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나라 - 상식을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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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필나라 - 상식을 질문한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연상시키는 커피점이 생겼다. 초록 바탕의 요술 램프는 아라비아를 연상시키고, 이국적인 것에 끌리는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그곳의 커피는 간판이 주는 이미지만큼 풍미가 좋았다. 그곳 커피는 나의 미각을 훔쳐버렸다. 한 번 빠지면 그곳만을 들락거리는 나는, 며칠 지나면 입 안에서 그윽하게 퍼지는 커피가 땡긴다.


그날도 커피를 마시려고 그곳에 갔다. 주차를 하고 차 문을 여니 팔공산의 찬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입구로 동동거리며 가다가 나의 눈에 비친 풍경에 나는 얼음이 되었다. 멈춰 선 채 고민을 했다. 직진해서 카페로 들어가느냐 뒷걸음쳐서 차로 돌아가느냐 기로에 섰지만, 몸은 이미 후진 중이었다. 나의 존재를 최소화시켜 살금살금 뒷걸음으로 차로 돌아왔다.


사랑은 온몸으로 빛을 내는 마법인가. 그녀는 온몸에 교태를 감고 그의 턱 밑까지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놓고 있었다. 그 남자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그녀의 표정만은 선명하게 그려진다. ‘지금 내 눈에는 오직 당신만이 보여요. 아님 난 오직 당신만 보고 싶어요’로 해석하며 나는 차를 돌렸다. 그리고 흔한 프랜차이즈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차 안에서 감흥 없는 시 몇 편을 읽다가 아이들 가르칠 시간이 되어 들어갔다.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무수히 보았던 그녀의 표정과는 사뭇 다른 그녀를 생각하면서….


그날 밤, 뜨거운 물로 오래 샤워를 했다. 그것은 지친 몸과 마음을 푸는 나만의 습관이다. 그날은 몸보다 엉킨 마음의 실타래를 풀기 위함이 더 컸다. 내가 본 장면이, 그녀의 표정이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기에 샤워기의 물줄기를 변명 삼아 오래 생각했다. 내 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이 무엇인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주말 내 집을 다녀간 K선생부부와의 대화 전이었다면 나는 내 방식대로 그녀를 단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녁밥을 먹으며 남편에게 답이 정해진 화법으로 그녀를 설명했을 것이고, 다음날 어떤 모임에서 나는 더 과장해서 또 다른 화법으로 그녀를 설명했을 것이다. 그녀를 모르는 나의 친구들이 나의 화법에 따라 그녀를 규정하도록 말이다.


부인이 죽고 짧은 기간에 재혼한 P선생의 근황이 지인들 사이에 화제다. 평소에 그들 부부는 너무도 다정했기에 그녀의 부음과 더불어 그의 재혼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애도의 기간도 없이 재혼한 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며 비난했다. 또 다른 지인에게 그의 소식을 알렸고, 나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도 나의 감정에 공감해 주었다. 우리는, 적어도 나는, P를 아는 이를 만나면 그의 소식을 안주 삼아 씹어댔다. 냉철한 이성과 비판이란 수식어를 가진 K선생 부부와의 대화가 있기 전까지 상식 운운하며 P선생을 비상식적인 사람으로 단정해 버렸다.


커다란 강아지를 안고 K선생부부가 내 집으로 온 것은 친정집 김장김치를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커피를 내놓으며 나는 또 안주처럼 P선생 이야기를 했고, 상식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게 뭔 일? 궁감이나 맞장구는 아랑곳없고 그럴 수 있지, 뭐가 상식에 어긋나느냐는 K선생의 대답이었다. 평소에 선생의 사유가 다소 독특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선생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번 P선생의 일은 아무리 곱씹어 봐도 내가 생각하는 ‘비도덕적인 경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에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이번 기회에 평소에 뜬금없이 삐딱한 생각을 내뱉는 듯한 K선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의 지혜를 끌어와 설명했다. 부부 사이의 도리, 애도의 기간 등의 단어를 들먹이며 최선을 다해 그의 생각이 틀렸고 내가 옳다는 동의를 구하기 위해 설명했다. 아니, 차라리 설득하려 한 것이 맞을 것이다.


“아경 쌤 진짜 꼴통이네. 뭐가 이해가 안 되나?”


그의 눈빛은 목소리보다 더 날카롭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견고한 나의 보편이 휘청거리는 순간이었다. 동의라도 구하려고 그의 아내 쪽을 바라본다. 그녀 역시 “뭐가 이해가 안 되죠?”


라며 태평스러울 정도로 무심하게 강아지를 쓰다듬는다. 냉철한 만큼 목소리도 카랑한 K선생은 따져 보자며 초등학생에게 수학 공식 일러주듯 논리적으로 접근했다. 그의 아내는 투병 중이었고, 그는 그의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도심을 피해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도 했다. 함께 모임을 다니며 여러 활동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그들 부부의 상황을 아는 이가 있었을 테고, 어느 날, 그의 아내는 죽었고 그의 슬픔을 아는 지인은 슬픔에 갇혀 있는 그를 위로했을 것이고, 아니면 밥이라도 챙겨 먹였을 것이다. 그러다 둘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면 같이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P선생의 근황을 두고 우리는 각자의 기준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 누가 옳은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날 이후 나는 내 방식대로 단정 짓는 삶의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 중이다.


상식이란 없는 것이다. 나의 현재와 각자의 현재만이 상식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보편이니, 상식이니 라는 정해진 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자유를, 자유롭게 누려 본 적이 없듯 누군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더욱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상식이란 기준에서 내 주변의 누군가를 매도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K부부의 삶도 우리에게 꽤나 화제가 되는데 그날의 만남으로 나는 내 속의 작은 관념에 균열이 생겼다.


마음의 안경을 벗고 다시 하나의 풍경을 본다. 나는 그녀의 현재만 보기로 했다. 온몸에 사랑을 휘감고 그의 턱 밑에서 그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순간만을….

 

 

수필가   정 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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