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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맥(學脈)에 따른 고령(高靈)의 유학자(儒學者) 고찰(考察)

기사입력 2020.06.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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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서원(맨위 사진), 자운서원

    서문

    본지는 조선시대 이후 고령출신 유학자(儒學者)를 각종 문헌의 근거에 따라 사승(師承) 관계를 고찰하여 학맥(學脈)을 분류하고 학문 및 업적 등을 기술(記述)하여 고령출신 유학자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하오니 애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1. 서언

    (1) 고령은 지리적으로 경북 남서부에 편재(偏在)되어 있고 영남 유학의 전통적 사상 중 안동(安東)을 중심으로 한 ‘좌도(左道)의 ‘퇴계학(退溪學)’과 진주(晋州), 산청(山淸)을 중심으로 한 ‘우도(右道)’의 ‘남명학(南冥學)’의 사상적 점이지대(漸移地帶 : 경계)에 있었다. 특히 지리적(地理的) 인접성(隣接性)에 기반하여 고령의 유학자(儒學者)들은 낙동강 중류의 연안지역(沿岸地域)인 성주의 한강(寒岡) 정구(鄭逑),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 칠곡(인동)의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현풍의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합천의 남명(南冥) 조식(曺植) 등 이들 지역에서 배출한 명현(名賢)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 이하에서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의의(意義),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의의, 시대별 고령 유학의 학맥 주류, 문중별 학맥 고찰 등을 상술(詳述)하여 조선시대 고령지역 주요 유학자들을 생애와 사상 등을 조명(照明)하기로 한다. 

     

    2.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의의(意義)

    통상 영남학파(嶺南學派)란 영남(嶺南)을 지역적 배경으로 삼는 학문상의 유파(流派 : 원줄기에서 갈려 나온 갈래나 무리)로서 영학파(嶺學派), 퇴계학파(退溪學派), 남명학파(南冥學派), 한려학파(寒旅學派) 등을 총칭(總稱)하는 명칭이다.

    (1) 영학파(嶺學派)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야은(冶隱) 길재(吉再), 강호산인(江湖散人) 김숙자(金叔滋)의 학맥을 계승한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을 영수(領袖)로 하는 영남(嶺南) 사림파(士林派)를 말한다. 김종직(金宗直)의 학통(學統)은 김굉필(金宏弼)에 이어 조광조(趙光祖)로 계승되었다. 길재(吉再)는 고려 말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권근(權近)의 문인으로 실제 학문은 권근(權近)에게서 얻은 바가 많으나 도학정신(道學精神)은 정몽주(鄭夢周)를 계승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볼 때 사림파(士林派)의 학문(學問) 연원(淵源)은 학문상의 전래(傳來) 과정과는 다른 측면 즉 실천적(實踐的) 절의(節義 : 절개와 의리) 정신을 주된 평가 대상으로 고려하여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학파의 특징은 유학의 요소 중에서 한편으로는 주로 실제적(實際的)인 정치(政治)·경제(經濟)·법률(法律)·문장(文章)을 학문의 대상으로 하는 한당류(漢唐類)의 학풍(學風)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적(理論的)이고 철학적(哲學的)인 성리학(性理學)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송학류(宋學類)의 학풍(學風)을 혼합한 것이었다.

    (註釋1) 사림파(士林派)
    조선 초기 산림(山林)에 묻혀 유학 연구에 힘쓰던 문인들의 한 파를 말하며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 등을 중심으로 하고 조선 초기 세조 때 이후 공신세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료집단인 훈구파(勳舊派)를 비판하고 성리학을 사상의 기반으로 삼고 유교 경전을 중시했으며, 의리(義理)와 명분(名分), 절개(節槪)를 강조했다.

    (註釋2)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를 가르켜 우리나라 성리학(性理學)의 조종(祖宗 : 시조가 되는 조상)이란 뜻으로 길재(吉再) - 김숙자(金叔滋) - 김종직(金宗直) - 김굉필(金宏弼) - 정여창(鄭汝昌) - 조광조(趙光祖) 등으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도통(道統 : 도학의 계통)의 뿌리가 되어 500년 동안 조선 성리학의 조종(祖宗)으로 추앙받았다.

