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박정희, 이건희 두 거목 스러진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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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0월은 박정희, 이건희 두 거목 스러진 달

최종동(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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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동(편집국장)

 
 

10월은 대한민국의 두 거목이 41년 시차를 두고 스러진 달이다. 구국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이 41년 전 10월 26일 서거한 날이고, 지난 25일은 변방이었던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로 알린 재계의 거목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한 날이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 주도 군사정변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무기력해진 국민을 다시 뛰게 만들었고, ‘보릿고개’라는 단어를 역사 속으로 밀어낸 부국강병의 시작이었다. 박정희의 “하면 된다”라는 슬로건은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된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그의 집권 18년은 대한민국을 크게 바꿔 놓았음을 부정할 사람을 없을 것이다. 물론 공(功)이 큰 반면 과(過)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박정희는 “통일의 길은 조국근대화와 경제적 자립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한일 수교, 경부고속도로 건설, 포항제철, 중화학산업 육성, 수출증대, 저축장려, 새마을운동 등의 업적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기본 인프라 구축이었지만, 이 모두가 극심한 반대 속에 관철한 점이 특이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통일미로 기아 해결, 그리고 베트남 전쟁 파병으로 미군에게 제공 받은 최신 무기들을 국산화 해 국방력을 크게 강화 시켰다.
그는 권력을 개인의 영달이 아닌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복리를 위해 집중했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성이 입증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한 그의 업적을 살펴보면, 1961년 1인당 국민소득 82달러에 불과했던 것이 그가 서거한 1979년 1,647달러로 성장했고, 수출은 4,100만 달러에서 150만 달러로 크게 급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61년 63%가 1차 산업에 종사하던 농업사회에서 1979년 63.4%가 제조업·서비스업으로 산업화사회로 탈바꿈 했고, 그 기간 동안 자동차 생산 26,538대에서 49만 4378대로, 중학교 진학율 49.5%에서 93.4%로 늘어나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변혁을 가져온 시기였다.
장기독재라는 오명이 항시 따라다니지만 기아선상에서 고통 받는 국민을 살리기 위한 잠시의 국민희생은 역사학자들도 평가하는 대목이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그 시대 학교 점심시간이면 수돗물로 배 채우던 아이들이 많았지만, 오늘날 음식이 남아돌아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만 봐도 5천년 우리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추앙 받아야 마땅하다.
지난달 26일 박정희 대통령 제41주기 추도식이 현충원과 광화문, 구미 생가에서 엄청난 추도 물결로 그를 추모했다.
대한민국 재계의 대표적인 경영인이었고,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4년 5월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은 후 6년 5개월 동안 투병 끝에 25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87년 창업주 이병철 회장에 이어 제2대 회장에 올라 26년 넘게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이 회장은 과감한 투자와 혁신, ‘세계 1위 전자회사’로 이끌었다.
1992년 D램 반도체가 처음으로 점유율 세계 1위를 기록했고, 평판TV, 스마트폰 등도 잇따라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회장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전자 임원들을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은 재계에 큰 화제를 낳았다. 이 외에도 당시 신경영 선언 어록을 보면, “뛸 사람은 뛰어라. 바삐 걸을 사람은 걸어라.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왜 앞으로 가려는 사람을 옆으로 돌려놓는가.” 등이다.
이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이던 그룹 매출이 2018년 387조원으로, 영업이익은 2천억 원에서 72조원으로 늘었다. 그룹 시가총액도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급성장했다. 이와 같은 실적 뒤에는 위기 때 기회를 찾고 남들이 기회라고 할 때 위기에 대비한 리더십이 이를 반증한다.
지난 28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 이어 한남동 자택과 집무실, 화성사업장 등에 들른 뒤 경기도 수원 선산에 안장 영면(永眠)에 들어갔다.
거목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시차는 있지만 10월에 우리 곁을 떠난 달이어서 추모와 함께 재조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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