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덕(德)으로 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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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덕(德)으로 하는 정치

 김 년 수
일선김씨 문충공파 종친회장

위정자를 뽑는 21대 총선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주요 출마예상자들은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고 4년의 국정을 감시하게 되는 역할을 자기가 적임자라고 서로 야단들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그동안 국회의원을 뽑아 여의도로 보냈지만 누구랄 것 없이 ‘그 나물에 그 밥’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도는 정치에 민감하고 땅의 도는 나무에 민감하다’ 했다. 나무는 땅이 있어 빨리 자랄 수 있듯이 사회를 바르게 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정치보다 더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정치라는 말은 ‘정으로 다스린다’는 뜻이니, 정이라 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바르지 못함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곧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政은 正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자신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남을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남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행실을 먼저 바르게 함이 정치의 기본이 된다.


옛날 요순(堯舜)이 仁으로써 천하를 다스리시니 백성들이 仁을 따르고, 걸주(桀紂)가 포악으로 천하를 다스리니 백성들이 포악을 따랐다 한다. 마치 바람 아래 풀이 눕듯이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따라서 그대로 닮는다는 것이다. 


정사는 국가나 사회에 한해서만 논할 문제는 아니다. 가정에서도 정치의 논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부모의 자식교육 역시 말이 아니고 행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말보다는 행동을 보고 따르고 닮아간다는 것이다. 자신은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자식에게 말로만 해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덕으로 정치하라는 말인데,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수고를 하지 않고도 세상을 다스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북극성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뭇 별들이 에워싸고 돌고 있는 것과 같이, 덕이 있는 사람의 행정을 북극성으로 비유하였다.


‘무위이화(無爲而化)’라는 말도 있다. 나는 아무 하는 일이 없는데 백성들은 스스로 교화가 된다는 의미이다. 다만 ‘무위’라는 말 역시 덕이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이 정사를 행한다면 움직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교화되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믿어줄 것이며, 아무 하는 일이 없어도 사람들은 스스로 이루어 나갈 것이다.


『주역』에서, 군자의 도는 난세일수록 더욱 형통한 법이라고 가르치기는 하지만, ‘혹시 이 사회는 이 같은 글을 보려고나 할까? 아니면 시대와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비웃지는 않을까? 과연 옛날의 도는 지금 시대에 쓰일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진 사람들이 거처하는 사회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과연 이 사회는 仁을 필요로 하기나 할까? 德을 숭상하기나 할까?  옛날은 적어도 도덕과 인의와 하다못해 禮라도 숭상했지만, 지금 시대는 과연 무엇을 숭상할까? 


* 사외(社外)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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