    (註釋3) 도학정신(道學精神)
    육경사서(六經四書)의 참뜻을 마음 속 깊이 인식하여 이를 실제 생활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정신을 뜻한다. 육경(五經)은 《시경(詩經)》,《서경(書經)》.《예기(禮記)》,《악기(樂記)》,《역경(易經)》,《춘추(春秋)》의 6가지 경서(經書)를 말하며 사서(四書)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뜻한다.

    (2) 퇴계학파(退溪學派)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덕행(德行)을 숭모(崇慕)하고 그의 학문 사상을 추종하는 유파(流派)로 영남좌도(嶺南左道)에서 형성되었다. 한편 영남의 퇴계학파(退溪學派)는 기호(畿湖)의 율곡학파(栗谷學派)에 대칭하여 쓰인 명칭이기도 하다. 이황(李滉)의 학문적 입장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을 문파(文派 : 학파의 유파)로 하는 서애학파(西厓學派), 퇴계학파의 본간(本幹)이요 중추(中樞)인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을 문파(文派)로 하는 학봉학파(鶴峯學派), 한강(寒岡) 정구(鄭逑)를 문파(文派)로 하는 한강학파(寒岡學派)의 세 갈래의 흐름으로 계승되어 갔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들은 조목(趙穆), 기대승(奇大升), 김성일(金誠一), 류성룡(柳成龍), 남치리(南致利), 이덕홍(李德弘), 황준량(黃俊良), 권호문(權好文), 김륵(金玏), 홍가신(洪可臣), 정사성(鄭士誠), 김사원(金士元), 유중엄(柳仲淹), 조호맹(曺好孟), 박광전(朴光前) 등의 퇴계문도(退溪門徒)들과 정경세(鄭經世), 허목(許穆), 이현일(李玄逸), 이재(李栽), 이상정(李象靖), 유치명(柳致明), 김흥락(金興洛), 이진상(李震相), 곽종석(郭鍾錫), 김황(金榥) 등의 사숙(私淑)들을 들 수 있다. 퇴계학파(退溪學派)는 퇴계(退溪)를 동방(東方)의 주부자(朱夫子 : 주희)라 칭하였다. 퇴계학파의 특징은 성리학(性理學)의 심성론(心性論)에서 정(情)에 속하는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각각 이(理)의 발현과 기(氣)의 발현으로 구분하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과 경사상(敬思想)으로 대변되며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은 주리설(主理說)로 발전했다.

    (註釋1)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이원론적(二元論的) 입장에서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각각 이(理)의 발현(發顯)과 기(氣)의 발현으로 구분하는 이황(李滉)의 주리론(主理論)적 학설을 말한다. 인간의 본성인 사단(四端)은 이(理)가 발(發)하고 기(氣)가 따르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발기수설(理發氣隨說)이라고도 한다.

    ※ 이(理)와 기(氣)
    ☞ 이(理)
    우주의 원리 또는 만물의 이치와 질서로 이해되며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천리(天理) 또는 천도(天道)로 이해되었다.
    ☞ 기(氣)
    구체적인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를 말한다.
    ※ 사단(四端)과 칠정(七情)
    ☞ 사단(四端)
    사람의 4가지 마음씨는 본성(本性)으로 이(理)에서 발현한다. 맹자(孟子)에서 유래한 사단(四端)은 사람의 마음을 구성하는 4가지 요소를 ‘인의예지(仁義禮智)’로 보았다. 인(仁)에서 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타인을 불쌍하게 여길 줄 하는 마음씨이며 의(義)에서 나오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마음씨이며 예(禮)에서 나오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은 겸손하고 남에게 양보할 줄 아는 마음씨이며 지(智)에서 나오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씨이다.
    ☞ 칠정(七情) : 기(氣)가 발동하여 나타난 정(情)으로 이해했다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두려움(懼), 사랑(愛), 미움(惡), 욕망(欲)으로 7가지 인간의 감정을 가리킨다.

    (註釋2) 경사상(敬思想)
    퇴계(退溪)의 경(敬)이란 근원적으로 절대자(絶對者)에 대한 외경(畏敬 :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을 담고 있다. 퇴계(退溪)에 있어서 천(天 : 上帝)이란 인간의 행위를 심판하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보상하는 의지적(意志的) 주재자(主宰者)였다. 퇴계(退溪)는 타락하기 쉬운 인간을 경고(警告)하기 위하여 천(天)에 대한 외경(畏敬)을 강조한 것이다. 지경(持敬 : 마음을 바르게 가짐)을 통하여 사람의 욕심을 극복한 사람이 군자(君子)이다.

