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솔 조각가 김태만 옹 ‘죽은 나무에 새 생명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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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솔 조각가 김태만 옹 ‘죽은 나무에 새 생명 불어넣다’

2. 죽은나무 뿌리에서 얻어진 보물.JPG

 

3. 목부작 새 생명으로 태어나다.jpeg

 

 

지역사회의 미담을 찾던 중 노재창 개진면장으로부터 아마추어 관솔 조각가 제보를 받고 개진면 인안2리(꼬미) 김태만(84세) 어르신 댁을 함께 방문했다. 마당에는 산에서 채취한 죽은 소나무 뿌리인 관솔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인기척에 밖으로 나와 반갑게 맞으시는 어르신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 보니 전시회를 마치고 옮겨온 십자가, 묵주, 목부작 등 관솔 작품이 한가득 진열돼 있었다. 다음 전시회를 대비한 작품들이라는 설명이다.
언제부터 관솔 조각을 했는지 궁금했다. 조각을 시작한 지 불과 1년 반도 채 안된 기간 동안 인근 산을 누비며 엄청난 량의 죽은 소나무 뿌리를 채취했고, 조각한 작품만 해도 수백 개의 작품이라고 배석한 노재창 개진면장이 귀띔했다.
더구나 관솔이란, 송진 덩어리로서 끈적끈적한 성분 때문에 톱이나 칼로도 작업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르신 손이 마치 노송 껍질 같았고, 손가락, 손등 곳곳에 상처 난 흔적이 작업의 어려움을 반증해 주는 듯 했다.
관솔은 소나무의 뿌리부분에 주로 생기는데, 소나무가 죽어서 상처를 입으면 옹이가 되고,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몸속에서 진액을 밀어내는데, 이것이 나무의 상처 부분에 스며든 것이 송진이다. 엄청나게 딱딱할 뿐만 아니라 무겁고 또 관솔향이 매우 짙다.
예로부터 송진은 쓰임새가 많았다. 천년을 간다는 먹을 만들고, 횃불의 소재로도 쓰였다. 관솔의 성분은 로진과 테레빈 유(油)라서 유화 그림물감 희석용으로 사용하는 기름, 불포화지방산 덩어리다.
관솔의 항암 성분이 활성산소를 억제해서 암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줄어들게 하고, 뇌신경계의 손상된 신경세포 보호기능이 있어 뇌졸중 예방에 좋고, 치료가 힘든 종기에 바르는 송진고약이 있으며, 방안에 두면 향기가 그윽하고 부엌에 두면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관솔은 오래전부터 선조들이 겨울철 난방과 취사를 위해 아궁이 장작불의 불쏘시개로 활용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관솔을 강압적으로 공출하도록 해 우리 민족이 나라 빼앗긴 아픔과 고통스러웠던 옛 기억을 되살리는 물품이기도 하다.
김태만 어르신이 관솔에 심취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하나뿐인 효녀 딸(김광숙, 54세)의 영향으로 관솔과 인연이 됐고, 관솔조각에 심취하게 됐다. 김광숙씨는 효성여고를 졸업하고 대구 가톨릭대학교 아동복지학과를 졸업, 대구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영성신학을 마치고 현재 공동체인 국제가톨릭형제회(AFI)에서 활동하고 하고 있다.
김광숙씨가 지난해 4월경 어느 신부로부터 관솔 한 토막을 선물 받고 장장 대여섯 시간 동안 다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가 다음날부터 산으로 올라가 관솔을 채취했다. 딸이 관솔향을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지만, 이제는 딸의 도움으로 전시회를 가질 정도 수준으로 명품들이 태어나고 있다. 불과 1년여 만에 이룬 업적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잘 안 된다. 김태만 어르신은 젊은 시절부터 가족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에는 아낌없이 나눠주는 성품이라 딸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관솔 채취를 자처했던 것이다.

