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울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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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울 사이에 있다

우리는 너울 사이에 있다


정아경<수필가>

 

 

시골보다 도시가 좋다. 자연의 법칙에 충실한 시골은 일찍 어두워졌다. 어둠이 내린 시골은 공간이 넘쳤다. 난 그 텅 빈 듯한 공간의 여백을 채울 자신이 없었다. 상상력도 부족했고, 놀거리도 부족했고, 친구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도시는 달랐다. 해가 져도 환했고, 도로는 차들로 가득했고, 사람들로 왁자했다. 그 속에 서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완성된 것들 사이에서 나 역시 완성되고 있는 중이라고 쉽게 위안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충만감에 속이 부대낀다. 충만감이 아니라 포만감이라고 불러야할까.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과 그 안에 빼곡하게 찬 사람들이 한 마디씩 뱉어내는 말들이 공포로 다가온다. 일면식 없는 사람과 어깨를 맞대며 영화를 관람하고, 좁은 카페에 앉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들숨과 날숨을 공유하는 나의 일상은 빨간 엑스가 쳐진 채 주의사항 중 하나로 전락했다. 전화로도 바이러스가 옮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들과 대구를 봉쇄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글들은 안타깝게도 웃음을 주지 못하고 나를 위축시키기만 했다.
바이러스 쇼크에 감전된 도시의 한복판에서 하지 말고, 하면 안 된다는 부정(do not)의 의무들을 곱씹으며 몇 주가 흘렀다. 사람이 모이는 곳을 가면 안 되고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 안 되고 마스크 없이 밖에 나가면 안 되는 류의 의무들을 성실히 이행하는 중이다. 시민의 몫으로 남겨둔 것만큼이라도 잘 지키자는 생각이었다. 몇 주간의 칩거생활은 몸에 익어갔으나 활동적인 것에 길들여진 정신은 몸에 복종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몸 하나는 가둬놓을 수 있었지만 불어나는 권태로움은 가둘 수 없었다.
믹스 커피를 두 봉 뜯어 멍하니 휘저었다. 매일 먹던 S사 카페라떼의 담백함을 끊자 금단현상처럼 달콤함이 땡겼다. 달짝지근한 커피를 호록거리며 거실 의자에 걸터앉았다. 저 문. 가족 이외에 그 누구도 저 문을 열고 들어오지를 않은지 스무날이 되어간다. 아이들이 목청 터져라 장난치는 소리에 귀가 멍멍한 적은 있어도 아무런 소음이 없어서 귀가 멍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숨을 잠시 멎고 있으면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라도 들릴 것만 같다. 그렇게 한참 저 문을 바라봤다. 파도가 밀려오지 않는 바다……. 외딴 섬에 고립된 나는 움직임이 없는 파도를 보며 괴이한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영영 이 섬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타인의 섬에 가닿으려면 돛을 펼쳐 파도를 타고 바람을 타고 흘러가야하는데 바다가 고요하다. 배가 꿈쩍을 않고 제자리를 고집한다……. 지금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순간의 공포는 여운을 오래 남긴다.
 몽롱한 몽상을 깨운 것은 초인종 소리였다. 곧이어 묵직한 소리들이 들려왔고 택배 기사님은 익숙한 듯 문 안의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떠났다. 택배 올 것이 있었는지 돌이켜보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열어본 현관문 앞엔 박스가 가득했다. 낯익은 이름들이 발송인 란에 적혀있었다. 저녁이 되어 가족들과 함께 택배를 뜯었다. 크리스마스 아침의 아이들처럼 박스를 뜯을 때마다 연신 환호성을 내뱉었다. 산더미 같이 쌓인 누룽지 박스들과 즉석 떡볶이 박스들. 전자는 나에게 온 선물이고 후자는 딸에게 온 선물이다. ‘누룽지를 좋아한다.’ ‘떡볶이가 먹고 싶다.’ 내뱉은 지도 모르고 흘려보낸 말들을 누군가 기억해줬다는 것이, 기억에서 더 나아가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간지럽힌다. 조금 더 있자 노란색 비타민이 담긴 박스가 도착했다. 어디 아픈 곳 없이 성한 게 머쓱해질 정도로 감사한 마음들이었다.
쏴아- 쏴아- 밤늦게 원고를 뒤적거리는데 뒤통수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일정해보이지만 제멋대로인 간격. 텅 빈 도로를 쾌속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가 겹쳐져 만들어내는 배경음악이다. 산골에서 자라 분지에 뿌리를 내린 내게 바닷가의 파도보다도 더 진짜 같은 파도 소리였다.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길 때의 무력감. 역설적이게도 언제나 그 무력감이 나를 작동시켰다. 수동적으로 넘실거리는 와중에 더욱 내면의 소리가 또렷이 들리는 것처럼, 철저한 공허 속에서 생의 의지를 찾는 법이다. 굳게 닫힌 문을 보며 반복적으로 그려내던 여러 이미지들과 그것을 단번에 부수던 초인종 소리를 차례대로 떠올렸다. 미동 없는 바다의 수평선 너머에서 선물꾸러미들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왔고 그 힘에 파도가 생겨났다. 마음이 일렁였다.
하고자 하고, 해야만 한다는 긍정(do)의 의무들을 안고 많은 이들이 대구로 모여들고 있다. 그들은 바쁘게 물품을 정리하고, 분주히 응급환자를 응급차와 연결시킨다. 그들이 뿜어내는 긍정의 숨결들이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방구석에서 푹푹 내쉬고 있던 한숨들 위로 그들의 가쁜 숨결이 덧입혀졌다. 뉴스를 보니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한 택배들처럼 ,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택배가 도착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것은 감사의 손 편지, 어떤 것은 비누와 샴푸, 어떤 것은 도시락. 의료진들도 자원봉사자 분들도 분명 택배 상자 안에서 튀어나온 갖가지 물건들을 마주하며 헤아릴 수 없는 뭉클함을 느꼈을 것이다.
베일에 가린 듯 내일이 막막하지만, 삶의 의미는 어떤 곳에서도 찾아지나보다. 강제된 고립과 극도의 혐오는 몸의 고통 못지않은 강도로 정신을 괴롭힌다. 확산되는 불안은 타인에게서 원인을 찾게 한다. 예고 없이 그들의 ‘타인’이 된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그런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 무턱대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보다 누군가의 잃은 입맛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도 도시의 차가운 멋에 잔뜩 심취한 나의 탓이기에, 나는 어제의 나를 반성한다. 경계선 바깥의 타인에 대해 무덤덤했던 태도 역시 고통 받는 누구에게는 폭력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가 웃자고 던진 말들이 싸늘하게 식은 문장들로 기억되는 것처럼 말이다. 현관문을 닳도록 드나들고 빠른 속도로 도시를 휘젓고 다니면서도 얻지 못한 것들을 굳게 닫힌 현관문 안에서 얻었다. 아주 느린 속도로, 아주 좁은 보폭으로. 
우리는 너울 사이에 있다. 우리는 지나간 파도와 밀려오는 파도 사이에 있다. 찰나의 고요는 정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밀려오는 파도 역시 곧 지나간 파도가 될 테지만, 그러면 어떠랴. 다시금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정아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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