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다가 멋지게 인생 마무리하는 것도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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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다가 멋지게 인생 마무리하는 것도 실력이다

최종동<수필가/편집국장>

 

요즘 들어 장례식장에 가는 횟수가 부쩍 많아졌다. 친구 부모님이나 내 주변의 지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의도적으로 죽음에 대한 얘기는 기피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세 가지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엄연한 철칙이다. 첫째 인간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두 번째 혼자 죽는다. 사고사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다음 마지막은 빈손으로 죽는다. 즉,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것, 이 세 가지는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잘 먹고 산다는 것,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죽기 때문에 품위 있게 인생 마무리가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뭔가를 시작할 때 ‘준비’라는 단어를 붙인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출산 준비 등…. 그러나 인생을 마무리하는 ‘죽음 준비’ 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죽음은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공통된 심리라고 봐야겠다. 은퇴 준비는 허술하고, 임종 준비라는 단어는 금기시 돼버린 이유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60대 이후를 남아 있는 기력, 남은 돈으로 살려고 생각한다. 지금은 백세시대인데도 말이다.
내 몸 돌볼 새 없이 가족들 건사하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먹고 살기 바쁜 현실을 버티다 보면 어느새 거짓말처럼 노후가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그때부터라도 정말 ‘잘 죽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식들 형편에 맞춰서 아파야 하고, 자식들 돈에 맞춰서 병원에 끌려 다닐 수밖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때부터 부모 입장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지는데다 자식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상황이 벌어진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에게 주는 것은 조금도 아깝지 않고 당연시 한다. 자신의 노후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자식에게 다 주지 말고, 내 자존감을 지키며 마지막을 잘 정리할 수 있는 비용은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자녀들이 부모 사후에 원망 대신 아름다운 추억과 스승다운 모습을 남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마지막 내공과 실력을 쌓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게 어디 보통 실력인가. 나이 들수록 부지런히 움직이고 공부하지 않으면 그런 내공은 갑자기 생길 수가 없다.
인생 60이 넘으면 고집이 세져서 남의 말은 잘 안 들으니 스스로라도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담긴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렇게라도 노력해야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잘 죽는 것이야말로 한 인간의 인생이 담긴 진짜 실력이다.
어느 장례식장에서 상주에게 직접들은 얘기다. “친구야! 사람이 죽는 것도 실력이 있어야 돼! 그런 면에서 우리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실력으로 끝까지 품위 있게 스승 노릇을 하셨다네.” 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고인(故人)이 되신 아버지는 반년 전 암(癌) 진단을 받고, 6개월 시한부 판정으로 담당의사가 나에게 남은 기간 잘 해드리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갑자가 닥친 죽음 앞에서 당황할 법도 하지만, 모든 것을 예감했음인지 아버지는 그때부터 차분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했다고 한다.
자신이 임종 후 혼자 살아갈 아내를 위해 자그마한 집으로 이사를 하고, 재산을 정리해 자식들에게 선물처럼 조금씩 나눠줬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잘 아파야 되고, 잘 죽어야 된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플 비용, 죽을 비용을 다 마련해뒀다. 너희들 사는 것도 힘든데 부모 아플 비용까지 감당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나. 아버지가 오랫동안 준비해 왔으니 돈 걱정은 말고, 내가 눈을 감기 전에 너희들 얼굴만 자주 보여줘라” 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스스로 정한 병원에 입원하셨다.
임종이 다가오자 아버지는 담당의사에게, 만약 심정지가 오면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고, 등록기관 상담사를 불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직접 작성해 문서에 서명까지 마치고 등록하게 했다. 자식들에게 아버지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아픔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임종이 가까워서는 1인실로 옮기기로 미리 이야기 해 두셨다. 임종 순간 자신이 고통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겁먹을 수 있으니 가족들과 조용히 있고 싶다는 뜻이었다.
친구의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있다. 가족들 모두에게 각각의 영상편지를 남긴 것이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손녀들에게 가슴 뭉클한 작별인사를 하며 영상 끝에 이런 당부를 남기셨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 모두 들어라! 아버지가 부탁이 있다. 모두들 한 달에 한 번씩은 하늘을 봐라, 아버지가 거기에 있다. 너희들 잘 되라고 하늘에서 기도 할 테니 꼭 한 달에 한 번씩은 하늘을 보면서 살아라. 힘들 때는 하늘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마지막까지 존경스러운 스승의 모습으로 살다 가셨다. 어떻게 아파야 하는지, 죽는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존엄성을 지키면서 인생을 마무리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셨다.
자녀들 모두는 동영상을 볼 때마다 아버지께서 잘 사시다가 멋지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 자체가 진짜 실력임을 입증했다.

 

사본 -최종동 국장.jpg

최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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