부인과 사별 후 외로움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 후 소생
제2의 인생, 관솔조각 작품으로 승화시킨 ‘집념의 村老’
그로부터 2개월여 후 어르신에게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생을 마감하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것이다. 30여 년 전 사별한 부인 생각에 외로움을 극복할 수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 20여일 만에 퇴원한 후 그때부터 마당에서 관솔을 다듬기 시작했다. 오로지 딸이 관솔향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다시 시작했다. 나무의 결대로 다듬다가 새도 만들고, 물고기 모형도 만들면서 지친 몸과 마음의 회복 시간을 견디신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몸담고 있는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들의 방문을 받았다. 마당에서 관솔을 다듬으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회원들 앞에서 딸은 “아버지, 십자가 만들어 주세요” 이 한마디에 본격적으로 십자가를 만들기 시작해 현재까지 수백 개의 십자가를 깎아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누기도 하고, 전시회 출품도 했다.
지구 한 모퉁이 야산에 버려진 죽은 소나무 옹이인 관솔로 십자가를 창조한 김태만 옹, 종교인은 아니지만 관솔의 뿌리, 가지로 다양한 종류의 목부작을 비롯해 십자가, 묵주 등을 다듬는다.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죽은 소나무의 송진 품은 관솔에 새 생명을 불어 넣고 있다. 소나무의 모양, 관솔 향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김 옹의 손을 통해 상처와 죽음을 넘어 ‘생명’을 불어 넣는다.
김 어르신은 조각이란 걸 해 본 적이 없으면서도 손을 다쳐가면서 밤늦은 시간 까지도 끊임없이 하루 일과를 관솔 다듬으시는 데 정성을 쏟고 있다.
지난 10월 대구시 대명동 예수성심시녀회 남대영기념관에서 관솔로 만든 십자가로 생애 첫 전시회를 열었다.
관솔전시장을 둘러본 사람들은 모두가 탄성을 자아냈다. 진한 관솔향기를 뿜어내는 관솔조각에 모두들 매료됐을 법도 하다.
전시회 때 고향마을 분들을 대표해 이장 부부와 부녀회장 부부 등이 화분과 축하금을 들고 전시회장을 찾아 김 어르신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다.
전시회가 끝나고 김태만 어르신은 이를 보답하는 뜻에서 마을 분들을 초청해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이날 개진면장과 면직원들도 초대했고, 권태휘 동고령농협조합장과 박정현 도의원도 참석해 축하를 보냈다.
“주민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었고, 이웃이 더불어 살면서 살맛나는 마을 공동체를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딸인 김광숙씨가 전한다.
 

1. 송진먹은 속살이 나올때까지 깎고 또 깍아야 관솔이 나온다..JPG

 
김태만 옹은 1937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하늘, 땅, 물을 벗 삼아 땅을 일구며 평생을 욕심 없이 순박하게 살아왔다.
1957년 박순희씨와 결혼해 7남매를 뒀지만, 딸 넷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는 아픔을 겪었고, 딸 하나 아들 둘을 장성 시켰다. 김 옹이 자녀들에게 전하는 평소 삶의 철학은 ‘사람이 되라’는 인격 존중의 인본사상을 가르쳤다.
지금부터 30여 년 전인 1991년 김 옹이 54세 때 부인과 사별했다. 충격과 외로움이 너무도 커서 오로지 ‘성실과 겸허’ 라는 자세로 지금까지 잘 버텨 왔다.
김 옹, 노년 지론은 ‘노인은 자녀들의 짐, 나라의 부담’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급기야 지난해 6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지만, 가족의 발 빠른 대처로 소생했다.
이 후 김 옹은 ‘인명은 재천’임을 인식하고 “이제는 힘닿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 여생을 남에게 기쁨 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김 옹은 대구 전시회를 계기로 또 한 가지 꿈이 생겼다. 서울 명동성당에서 전시회를 갖고 싶었고, 바라던 대로 계획돼 있다고 밝혔다. 딸을 통해 정홍규 신부와 만남으로 관솔작품에 매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김 옹은 앞으로 자신이 만든 관솔 십자가와 목부작으로 각종 스트레스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영적 위안을 줄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최종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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