     

    (註釋3) 사숙(私淑)
    존경하는 사람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는 없으나 사람의 도(道)나 학문을 본으로 삼고 배우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사(私)는 절(竊), 즉 '남몰래 마음속으로'라는 뜻이고, 숙(淑)은 선(善)을 말한다. 《맹자(孟子)》<이루편(離婁篇)>에 맹자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공자의 문도가 되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배워 선하게 하였다(孟子曰 予未得爲 孔子徒也 予私淑諸人).”라고 하셨다 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3) 남명학파(南冥學派)

    조선 중기에 이르러 영남우도(嶺南右道)를 중심으로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학식(學識)과 덕행(德行)을 존숭(尊崇)하고 추종하는 학파를 남명학파(南冥學派)라 하였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들은 오건(吳健)·김우옹(金宇顒)·정구(鄭逑)·최영경(崔永慶)·김효원(金孝元)·곽재우(郭再祐)·정인홍(鄭仁弘)·정탁(鄭琢)·하항(河沆)·하진(河), 곽율(郭) 등을 들 수 있다. 이 학파의 특징은 반궁체험(反窮體驗)·지경거의(持敬居義)·충신진덕(忠信進德)·독행수도(篤行修道)라 하겠다. 천길 절벽(壁立千仞 : 벽립천인) 같은 드높은 기상(氣像)을 가진 남명(南冥) 조식(曺植)은 ‘경의(敬義)’ 두 글자에 힘을 쏟아 공리공담(空理空談 : 아무 소용이 없는 헛된 말)을 배척하고 실천궁행(實踐躬行)함으로써 학문과 덕행을 쌓아 갔다. 그래서 제자들도 그의 학덕에 영향을 받아 기절(氣節)과 의리(義理)를 숭상하고 추종하여 특히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들이 많았다.

    (註釋1) 반궁체험(反窮體驗)
    자신을 돌이켜 보며 몸소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註釋2) 지경거의(持敬居義)
    선비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주역(周易)>의 경이직내(敬以直內), 즉 ‘경(敬)’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이방외(義以方外)인 ‘의(義)’로써 밖을 반듯하게 한다는 뜻이다.
    (註釋3) 충신진덕(忠信進德)
    충성(忠誠)과 신의(信義)가 덕(德)을 진전(進展)시킨다.
    (註釋4) 독행수도(篤行修道) 
    행동을 독실하게 하고 도를 닦는다.
    (註釋5) 실천궁행(實踐躬行)
    지식을 알면 바로 행하여야 된다는 뜻이다.
     
