    군인의 길을 걷는 동안 고령을 자주 못왔지만, 지금은 부모님 산소를 비롯해 선조님들의 선영을 가끔 찾고 있습니다.


    고령이 지금까지는 전국에 덜 알려졌지만, 근래에 와서는 매스컴을 통해 고령 소식이 자주 등장해 기쁜 마음으로 접하고 있습니다. “까마귀도 고향까마귀가 반갑다”는 고사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시 고향은 어머님의 품속 같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용수 장군(시인)의 부인 정필순 여사께서는 재작년에 작고하고 슬하에 2남 1여를 두고 있다.


    최종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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