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론과 책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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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년수<수필가, 일선김씨 문충공파 종친회장>

 

 


우리 사회는 심각한 전염병인 코로나19라는 질병을 겪고 있으면서도 염려했던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게 됐다. 참으로 놀랍게도 사전 투표율이 어느 때보다 높아서 우리 모든 국민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했으며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 주었다고 본다.


선거는 입후보자들이 서로 경쟁을 하기 마련이고 그 같은 과정에서 입후보자들의 정견이나 인간관계 또는 정치적 함수 등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 지지자와 진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누구나 선의의 경쟁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의 선거 현장에서는 때로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당리당략에 빠져서 무조건 상대방들을 비난하고 자신만을 내세우는가 하면 그 비난이 도를 넘어서 상대방들의 인격에 상처를 내는 경우까지 있다.


이제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일단 막을 내렸다. 그리고 서로 나뉘어서 선거 운동을 했던 이들이 이웃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 모든 군민들이 함께 생각하고 보듬어야 할 과제를 만나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선거 후유증이 지역사회에서 또다른 ‘상왕론’과 ‘책사론’으로 선거의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


절대권력자인 왕은 한 명만 존재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같은 시대에 두 명의 왕이 존재하면 왕조의 권력과 국론이 양분되기 쉬웠다. 그러나 정치 현실은 언제나 원칙대로만 운영될 수 없기 때문에 왕을 능가하는 강자가 나타나 왕위를 찬탈하거나, 후계왕의 정치 경험을 위해 선위할 경우 상왕이 존재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태조(太祖), 정종(定宗), 태종(太宗), 단종(端宗), 고종(高宗)이 상왕으로 있었는데, 이 기간은 대체로 정치적 혼란기에 해당한다.


상왕이 존재할 경우 신료들은 두 왕 사이에서 처신하기 힘들었다. 또한 상왕으로 밀려난 왕도 신명을 보존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상왕은 자의든 타의든 현왕의 견제를 받아야 했고, 약간의 정치적 언동은 바로 복위 기도로 간주되었다.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과 안평의 세력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한명회는 안평대군의 심복 이현로의 청에 따라 안평대군을 만났고, 그 뒤 권람의 권유로 수양대군을 만났다. 한명회는 두 사람을 모두 만나본 뒤 수양대군에게 일생을 걸기로 결심을 한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는 데는 한명회라는 책사의 결정적인 뒷받침이 있었다. 세조는 후대에 책략의 달인, 권모술수의 대가, 노회한 정치가 등의 평을 듣는 한명회를 나의 '장자방' 이라고 불렀다. 
상왕. 현재의 왕보다 상위에 있는 왕이라는 의미다. 왕조시대에서 왕은 한 번 즉위하게 되면 죽을 때까지 왕으로 군림해 왔다. 하늘의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듯이 왕조시대에는 단 한 명의 왕만이 나라 전체를 다스렸으나, 간혹 막후에서 섭정정치를 펼치는 상왕들이 존재했다.
왕조시대에서나 언급됐던 상왕이란 존재가 최근 정치권에서 때아닌 바람이 불고 있다. 무소속 후보를 찍으면 민주당 후보가 되고 통합당 후보를 찍으면 누군가 그 위에 군림하는 상왕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선거 전부터 어느 군에 차기 군수 후보와 도의원 후보 명단이 사실 인양 공공연히 나돌았다.


통합당 후보를 찍으면 누군가 상왕이 된다는 주변의 주장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상왕이라기보다 유방의 뛰어난 책사였던 ‘장자방’에 가깝다고 본다.”는 여론도 있다.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열심히 도와준 사람을 장자방에 비유하고 일정한 선을 넘어 공을 앞세워 군림한다면 이는 상왕 정치가 될 것이다.
노련한 정치력 탓에 상왕의 자리에서 흥선대원군과 같이 섭정정치를 할 것이란 ‘상왕론’ 또는 유방의 장자방과 같이 유능한 책사라는 ‘책사론’ 등 엇갈리는 평가가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 사외(社外)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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