    (4) 한려학파(寒旅學派)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학식과 덕행을 존숭(尊崇)하여 이를 추종하던 학파를 통칭(通稱)한다. 이러한 통칭 관행은 기본적으로 양학파(兩學派)의 지역이 교차(交叉)하고 문인(門人)이 겹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강(寒岡) 정구(鄭逑)는 왕가(王家)의 예(禮)와 사가(私家)의 예(禮)는 같을 수 없다는 ‘왕사부동례설(王私不同禮說)’의 창시자이자 한려학파(寒旅學派)의 창시자이자 서울·경기 지역의 남인(南人)인 근기남인(近畿南人) 성리학파와 남인 실학자(實學者)들의 학문적 선조가 된다. 한강학(寒岡學)의 특징은 한강(寒岡) 정구(鄭逑)는 우주간의 수많은 일들 즉 우주간허다사(宇宙間許多事)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지식과 인격을 갖추고 만나는 사물마다 자유자재로 이치에 맞게 대응해 가는 명체적용(明體適用)인데 자신만 그런 역량(力量)을 갖추고자 한 것이 아니라 군주 역시 그러한 능력을 갖춘 성인군주(聖人君主)로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명체(明體)는 작용의 근본이 되는 본심(本心)을 밝힌다는 말이다. 적용(適用)은 그 본심의 작용이 의리(義理) 또는 도(道)에 부합하게 발휘되도록 하는 것이니 하는 일마다 중용(中庸)의 도(道)에 맞는 활동을 자유자재로 한다는 말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는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남명(南冥) 조식(曺植) 양문(兩門)에서 수학(受學)하여 두 분 모두의 학통(學統)을 계승하며 나름대로 이를 회통(會通)시킨 반면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은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남명(南冥) 조식(曺植)에게 직접 수학(受學)하지 않았으며 또한 사상적으로 이들 양인(兩人)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면이 있었다. 퇴계(退溪)와 율곡(栗谷)의 이기설(理氣說)을 극복하고 종합하여 독창적인 ‘이기경위설(理氣經緯說)’을 제기하였다. 이(理)와 기(氣)를 이원적(二元的)으로 보지 않고 합일적(合一的)인 것 혹은 한 물건의 양면적(兩面的)인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이기경위설(理氣經緯說)」에서는 이(理)를 경(經)으로, 기(氣)를 위(緯)로 비유해 이(理)·기(氣)가 둘이 아니고 체(體 : 불변의 표준)와 용(用 : 가변적인 작용)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성리학의 이기(理氣)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또한 그는 사단(四端)이 칠정(七情)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칠정(七情) 가운데에서 본성을 따라 발현(發顯)해 거짓되지 않은 것이 사단(四端)일 뿐이라 하여 사단(四端)의 순수하게 고유한 발현(發顯)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門人)들은 이후경(李厚慶), 서사원(徐思遠), 송원기(宋元器), 손처눌(孫處訥), 한준겸(韓浚謙), 문위(文緯), 장흥효(張興孝), 이윤우(李潤雨), 허목(許穆), 황종해(黃宗海) 등이 있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으로는 류진(柳袗), 정극후(鄭克後), 사서(沙西) 전식(全湜),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등암(藤庵) 배상룡(裵尙龍),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신류(申瀏) 등이 배출되었다.

    3.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의의(意義)

    영남 유학과 대별(大別 : 크게 나눔)되는 기호(畿湖) 유학(儒學)의 조종(祖宗 : 시조가 되는 조상)을 율곡(栗谷) 이이(李珥)로 보는 성리학(性理學)의 유파(流派)를 말하며 ‘율곡학파(栗谷學派)’라 부르기도 한다. 기호지방(畿湖地方)은 경기도를 중심으로 황해도와 충청도 일원으로서, 동쪽은 관동지방(關東地方 : 강원도) 남쪽은 호남지방, 북쪽은 관서지방(關西地方 : 평안남북도)과 접경(接境)을 이룬다. 우리나라의 성리학계(性理學界)는 이황(李滉)과 이이(李珥)를 중추(中樞)로 하는 양대(兩大) 학파(學派)로 형성되었다. 이 두 학파는 후일 당쟁(黨爭)의 영향으로 남인(南人)은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좇아서 받들고 서인(西人)의 주류(主流)인 노론(老論)은 이이(李珥)의 기발리승설(氣發理乘說)을 좇아 받들게 되어 전자는 영남학파(嶺南學派)가 주류를 이루어 주리설(主理說)을 주장하는 자가 많고 후자는 기호학파(畿湖學派)가 주류를 이루어 주기설(主氣說)을 주장하는 자가 많게 되었다. 이이(李珥)의 문인들은 김장생(金長生)·정엽(鄭曄)·한교(韓嶠)·이귀(李貴)·조헌(趙憲)·안방준(安邦俊)·송시열(宋時烈)·권상하(權尙夏) 등이다. 예학(禮學)의 종장(宗匠)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등이 배출되어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에 의해 그 문호(門戶)가 융성(隆盛)해졌으며 영남의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등이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적극 옹호하고 이이(李珥)의 학설을 비판하자 다시 송시열(宋時烈)이 이이(李珥)의 기발리승설(氣發理乘說)을 적극 지지하고 이황(李滉)의 설을 비판하게 되어 송시열(宋時烈)에 의해 퇴계학파(退溪學派)와 학설상의 차이를 드러내게 되었다.
     
    (註釋) 기발리승설(氣發理乘說)
    이(理)는 최고의 존재 원리이기는 하나 형체도 없고 스스로 운동·변화하지 못하며(理不能發), 형체도 있고 스스로 작용할 수 있는 기(氣)만 발(發)한다는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주창한 학설(學說)이다.

    집필 : 향토사학자 이동훈(李東勳)
    정리 : 최종동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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