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코로나19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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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 코로나19인가

김영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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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시인)

 

 

왜 코로나19인가

 

 

 

세계적 전염병 유행단계 중 최고의 심각한 단계로 분류하는 6단계는 두 개 이상의 국가 간 전파에 한정된 5단계를 넘어 다른 대륙의 국가에까지 전염병이 발생하여 세계적 대유행에 들어간 상태로서, 세계보건기구에서는 팬데믹을 선포한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 WHO가 창설된 이래 팬데믹을 선언한 것은 지금까지 세 번의 대유행 팬데믹이 선포된바 있는데, 1968년의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플루 그리고 지금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가 그것이다.
지금부터 약 100년 전인 1918년에는 20세기 최대 역병이라는 ‘스페인 독감’이 발생하였다. 어떤 전쟁보다 더 비극적이었던 이 역병은 처음에는 아테네로 인근 항구도시 이발사가 퍼뜨린 헛소문 정도로 취급 받았다.
원래 이 역병은 스페인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 1918년 3월 미국 켄사스주에서 처음 보고되었으나 해당 지역의 질병본부나 정부관료 누구도 그 이상한 독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라 그럴 겨를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가 이 독감에 걸려 스페인 신문들이 이 신종 질환에 관한 기사를 내 보내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 보도 탓에 20세기 최악의 전염병이었던 그 독감은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게 되었다.
1차 대전 당시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의 자유로운 언론보도 때문에 역설적으로 역병의 발원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최초로 발병했던 이 독감이 ‘미국 독감’이라 하지 않고 ‘스페인 독감’이라 부르게 된 것일까? ‘신비한 바이러스’란 소문이다.
2003년 2월 중순 베이징에 파다하게 퍼진 괴질, 괴담의 정체는 곧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해 3월 15일 세계보건기구에 의해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증후군)’라는 새로운 전염병 바이러스로 명명 되었지만 괴담이 사실로 밝혀졌을 때는 수도 베이징은 역병이 창궐하는 중세도시로 변해 있었다.
광저우 괴질, 괴담은 2002년 12월부터 이미 문자메시지와 인터넷 등을 타고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를 최초로 보도한 중국언론 〈광저우일보〉는 2003년 1월 4일자 신문에서 ‘신비한 바이러스는 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불명확한 바이러스와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 소문일 뿐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신비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최초의 환자는 2002년 12월 5일 감기 증상으로 근처 병원을 찾았던 선전에서 요리사로 일한 황상추로 밝혀졌다. 그가 바로 전 중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가스의 ‘슈퍼 전파자’였던 것이다.
올해 1월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코로나19의 진실을 먼저 외부 세계에 알렸던 휘슬리(휘파람 불어 알린) 의사 리원양도 처음에는 중국 당국에 의해 헛소문 유포자로 몰려 처벌을 받았고, 진실이 밝혀진 뒤에는 그 자신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희생되고 말았다.
사스 은폐를 폭로한 장옌융 박사의 구금과 리원양을 통해 중국에서 항상 가장 먼저 희생되는 건 ‘진실’이라는 오랜 괴담을 떨쳐버릴 수 없다. 17년 전 사스 때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중국정부는 처음부터 은폐와 정보의 통제로 일관했었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후진타오 시절 느슨한 사스 관련 언론 통제에 불만을 품었던지. 그 정도를 한층 강화해 사상 유래 없는  언론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소문을 퍼 나르는 거짓(가짜) 뉴스는 혀부터 먼저 잘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역병이 발생하자 중국정부는 “가장 먼저 병원을 지어서 인민의 생명을 구했다.”면서 입만 열면 인권과 생명을 떠받들던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를 향해서는 “그냥 죽어라!”고 했다.
바이러스는 알려주었다. 누가 더 인민의 생명과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인가를…
마오쩌뚱이 말했다. “진실을 말한다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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