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와 지역사회 활동, 바쁜 일과로 노년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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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와 지역사회 활동, 바쁜 일과로 노년이 아름답다

인물포커스-오태재 신안배수장 증설대책추진위원장

신안배수장 증설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앞부분 군에서 1천여평을 구입한 집수장.JPG

오태재 위원장 신안배수장 증설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앞쪽은 군에서 새로 매입한 집수장  

증조부 때부터 개진면 신안리에서 터 잡고 살아온 토박이 오태재(70) 신안배수장 증설대책추진위원장(이하 위원장)은 요즘 하루해가 짧다.
3천여 평의 벼농사, 딸기하우스 3개동(900평)을 밤잠을 줄여가며 농사를 짓고, 나머지 시간을 지역사업에 올인한다. 현재 맡고 있는 직함이 개진면발전협의회장을 비롯해 신안배수장증설대책위원장, 금천지구거점단지 육성사업추진위원장 등 굵직굵직한 직함으로 지역사회에서 바쁘게 활동한다. 오 위원장의 일상은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아닌 야경주활(夜耕晝活)”이라며 활짝 웃는다.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7년 자랑스런 도민상과 지역 농업에 기여 공으로 농수산식품부 장관 표창장을 수상이 그의 공을 대변한다.
오태재 위원장의 인생 1모작은 군 복무 시절을 빼놓을 수 없다. 군 시절 작전장교와 중대장을 역임하고 육군 소령으로 전역 후에도 개진/우곡 중대장, 4지역대장을 역임해 38년 동안 군인으로 살면서 국토방위와 향토방위 업무에 청춘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퇴직 후 그의 이력은 더 화려하다.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일이라면 어떤 직이라도 사양하지 않고 맡는 것이 그의 애향심의 발로다.
법인 대표를 비롯해 새마을 지도자, 영농회장, 이장, 면이장협의회장, 군연합회장, 도청렴감사관, 고령군 홍수피해대책위원장, 경북이장연합회 수석 부회장, 경북 이장연합회 비상대책위원장, 관광협의회 위원, 사회보장협의회 대표 위원, 고령인터넷뉴스 초대 독자편집위원장 등 거쳐 온 직함이 열손가락이 모자란다.
 
▣ 군인의 길 걸으며 수많은 표창이 그의 이력을 대변한다
 
인생 70이면 노인이다. 아직도 건강하고 식지 않는 열정으로 인해 지역사회에서 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단연 그의 탁월한 리더십을 꼽을 수 있겠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밀어붙이는 뚝심이 있고, 군 생활에서 터득한 청렴결백과 열정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가 거쳐 간 자리는 놀라운 발전과 개혁의 발자취를 남긴다는 것이 그를 아는 지인들의 반응이며 중론이다.
그는 38년의 군 생활을 마감할 때 공로연수를 마다하고 끝까지 향토방위 임무를 완수한 공적으로 국방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하는 등 책임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품이다.
군인의 길을 걸으며 수많은 표창장을 받았다. 사단장을 비롯해 연대장, 군사령관, 국방부장관상, 육군 모범예비군 지휘관 선정, 그리고 국가에서 주는 보국훈장 등 표창, 감사패, 훈장 등이 그의 이력을 고스란히 증명해 준다.
이제 그의 인생 1모작은 군인으로서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고, 이제부터 인생 2모작은 지역사회에 봉사하면서 힘닿는 데까지 하던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군인으로서 터득한 국가관과 리더십을 지역사회에 쏟아 붓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밝힌다.
그가 가장 중점을 두는 일은 신안배수장증설추진위원장으로서 매년 여름 장마철에 겪는 주민들의 농지 침수 방지에 심혈을 기울여 현재 사업을 펼쳐가고 있다. 신안배수장 증설이 완공되면 이제는 주민들이 물난리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 한 때 지방의회 입성 꿈 꿨지만, 모두 접고 오로지 지역발전에 올인
 
농사만 해도 대농인데 언제 농사를 짓고, 여러 가지 지역사회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주변사람들도 많다. 그때마다 그는 바쁠 땐 새벽 세시면 일어나 좀 더 과학적인 영농을 위해 컴퓨터로 영농일지를 쓰면서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귀띔한다.
그는 오랜 군인생활로 인해 남들보다 뒤늦게 농사에 뛰어들었으니 남들보다 갑절의 노력으로 새벽부터 서둘러 농사일을 다 해놓고 사회활동을 해야 집사람과 다툼이 없다며 씨익 웃는다. 지금에야 솔직히 말하지만 아내의 관심과 뒷받침이 없었다면 지역사회 봉사활동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실토한다.
그는 제7대 지방선거 때 군의회에 입성해서 지역사회에 더 큰 봉사를 꿈꾸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접고 오로지 농사 틈틈이 지역사회에 발전만을 바라면서 몸을 사리지 않는다. 오 위원장은 고령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3사관학교 군사학, 고등군사학교를 수료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양경화 여사와 슬하에 4남1여를 뒀다. 자녀들이 약사, 제약회사, 의사. 군인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항상 남을 먼저 챙기는 것은 아버지의 생활신조를 쏙 빼닮았다고 오 위원장의 주변 지인들은 말한다.
젊은 시절 군인으로서 국가에 봉사했고, 뒤늦게 뛰어든 농사도 근면과 성실로 헤쳐 나오면서 이제는 지역사회 발전에 심혈을 기울이는 애향심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최종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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