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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별(門中別) 학맥(學脈) 고찰(考察)

기사입력 2020.08.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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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별 고령 유학의 학맥(學脈) 주류(主流)

     

    (1) 고려시대 고령 유학을 고찰하면 중기에는 학문을 중시하는 분위기인 문풍(文風)과 관련하여 특기(特記)할만한 인물은 인종(仁宗) 때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청렴(淸廉)·충직(忠直)하기로 이름이 났으며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치사(致仕)한 신숙(申淑)과 고종 39년(1252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밀직부사(密直副使) 감찰대부(監察大夫) 사림학사승지(詞林學士承旨)로 치사(致仕)하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칠언시(七言詩)와 오언시(五言詩)로 엮은 서사시(敍事詩)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고 가리이씨(加里李氏)의 시조(始祖)인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李承休) 등이 있었고 말기에는 정주학(程朱學 :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의 제자인 백이정(白正)에게서 일찍이 수학해 성리학(性理學)에 밝았고 우왕 때 충정왕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던 문충공(文忠公) 초은(樵隱) 이인복(李仁復)을 들 수 있다. 공은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의 손자이며 검교시중(檢校侍中)을 지낸 이포(李褒)의 장남으로 고령군 운수면 연봉리에서 출생하였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영봉서원기(迎鳳書院記)에서“문학도 고고(高古)하여 그 이름이 중국에까지 소문이 났다”고 하였다.

     

    (註釋1) 정주학(程朱學)
    중국 송나라, 명나라 때에 주돈이(周敦), 정호(程顥), 정이(程) 등에서 비롯하고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유교 철학으로서 ‘성명(性命 : 인성과 천명), 이기(理氣), 의리(義理)’를 강조하는 학문을 말한다. 신유학(新儒學)·도학(道學)·이학(理學)·성명학(性命學) 또는 이것을 대성시킨 정호(程顥)ㆍ정이(程)와 주희(朱熹)의 이름을 따서 정주학(程朱學)이라고도 한다.

     

    (註釋2) 고고(高古)
    시문(詩文)의 격조(格調)가 고상하면서 예스런 정취가 있음. 고(高)는 비천하지 않다는 것이며, 고(古)는 속되지 않다는 의미이다.

     

    (2) 조선시대 고령 유학은 세종 24년(1442년) 고령현감(高靈縣監)으로 부임한 강호(江湖) 김숙자(金淑滋)가 문풍(文風)을 진작(振作)시켜 유학(儒學)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하에서 시대별 고령 유학의 학맥(學脈)의 주류(主流)를 살펴보기로 한다.

     

    ① 15세기 유학자로 송오(松塢) 이사징(李士澄)은 산화(山花) 이견간(李堅幹)의 문하에서 종유(從遊)하였고 죽계(竹溪) 이신문(李信文)은 방촌(厖村) 황희(黃喜)에게 수학하였으며 서호산인(西湖散人) 송순손(宋順孫)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는 등 다양한 학맥(學脈)이 존재하였으나 학맥(學脈)에 주류(主流)는 없었다.


    ② 16세기 중엽에는 남명(南明) 조식(曺植) 사후(死後)에 그의 문하생(門下生)들인 세칭(世稱) 낙강칠현(洛江七賢)이 1589년 5월에 개산포(開山浦)에서 강정(江亭) 멍드미 사망정(四望亭)에 이르는 강 위를 선유(船遊)하면서 시회(詩會)를 열었고 남명(南明) 조식(曺植)선생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위한 소청(疏廳)을 고령 지역에 설치하고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상소문(上疏文)이 채택되었으며 선조 34년(1601년) 12월 20일 경상도 유생 문경호(文景虎)가 기축옥사(己丑獄死)로 억울하게 죽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의 신원(伸寃)을 청하는 '신최수우영경소(伸崔守愚永慶疏)', 즉 이른바 고령소(高靈疏)가 작성되는 등 남명학(南冥學)이 주류(主流)를 형성하였다.


    (註釋1) 문묘종사(文廟從祀)
    문묘(文廟)란 공자(孔子)의 제사를 모시는 사당(祠堂)을 말한다.  문묘종사(文廟從祀)란 공자의 사당에 학덕 있는 사람의 위패를 모셔 함께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하며 국가에서 인정하는 대유학자(大儒學者)로서 문묘(文廟) 종사(從祀) 인물을 배출한 각 가문(家門)은 어느 권문세가(權門勢家)를 뛰어넘는 국반(國班)으로서 대대손손(代代孫孫) 더 없는 영예(榮譽)로 알았다.

