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보름 쇠듯한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피니언

‘개 보름 쇠듯한다’

최종동 편집국장

사본 -최종동 국장.jpg

최종동 편집국장

 

며칠 후면(2월 26일) 정월대보름이다. 예로부터 정월대보름이면 집집마다 비록 나물이라도 이웃끼리 서로 주고받는 훈훈한 정이 있었고, 달집태우기 등 가정의 안녕과 마을의 태평,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풍습이 있었다.
이날의 음식으로는 오곡밥을 짓고, 묵나물, 복쌈, 부럼, 귀밝이술 등이 있고, 행사로 벼가릿대 세우기, 복토 훔쳐오기, 용알뜨기, 지신밟기, 다리밟기, 달집태우기 등이 있다. 놀이로는 쥐불놀이, 별신굿, 사자놀이 관음놀음, 들놀음, 고싸움,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이 있고, 액막이로는 더위팔기, 개보름쇠기, 모깃불 놓기, 뱀치기 등이 있었지만, 몇 가지만 기억날 뿐 세시풍습이 점차 역사 속으로 잊혀 가고 있다.
지금은 소방법으로 인한 규제의 대상이지만 이맘 때 논밭의 마른 풀을 불로 태웠다. 농약이 없던 시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의 알을 태우고, 두더지나 쥐를 쫓고 남은 재는 농사의 거름으로 삼아 곡식의 새싹이 잘 자라도록 하려는 지혜를 놀이로 승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축년 새해의 정월대보름은 여느 해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다. 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으로 인한 전 세계가 팬데믹(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현상)이 덮쳐 사람을 마음 놓고 만날 수 없고, 대면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의 모습이다.
‘개 보름 쇠듯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정월 대보름, 이날만은 개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는 속신이 있다. 이날 개에게 밥을 주면 개가 자라지 못하고 바짝 마를 뿐만 아니라 파리가 꾀어 더러워진다고 한다. 개는 가축 가운데 사람과 가장 가깝게 지내면서 먹는 것 역시 사람과 거의 때를 같이 한다. 그러나 이날만은 개가 먹이를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굶어야하는데, 그래서 속담에 끼니를 자주 거르는 것을 ‘개 보름 쇠듯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월대보름날 개에게 밥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개를 보호한다는 뜻도 있어 사람들과 가장 친근한 동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개와 연관된 재미있는 풍습도 많다. 전남지방에서는 정월대보름날 이웃집에 가서 ‘더우밥’이라 하여 보름밥을 얻어오는데, 그 밥을 개와 함께 나누어 먹는 풍속이 있다. 그 때 ‘내 더우 너 먹아라’, 하며 개에게 ‘더위 판다’고 한다.
보름날 더위팔기는 사람들끼리도 하지만 개에게 하는 것은 개를 가족처럼 가깝게 느끼고, 또한 개가 사람보다 더위를 이기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개의 질병을 막아주기 위한 방법으로 왼쪽으로 꼰 새기 즉, 왼새끼를 몸에 둘러주는 곳도 있는데, 이는 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부정을 가려 액을 물리고 복을 부르려는 주술적 행위인 것 같다.
반면에 이날 소(牛)에게는 특별대접을 하는 날이다. 올해가 마침 辛丑年 소의 해이다. 우리나라 반만년 농경사회 역사에 사람에게 가장 크게 기여한 소에게 이날만은 밥과 나물을 줬다는 기록이 있다. 대신 농사철에도 별 소용이 없는 개(犬)는 종일 굶긴다. 甲과 乙을 차별화 시켜 甲이 더 돋보이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생긴 말이 ‘개 보름 쇠듯한다’고 했나보다.
농기계가 없던 시대에 농사에서 소의 역할은 대단했다. 농사뿐만 아니라 새끼를 팔아 문맹을 탈피하는 학비에 쓰기 때문에 우골탑(牛骨塔)이라는 용어가 생겨났고, 소는 도시 유학과 시집·장가의 살림 밑천이었다.
반면에 개는 얄미우리만치 놀고먹으니 ‘개팔자 상팔자’라는 말이 생긴듯하다. 그래서 보름날이라도 바짝 굶겨서 정신을 들게 하면 농번기 빈집에 도둑이 들지 않도록 집을 잘 지키라는 뜻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개에 대한 대접이 많이 달라져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과거에는 귀여운 강아지를 애완견이라 했던 것을 지금은 반려견이라는 이름까지 바꿔서 집안에서 사람과 함께 살고 있어서 상전 대접을 받는 ‘개팔자 상팔자’ 시대다. 반려견에게 옷도 입히고 미장원도 가고, 성형수술에 껌도 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르다 몰래 버린 유기견이 늘어나 골치를 앓고 있어서 대비되는 것이 현실이다.
신축년 새해 정월대보름은 다가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으로 마치 모든 행사가 올 스톱되어 일상이 멈춘 것 같아 정월대보름이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듯해서 ‘개 보름 쇠듯한다’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