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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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간다는 것

김년수(수필가, 일선김씨 문충공파 종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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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년수(수필가, 일선김씨 문충공파 종친회장)

 

 

장마 날씨다. 잠시 비가 그치자 어둡던 하늘이 훤해지고 한 줄기 바람에 가로수 나무가 후루룩 물기를 턴다.
어느 사인가 젖은 숲을 빠져나온 새들의 지저귐에 나도 코로나 19로 인해 휴강되었던 학원에 등록도 할 겸 서두르다 보니 쇼파 앞 탁자 위에 놓인 책이 눈에 들어온다.
공공도서관에서 책 읽기 권장도서로 빨리 읽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책 읽기를 권장해야 되는데 아직도 보지 못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책이다. 다른 사람들과 돌려가면서 책 읽기를 권장하여야 함에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몇 날이 지났다. 외출을 접고 그대로 쇼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런데 또 눈이 말썽이다. 가끔 친구들 모임에서도 화제가 되곤 하지만 나 역시 언제부터인가 책이 눈에서 멀어지더니 이젠 돋보기를 안 쓰고는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장시간 보기에는 더더욱 무리다. 지난번 대학병원 안과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을 때 녹내장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사의 말로 안약을 넣곤 하여 더 이상 진행은 안되었는데 눈이 점점 어두워져 안경을 쓰지 않으면 책을 읽을 수가 없어 의사로부터 ‘노안입니다’라는 말에 내가 벌써 늙었다고? 하긴 눈뿐이랴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무릎인대파열의 상처가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고 어깨와 허리가 콕콕 쑤시는가 하면 온몸에 경고등이 수시로 켜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언제까지나 그대로 일줄 알고 함부로 몸을 돌려 지금은 신체의 각 부분이 퇴화되어 간다고 생각을 하니 믿기지 않는 현실이 놀랍고도 서글프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는 7월의 계절처럼 젊은 시절이 나는 항상 그대로 인줄 알았다. 마치 노인의 종족이 따로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도 나이 탓일까? 부쩍 삶에 대한 조바심과 지난날이 후회와 애착이 혼합되어 갈피를 잡지 못할 때도 있다.
어린것들 키우면서 공무원의 박봉에 아둥바둥 사는 동안 바람같이 지나온 공직에서 40여 년의 세월! 남몰래 그려보던 꿈도 있었지만 늘 바쁘다는 현실에 밀리다 보니 이젠 뜬구름이 되어 아주 멀어져 가는 것을 느끼며 화려하게 한번 세상을 울리고 싶었지만 향기도 없이 시들어 가야하는 것인 것 같다.
에펠탑이 있는 보랏빛 하늘 꿈은 애시당초 접어야 할 꿈같은 일이었을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섭섭하진 않으련다. 자아실현에 대한 미련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내 모든 것을 가족에게 쏟았기에 지금 이렇게 에펠탑에 비할 바가 아닌 가정탑이 건재하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할 일인가.
갱년기를 겪으며 쉼 없이 달려가는 칠순의 고지가 눈앞에 닿아서일까. 이 시점에서 나는 지나온 세월을 반추해보면서 잘못된 날들은 반성하고 또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만 내 인생을 간직한 체 좀 더 가치 있고 보람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한 번씩 유행어 같이 들어보는 그 말 늦다고 생각할 때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또 ‘내일 지구기 종말이 온다해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고한 스피노자의 명언처럼 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리다. 그리하여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내 가정만이 아닌 주위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로등과 같이 어두운 골목 한 귀퉁이라도 밝힐 수 있는 참된 삶을 살고 싶다.
삶의 지혜란 굳이 내가 무언가를 많이 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편안한 멈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들어난다는 간단한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욕망이 솟아 오른다.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내 생각이
내 아픔이
내 관계가
멈추면서 그것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그것들에 휩쓸려 살아야 했던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잘 보일 것이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내일은 날씨가 아주 갠다고 하니 비에 젖어 처져 내린 시골의 고추밭에서 붉은 고추도 따고 풀도 맬겸 햇살이 퍼지기 전에 일찍 들로 나가 봐야겠다.
장마가 지나면 더욱 뜨거운 태양처럼 갱년기가 풀어놓은 태엽을 탱탱 감아서 다시 뛸 것이다. 내 인생의 풍요로운 가을맞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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