     

    (註釋2) 기축옥사(己丑獄死)
    선조 22년(1589년) 10월에 정여립(鄭汝立)이 ‘대동계(大同契)’라는 단체를 만들어 역모(逆謀)를 꾀하였다 하여, 3년여에 걸쳐 그와 관련된 1,000여명의 동인계(東人系)가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특히 조식(曺植)의 문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조식(曺植)의 제자인 최영경(崔永慶)은 역모의 또 다른 괴수로 인식된 길삼봉(吉三峯)으로 몰려 옥사(獄死)를 당하기도 했다.

     

    ③ 그러나 광해군 15년(1623년) 3월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북인 정권이 몰락되면서 고령지역의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의 문인들은 처형(處刑), 중도부처(中途付處). 파직(罷職)당하였고 다시 인조 9년(1631년) 2월 합천의 정한(鄭澣), 고령 도진의 박희집(朴禧集), 창녕 성지도(成至道) 등이 북인(대북) 잔당을 규합하여 광해군의 복위를 음모하였으나 실패한 광해군복위음모사건(光海君復位陰謀事件)의 여파로 명맥(命脈)을 유지하였던 고령 지역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의 문인들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 남명학(南冥學)은 급격하게 퇴조(退潮)하였다. 17세기 초반에는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을 중심으로 하는 한려학파(寒旅學派)가 고령유학의 새로운 지평선을 개척하였다.

    고령향교, 대가야읍 향교길29-18.JPG

    고령향교(대가야읍 향교길29-18)

     

    (註釋) 한려학파(寒旅學派)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그의 문인(門人)이자 질서(姪壻)인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학식과 덕행을 존숭(尊崇 : 존경하고 숭배함)하여 이를 추종하던 학파를 말한다. 

     

    ④ 17세기 후반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8세기 중 · 후반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청천(青泉) 신유한(申維翰)의 학맥(學脈)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지역 출신 나학순(羅學洵)과 성주 출신 이지완(李志完) 등이 주도하여 숙종 38년(1712년) 노론계 서원인 노강서원(老江書院)을 창건하여 영남 내 자파세력인 노론(老論)세력을 부식(扶植)하여 다양(多樣)한 학맥이 고령 지역에 공존(共存)하고 있었다.


    ⑤ 19세기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 간재(艮齋)  전우(田愚), 시암(是菴) 이직현(李直鉉) 등 노론(老論) 계열의 학맥이 있었으나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정재학파(定齋學派),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과 그의 문인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 등의 한주학파(寒洲學派)와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의 만구학파(晩求學派),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사미헌학파(四未軒學派),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성재학파(性齋學派) 등으로 이어지는 퇴계학파(退溪學派)가 지역 학맥의 주류를 형성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문도(門徒)가 지역 유림(儒林)의 주축(主軸)을 이루었다.

     

    고령 유학의 특징(特徵)

     

    (1) 서언

    강안학(江岸學)의 전반적인 특성(特性)은 기령학(畿嶺學)과 퇴남학(退南學)을 융합한 회통성(會通性), 박학(博學)에 바탕한 실천정신의 실용성(實用性),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독창성(獨創性)이 고령 지역의 유학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고령 지역 유학의 최대의 특징인 실용성(實用性)은 독창성(獨創性)과 함께 차별화되었다.

     

    (註釋) 강안학(江岸學)
    16세기 이후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낙동강 중류지역인 강안지역(江岸地域)에서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모두 수용하는 독특한 학풍(學風)을 형성하면서 발달한 유학(儒學)을 말한다. 강안지역(江岸地域)은 구체적으로 상주, 의성, 김천, 구미, 칠곡, 성주, 대구, 고령, 현풍, 합천, 창녕, 영산, 의령, 함안, 밀양, 청도, 창원지역을 지칭한다.


    (2) 회통성(會通性)
    낙천(洛川) 배신(裵紳)과 송암(松菴) 김면(金沔)은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양문(兩門)에서 수학하여 남명학(南冥學)과 퇴계학(退溪學)을 복합적으로 수용하는 퇴남학(退南學)을 회통(會通)하는 학술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퇴남학(退南學)의 회통성에서도 남명학(南冥學) 쪽으로 다소 경사(傾斜)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노론(老論) 핵심인물을 제향한 노강서원(老江書院)을 건립을 계기로 향내(鄕內)에 파평윤씨, 수성나씨, 성산전씨,창녕조씨, 김해김씨, 진양정씨 문중 등 6개 문중이 기호학(畿湖學)을 수용하여 노론계(老論系) 학맥(學脈)을 고수한 것은 기령학(畿嶺學)의 회통성(會通性)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事例)이다.

