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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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생겼어요

정아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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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경(수필가)

 

 

형이 생겼어요

 

 

가끔, 같이 사는 남자가 외로워 보일 때가 있다. 다섯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누나들이 있고, 한 여자와 결혼해 두 딸을 낳았으며 홀어머니를 두고 있는 그는 여인국(女人國)에 난파된 걸리버처럼 이질적이다. 다행인 것은 그 남자의 성향은 지극히 남성 지향적이고 또한 스포츠에 열광한다는 점이다. 월드컵, 올림픽은 물론이고 각종 프로리그도 빠짐없이 챙겨본다. 야구선수에 대한 프로필이나 그들의 경력이나 중요 포지션은 해설가 수준이다. 응원도 격하게 한다. 선수교체와 전략은 감독을 능가하고 본인의 말대로 진행되지 않아 경기가 꼬일 때는, 각종 욕 세트가 온 집안을 맴돌며 불협화음으로 메아리친다. 승부에 무덤덤한 나로서는 지치지 않는 그의 열정이 신기할 뿐이다. 맞장구 없이 혼자서 열광하는 그를 보면 외롭겠다싶다. 아직도 씨족 공동체의 풍속이 남아있는 집안의 많은 경조사에도 그는 빠질 수 없다. 형이나 동생으로 대체할 수 없는 외로운 운명, 외동이다.
그런 그에게 형이 생겼다. 혈맹을 맺었다니, 경상도 싸나이답다.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는 아닐지라도 두 명의 형을 둔 그는 요즘 의기양양하다. 각별히 챙기는 모습에서 깊은 우정을 느끼기도 한다.
의주형, 그는 해결사다. 관계와 관계를 이어주고 분쟁을 조정하는 담당이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섬세하고 정이 많다. 술을 마시지 못하면서 새벽까지 취해가는 친구들과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최후의 일인이기도 하다. 사무실 하나를 빌려 남편과 함께 사용하기를 몇 년, 어는 시점에서는 서로 불만이 생길법도 한데 남편의 입에서는 그런 불평은 나오질 않는다. 하나라도 더 주고, 더 양보하려는 형의 배려가 이 남자를 감싸고 있음이 틀림없다. 형수가 만든 샐러드나 김치를 얻어와 맛나게 먹을 때는 나조차 손위 형님이 곁에 있는 듯 따스해진다.
성식이형, 그는 행동파다. :언제 한 잔 합시다“라고 하면 그날 저녁 바로 한 잔하고야 만다. 한 잔이 여러 잔이 되어 곤드레만드레 되기 일쑤지만 삶이 고독해 보이질 않는다. ‘말이 곧 도장’이라는 형의의리는 삶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는 제조업을 해서 꽤 돈을 벌었고 지금도 일거리가 넘쳐나는 잘 나가는 사장이다. 형은 공장 빈터에 닭을 수십 마리 키운다.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먹이기 위해서다. 손수 닭을 잡아 백숙도 끓이고, 닭볶음탕도 만들어 먹인다. 돈 벌기 위해 외국에서 온 그들에게 ”너희는 여기서 돈 한 푼 씨지 말고 모아서 가라“며 일하는 그들에게 특별요리를 만들어 먹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공장에는 장기 근속자가 대부분이고, 체류기간이 끝나면 자신의 나라에 갔다가 다시 그의 공장으로 재취업하러 온다고 한다. 자신에게 월급 주는 타국의 사장님이 옷소매 등등 말아 올려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을 때, 그들은 어떤 마음일까.
가을 깊어가는 단양에서 외동이라는 꼬리표를 뗀 내 남자의 형들과 1박2일을 보냈다. 따뜻한 바닥에 여자들을 앉혀놓고 형들은 음식 만들기에 분주했다. 잔심부름만 하는 내 남자가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 맛까지 끝내주는 저녁상을 받고 보니 온몸이 훈훈해졌다. 밤이 깊어 갈수록 쌓여가는 소주병, 그 안에서 풀어내는 녹록치 않았던 형들의 삶이 무용담으로 전승되는 중이었다. 집안의 아들, 의리 있는 친구, 직장이 우선이기에 희생시켰던 가정과 아내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의주형의 진솔함에 공감하고,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을 가족처럼 챙기겠다는 어린 날의 다짐이 커다란 울타리를 만들게 한 성식이형의 실천에 감동했다. 지난한 그들의 삶이 비워지는 병속에 다시 채워져 참회록으로 기록되는 밤이었다.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며 지지하는 그들은 풀리지 않을 매듭으로 묶여져 있었다. 막내지만 외동이라 늘 가슴에 묵직한 책임을 달고 살아가는 그가 그날은 빨간 풍선 하나 달아놓은 듯 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인연을 만난다. 어떤 인연은 나를 키우고, 어떤 인연은 나락으로 빠트린다. 피를 나누었지만 남처럼 지내는 형제도 있고, 피 한 방을 섞이지 않았지만 형제처럼 지내는 인연도 있다. 굳이 인연설을 따지지 않아도 내 남자에게 생긴 형의 존재는 든든해 보인다. 올 프로야구 시즌에는 형들과 야구를 보거나 한 잔하고 퇴근하는 남편 덕분에 각종 욕들을 들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쁜 추억도 그리워지나 보다. 그의 욕 세트가 사라진 스포츠 관람은 적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한동안은 계속 될 듯, 형들과의 의기투합이 자주 있으니 말이다. 남자들끼리 뭉친 어느 날, 여자들끼리도 뭉쳐야겠다. 자기 남자의 남다른 인연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길 준비가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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