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라> 불안, 봄을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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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필나라> 불안, 봄을 삼키다

정아경(수필가)

봄은 어디로 느끼는 것일까. 따사로운 했살은 두터운 외투를 벗게 하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움츠렸던 어깨를 펴게 한다. 산에 들에는 화사한 봄이 채색되고 거리마다 가벼운 발걸음이 넘친다. 그러나 그 행렬에 동참할 수 없다면, 진정한 봄은 온 것인가. 아직도 겨울 중인가. 꽁꽁 언 마음은 해동할 기미도 없는데 깊어지는 삼월은 봄의 절정으로 향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 마음은 얼었다기 보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이 더 적절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나의 안테나는 아이들의 귀가를 챙기고 체크하는데 몰두해있다.


소문은 아이들에게서 먼저 비롯되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38조의2’에 의거한 고지정보서라는 것을 우편함에서 꺼내어 소문의 진실을 확인하니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고지대상자 신상정보란에는 성별, 나이, 키, 몸무게, 실제거주주소와 칼라판 사진이 선명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위 대상자는 2012년 4월 **에서 19세 미만 여자 청소년을 강간하려 하였으나 미수에 그쳐 2013년 *월 *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 위반죄로 징역 *년*일 집행유예 *년,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 **시간, 신상정보공개명령 및 고지명령 *년을 선고받았음’이라는 요지사항이 적혀있었다.


그는 이십대 중반의 180cm에 70kg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어딜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호남형이었기에 놀라움은 더 컸다. 뉴스를 통해 듣던 대상자들이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집집마다 어린 자식들 챙기느라 바빠진 부모들의 발걸음은 블랙홀에 빠진 마음만큼 복잡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얼굴을 마주치면 수런거렸다.


두 딸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조마조마했다. 그렇다고 품안에 싸서 키우는 교육에는 반대하기에 비교적 씩씩하게 키운다고 자부하곤 했다. 버스와 기차를 타고 부산 이모네를 다녀오게도 하고, 시골 할머니댁도 스스로 가게 했다. 세계를 무대로 살아갈 세대에게 홀로서기는 필수라며 말이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든 딸들의 몸은 성숙해가고, 야간자습이나 학원수업으로 늦어지기 일쑤다. 비교적 사람의 통행량이 많은 곳에 살기에 안심하며 기다리곤 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아니 상황은 항시 그대로였는지 모른다. 달라진 것은 고지서를 받는 순간 얼어버린 마음일 것이다. ‘세상이 무서워서 말이야’, 라며 나는 작은 아이를 마중 나가고, 또 한참을 있다가 큰아이를 마중 나간다.


누군가 기다리다 그 기쁨을 당기고 싶어 달려가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마중이다. 한 정점에서 달려감과 달려옴이 마주치는 순간의 환희야말로 생활의 소소한 충만 아니던가. 고향 가는 길은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더러 도로가 넓어지기도 했으나 산모퉁이를 돌고 마을 어귀를 굽어가는 곡선의 크기까지 측정되는 고향 가는 길은 언제나 안온함으로 불안을 잠재워준다. 고향에 가면 내 어릴 적 아지매는 아직도 늙어가고, 아재는 아직도 아재로 늙어간다. 그들 중 누군가가 아프다고 하면 가슴이 저미고, 그들 중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면 한동안 울컥해진다. 이사 가지 않는 고향은 그렇게 평화·안정·귀경이라는 의미로 노마드의 울적함을 달래준다.


졸린 가로등 빛을  따라 늦은 딸을 마중 나가는 발걸음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현실 속에서 마주치는 누구라도 알은체하고 동행할 수 있는 훈훈한 고향마중이 그립다.
현대인은 노마드의 삶을 지향한다. 정해진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바람처럼 이동하며 정주민적인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되어 유목민의 사유와 삶을 동경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21세기가 원하는 가치관이라고 믿고 갈망한다. 그것은 돌아갈 베이스캠프인 고향이 있기에 꿈꾸는 이상일 수도 있다. 별을 보며 이주했던 유목민들도 마지막에 돌아갈 안식처는 있다니까. 어쩌면 진정한 노마드는 정열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불안으로 문을 잠그고 내 아이를 단속하는 사이에 이웃과의 벽은 더 높아지고 주변을 감싸는 냉기는 봄조차 얼게 한다.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고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면 설렜던 적이 있었다. 내 진심이면 타인도 그 진심으로 소통하리라는 턱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하였던 적이 있었다. 갈수록 흉흉해지는 현실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가치관은 꿈·도전이라는 단어보다는 현실·안정이라는 단어를 선호하게 한다. 어쩌면 이렇게 공개된 그는 더 이상 위험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 선량한 얼굴 뒤에 가리워진 검은 마수의 손길이 더 두렵다. 지천에 봄을 알리는 소식들에 빠져들지 못하고는 간디가 주장한 마을공동체만이 이상이라며 현관문을 나선다. 엄마의 불안은 알지 못한 체 매일 마중 나오는 엄마의 기다림이 마냥 좋은 딸은, 꽃잎을 들여다보며 봄을 마중한다. 새로운 계절에 대한 설레임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품은 꽃망을 같은 딸은, 불안보다는 희망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딸의 환한 웃음이 얼은 마음을 녹이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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