     

    (註釋1) 회통(會通)
    화해소통(和會疏通)의 준말로 학문의 어려운 이치를 잘 통하도록 풀이를 하여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註釋2) 기령학(畿嶺學)
    근기(近畿 :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 남인(南人)과 영남(嶺南) 남인(南人)의 학문을 중심으로 말한 것인데 기호지방(畿湖地方 경기도와 황해도 남부지역, 충청남도 북부지역)의 학문이 상주, 칠곡, 대구 등에서 융합되면서 기호학(畿湖學)의 회통적(會通的) 측면을 ‘기령학(畿嶺學)’이라는 용어로 표시하였다.

     

    (註釋3) 퇴남학(退南學)
    퇴계학(退溪學)과 남명학(南明學)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3) 실용성(實用性)

    임진왜란 때 고령지역은 통신사(通信使)의 길인 우로(右路)에 위치하여 있었고 낙동강을 통한 운송로(運送路)를 확보하여 북상(北上)하고 있는 일본군의 보급품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한 전략적(戰略的) 요충지(要衝地)이자 일본군이 곡창지대(穀倉地帶)인 호남지역(湖南地域) 진출(進出)을 차단(遮斷)하는 전략적(戰略的) 요충지(要衝地)이었다. 배운 지식이 행동을 통하여 실천되어야 한다는 주경과의(主敬果義)의 학문적인 일체감(一體感)이 무예(武藝)를 숭상하는 상무정신(尙武精神)으로 표출되어 송암(松菴) 김면(金沔)과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 의병장(義兵將)을 중심으로 고령지역 18개 문중이 분연히 창의(倡義)에 동참하여 개산포전투(開山浦戰鬪), 무계전투(茂溪戰鬪) 등 각종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타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事例)이다. 지경거의(持敬居義), 반궁체험(反躬體驗), 실천궁행(實踐躬行)을 기치(旗幟)로 하는 남명학파(南冥學派)의 학풍(學風)이 국가가 위난(危難)에 빠졌을 때 구국창의(救國倡義)로 이어져 의병활동(義兵活動)으로 승화(昇華)된 결과이다. 또한 기재(棄齋) 김수옹(金守雍)이 ‘남전여씨향약지의(藍田呂氏鄕約之義)’라는 10조의 향약(鄕約)을 제정하여 상호부조(相互扶助)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학풍(學風)을 진작(振作)하고 생활화(生活化)함으로써 향풍(鄕風)을 쇄신(刷新)시켰다. 죽유(竹牖) 오운(吳澐)의 후손인 괴석정(槐石亭) 오경정(吳慶鼎)이 순조 1년(1801년) 27개 절목(節目 : 조목)의 매촌동약(梅村洞約)을 만들었으나 순조 22년(1822년) 3개 절목(節目)이 추가되어 30개 절목이 되었다. 매촌동약(梅村洞約)의 요목별(要目別) 절목(節目) 내용은 공동기금 마련과 관리, 조직과 운영, 부세(賦稅)의 공동납(共同納), 환난상휼(患難相恤 : 재난을 당하면 서로 도와줌), 예속상교(禮俗相交 : 서로 사귐에 예의를 지킴), 과실상규(過失相規 : 잘못을 서로 고쳐줌) 등 크게 6가지로 분류할 수 있으나 30개 절목(節目) 중 장례부조(葬禮扶助)에 관한 것이 8개 조항과 부세(賦稅)의 공동납(共同納)에 관한 조항이 7개 조항을 차지하여 일상생활에 직접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동약(洞約)이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실용성(實用性)에 바탕한 실천정신(實踐精神)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註釋1) 지경거의(持敬居義)
    주역(周易)에서 나오는 “경이직내(敬以直內) 의이방외(義以方外)”를 말한다 즉 경(敬)으로 마음을 곧게하고 의(義)로써 밖을 반듯하게 한다는 뜻이다.

     

    (註釋2) 반궁체험(反躬體驗)
    ‘자신에게 되돌려 체험하다’라는 뜻으로 성현(聖賢)의 가르침을 배워서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몸소 체험하는 실천 정신을 강조한 말이다.

     

    (註釋3) 실천궁행(實踐躬行)
    지식을 알면 바로 행하여야 된다는 뜻이다.


