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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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 꼬·장

정아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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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경(수필가)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지지 위에 쏟아내는 문장은 딸의 부재를 매 순간 느낀다는 절절함으로 가득하다. 온 세상 행운을 모아 딸의 안전을 기원한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기원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나의 문장은 곡진하다. 신을 섬기는 선한 마음보다는 이기심이 더 많은 나의 기도는 늘 빈궁하고 간절한 순간에만 찾아온다. 필사(筆寫)하는 수도원의 거룩함이 편지지 위에서 재현된다. 자음·모음… 부디, 이 문장을 읽는 딸에게 힘이 되기를…….
세계가 하나의 모바일 안에서 소통되는 시대에 딸은 전화, 카카오톡, SNS, 그 어떤 연락도 닿지 않는 곳에서 11주 동안의 초강도 훈련 기간을 견뎌야 만날 수 있다. 딸은 날마다 임계점을 넘고, 다음 날 또 도전할 것이다. 극지에서 오롯이 자신의 의지만을 바라볼 것이다. 별처럼 아득하고 빛나는 의지만을 부여잡고 도달할 것이다. 가능한 연락은 오직 편지뿐이다. 밤마다 쓰는 이 편지도 언제 딸의 손에 들어갈지 불투명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편지지 위에 이름을 꾹꾹 눌러쓰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키 155cm, 몸무게 46kg의 딸은 얼리어답터이며 유행에 민감하다. 긴 머리를 찰랑이며 최신 유행의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가방을 메고 다니길 즐긴다. 마치 유행을 창조하는 것이 이십 대의 전유물처럼 멋을 부렸다.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학생회 활동을 하며 관계 지향적 삶을 유지했고, 딸의 인스타그램은 늘 왁자했다. 그런 딸이, 그랬던 딸이, 해병대를 지원해서, 그 힘들다는 훈련을 받으며 군인이 되는 것이 싫었다. 해병대는 더!
누구나 그렇지만 나 역시 애지중지 키웠다. 딸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양보해야 했던 나의 유년기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칭찬이었다. 유순하다는 칭찬 이면에는 포기해야 하는 꿈들이 즐비했다. ‘87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내내 눈물 흘리는 나를 보면서, 내 딸들도 울었다. 그 애들이 울었던 것은 영화의 소재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울고 있는 엄마의 현재가 안쓰러워서 울었다고 한다. 아들 없이 딸만 둘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두 딸은 여자라는 이유로 도전을 하지 않거나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선택한 결정을 책임지는 인격체로 성장하기를 원했다. 반장 선거에 입후보하고 당선되는 경험들이 매년 반복되며 학창 시절을 보낸 딸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줄 알고, 잘 웃고 잘 울었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들이 그리는 그림이 있다. 가능한 것에 희망을 불어넣으며 불가능한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그 불가능 중에 며느리를 가질 수 없다거나, 군대를 보낸 엄마들의 마음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세상이 변해 남녀 구별이 없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없는 아들의 아내를 가족으로 만나기는 무리고, 국민의 의무인 국방의 의무에서는 제외된다. 나 역시 그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울타리에서 딸들을 키웠다. 누구에게 의탁하는 삶을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나약하게 키우지는 않았다. 여자라는 이유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군대를 보내는 시나리오는 없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라지만 딸을 군대에 보낼 줄이야. 그것도 해병대를…….
딸은 해병대 학사장교 110번 훈련생이라는 번호를 달고 디지털로 만연한 현재를 뒤로하고 입대했다. 출렁이는 긴 머리 대신 밤톨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서, 그 작은 덩치로…. 대구 출신이라는 이유로 2주간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단절되었다. 24시간 초 단위로 세상과 소통하던 딸은 그곳에서 잘 견디는지… 격리의 고통은 얼마나 심한지… 구타는 없는지… 턱밑까지 닥친 코로나19의 불안보다 딸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2주 만에 걸려 온 전화는 단 1분 30초의 통화로 끝났다. 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엄마’ 불러 놓고 말이 없다. 나 역시 말문이 막혔다. 엄마라는 단어에 함축된 수많은 감정들, 엄마만이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고된 훈련이 전화선을 타고 말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슴이 먹먹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 오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차를 몰고 나섰다. 포항 1사단 정문 앞에 멈춘 차는 갈 길을 잃었다. 낯선 간판, 낯선 단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상상하고 추측한다. 저 담장 안 어딘가에 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변을 서성거렸다. 마음이 감추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움이 참아지지 않는 날이 있다. 세찬 빗줄기가 위안이 된다는 것을 그날, 일요일 오전에서야 확인했다.
말이, 말하는 자신을 규정하고 상징하는 것이라면 스물다섯의 딸은 멋졌다. 아니 멋지다. 앞으로 어떤 길을 지향하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길을 개척할지 또 어느 자리에 머물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극지의 그 어디에 닿아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나는 응원한다. 완전 군장 하고 줄 맞춰 서면 종아리만 보이는 훈련병이 자신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딸의 별명은 꼬·장이란다. 꼬마 장교! 이제 3개월의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딸의 임관이 다가온다. 보고 싶다. 내 품에 꼭 안아 보고 싶다. 빨간 명찰을 달고 소위가 된 꼬마 장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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