    (4) 독창성(獨創性)

    만년에 장재(張載)의 기철학(氣哲學) 사상을 연구한 옥산(玉山) 이기춘(李起春)과 기철학(氣哲學)을 존중하여 “맑고 한결같은 상태가 기(氣)의 근본(根本)이라는 장재(張載)의 말을 인용하면서 ”기(氣)의 정상(精爽)을 리(理)로 해석하는 한주학파(寒洲學派)의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披瀝)한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의 사상, 주자학(朱子學)의 왕국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던 목릉성세(穆陵盛世 : 선조 시대 학문과 문화의 전성기를 뜻하는 말)에 최초의 양명학자(陽明學者)로 지목되었던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을 찾아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정통 주자학 사상과 어긋난다며 비판하면서 이단(異端)으로 간주하였던 양명학(陽明學)을 수용(受容)하였던 용담(龍潭) 박이장(朴而章)의 진취적인 학문적 자세, ‘고대희랍철학고변(古代希臘哲學攷辨)’을 통해서 성리학(性理學)의 진리성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성리학 특히 한주학(寒洲學)의 연구를 통해서 서양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도출하여 그 연장선 위에서 당시 보수유림 사회의 문제점을 개혁하고자 했던 성와(省窩) 이인재(李寅梓)의 유교개혁사상(儒敎改革思想) 등이 고령지역 유학이 지니는 특수성(特殊性)이자 독창성(獨創性)이다. 이밖에 청천(靑泉) 신유한(申維翰)은 문학사상적 측면에서 성리학적(性理學的) 수양체계(修養體系)를 중시하면서도 이것에서 훨씬 벗어나 도가(道家)나 불가(佛家)적 세계를 여과(濾過) 없이 받아들인 독창적(獨創的)이고 개성적(個性的)인 시세계를 건축하여 30년 동안 도성(都城 : 서울)의 문단(文壇)을 주도하였으며 한국 한문학사에 뚜렷한 위상을 차지하였다.

     

    (註釋1) 기철학(氣哲學)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 현상세계가 기(氣)의 운동과 작용에 의해 이루진다는 철학이다. 기(氣)는 물질의 궁극적인 최소 질량단위이면서 에너지 단위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존재 현상은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데 따라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본다. 장재(張載)는 북송 때의 철학가이자 사상가이다. 태허즉기론(太虛卽氣論)을 주장했다. 기(氣)가 집합해서 만물이 생기고 기(氣)가 흩어지면 종국에는. 태허(太虛 : 무형의 우주본체)가 된다고 하였다.

     

    (註釋2) 이(理)
    천리(天理)나 물리(物理) 또는 사리(事理) 등 성리학(性理學)에서 우주의 본체 또는 사물의 원리 내지 법칙을 가리키는 유교용어를 말한다. 사물은 각기 하나씩의 이(理)를 갖추고 있다. 하늘에도 이(理)가 있기 때문에 이를 천리(天理)라고 하며, 사물에도 이(理)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물리(物理) 또는 사리(事理)라고 한다. 이(理)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이치(理致)로써 현실로써의 기(氣)가 작용하도록 하는 일종의 주관자(主管者)이다.

     

    (註釋3) 기(氣)
    만물 또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요소 물질의 근원 및 본질을 말한다. 기(氣)란 위에서 설명한 이(理)가 발현(發顯)된 것이다. 모든 존재현상은 기(氣)의 취산(聚散), 즉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데 따라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생명의 근원으로 본다.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 세계이고 현실 그 자체가 기(氣)이다.

     

    (註釋4) 정상(精爽)
    만물의 근원을 이룬다는 신령스러운 기운 즉 정령(精靈)을 뜻한다.

     

    (註釋5) 양명학(陽明學)
    중국 명(明)나라 때의 왕양명(王陽明)이 주창(主唱)한 유학(儒學)으로 심학(心學)이라고도 한다. 마음 밖에 사리(事理 : 사물의 이치)가 따로 없으며, 사람마다 양지(良知 : 마음의 본체)를 타고났으나, 물욕(物慾)이 있는 탓에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이 구별(區別)되는 것이니, 이 물욕(物慾)의 장애(障礙)를 물리칠 때에, 지행합일(知行合一 :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 된다는 철학(哲學)이다. 성리학(性理學)은 천명(天命)의 본성(本性)을 중시하고 지식은 후천적으로 얻어진다 믿으며, 학습을 중시하고 지식과 행동은 분리되어 있다고 여긴다. 반면에, 양명학(陽明學)은 마음을 중시하고 선천적인 지식을 믿으며 학습을 중시하지 않고, 지식과 행동은 합일되어야 한다는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장한다.

     

     

    집필 : 향토사학자 이동훈(李東勳)
    정리 : 최종동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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