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나라>우리 집에 사는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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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나라>우리 집에 사는 도깨비

시인·소설가      한현정


 

“당신은 요리도 할 줄 몰라?”
아빠가 한마디 했다.
“모른다. 어쩔래?”
엄마가 도끼눈을 치켜떴다.
“이런 걸 맨날 먹으라고.”
아빠가 피자 조각을 팽개쳤다. 엄마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들고 있던 피자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집 꼴을 좀 봐. 이게 집이냐? 도깨비 소굴이지!”
아빠의 트집이 길게 이어졌다. 술 먹은 날은 꼭 이런다.
“당신이나 똑바로 해! 돈도 못 벌어 오는 주제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피난을 가야 한다.
아빠가 피자 상자를 벽에 던졌다. 빵 조각과 토핑이 사방으로 튄다.
얼른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갔다.
밖에서 계속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동생은 이제 겨우 네 살이다. 귀찮기는 하지만 심호흡을 하고 다시 전쟁터로 뛰어든다.
싸우고 있는 아빠와 엄마는 딴 사람 같다. 세상에서 가장 험한 얼굴로 서로에게 욕을 퍼부었다. 말이 화살 끝처럼 뾰족하다.
동생을 데리고 와서 침대에 눕혔다. 겁에 질린 동생이 칭얼거린다. 다독여주니 다시 잠이 든다. 가슴이 아리다. 독한 화살이 콱 박힌 것 같다.
“토순아, 난 집이 싫어, 지긋지긋해.”
인형은 말이 없다.
“행복해지고 싶은데…….”
토순이는 실밥이 터진 얼굴로 웃고만 있다.
대답 없는 인형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토순이의 뺨을 적셨다.
결국,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외갓집으로 갔다. 내게도 가자고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외할머니 앞에서 아빠 흉을 볼 게 뻔하다.
술에 취한 아빠는 집이 들썩거리도록 코를 곤다. 내 눈꺼풀도 점점 무겁게 내려온다.
“자람아, 자람아.”
누군가 속삭인다.
“일어나 보라니까.”
나는 뒤척이기만 한다.
“보여 줄 게 있어.”
“으응?”
눈이 반쯤 떠졌다.
“토순이?”
잠이 확 달아난다.
“그래, 나야.”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토순이가 사람처럼 왔다 갔다 한다. 손도 발도 자유자재다.
“네, 네가 어떻게 말을?”
너무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
“나, 사실은 말 잘해.”
토순이가 베개 위에 걸터앉으며 씨익 웃는다.
“어어어 어떻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잠깐만 따라와 봐.”
토순이가 침대에서 뛰어내려 척척 걸어간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엉덩이의 실밥이 터져 솜이 삐죽 튀어나온 게 토순이가 분명하다.
“우켈켈켈켈켈”
불 꺼진 부엌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분명 우리 집인데도 딴 세상 같다. 누군가 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고 여럿이다.
“쩝쩝, 이렇게 맛있는 피자를 버리다니.”
도깨비들이 둘러앉아 있다. 남겨진 피자를 먹는 모양이다. 모두 뿔이 나고 눈이 커다랗다. 언젠가 그림책에서 본 도깨비를 닮았다.
“오늘도 잔칫날이로구먼.”
눈이 한 개인 도깨비가 치즈를 쭈욱 늘이며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 아빠 말이야. 이 집이 도깨비 소굴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눈이 두 개인 도깨비가 갸웃했다.
“야야, 그걸 왜 모르겠냐? 아무리 바보라도 집이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토순이가 도깨비들 사이로 끼어 앉으며 말했다.
“너, 우리 아빠를 바보라고 했냐?”
내 말에 도깨비들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네가……. 우리가 보여?”
“그것 봐! 내가 좀 이상하다고 그랬지?”
도깨비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건 꿈일 거야. 진짜일 리가 없어.’
볼을 꼬집어보려 해도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너희들이 정말 우리 집에 산단 말이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럼, 짐 안 곳곳에 숨어 살지.”
눈이 세 개 달린 도깨비가 당당하게 말했다.
“언제부터?”
“그건, 터줏대감인 내가 말해 줄게.”
그러고 보니 토순이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 집에 왔다.
“처음부터 도깨비 집은 아니었지. 깨끗할 때도 있었어. 너도 기억나지? 그땐 너희 부모님 사이도 좋았는데 말이야.”


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결혼사진 속에서 부모님이 웃고 있었다. 날씬하고 멋진 모습이다.
“얘들은 밀린 설거지거리, 곰팡이 핀 빨래, 냄새나는 화장실, 침대 밑에 사는 먼지에서 기어 나온 녀석들이야. 너희 가족의 게으름 때문에 생겼지.”
도깨비들은 제 이름이 불릴 때마다 손을 흔들었다. 전혀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집에 도깨비가 산다는데 누가 좋을까?
“얘들만 있는 게 아니야. 베란다에도 있지. 쌓아 놓은 택배상자, 치우지 않는 쓰레기. 그뿐인 줄 알아? 너희들의 짜증, 미움도 도깨비가 되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단다.”
토순이가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나도 한숨이 났다.
우리 가족은 동생만 빼고 다 뚱뚱하다. 슈퍼마켓에 가면 사람들이 대놓고 쳐다볼 정도다. 우리는 매일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그렇지만 하루도 못 간다. 기름지고 고소한 치킨과 피자, 짜장면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아빠는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렇지만 지각을 자주 해 사장님이 싫어한다. 밤새 게임을 하느라 늦잠을 자기 때문이다. 엄마는 동생을 낳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요즘은 거의 집안일도 하지 않고 누워서 택배나 배달 음식만 시킨다.
“그런데 말이야. 너도……. 도깨비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토순이는 조금 울 듯한 표정이 되었다.
“난, 이 집의 수호신이야. 도깨비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럼, 넌 제 역할을 못한 거야. 우리 가족은 지금최악이거든.’
“뭐? 나 때문이라고?”
토순이가 화를 냈다. 마음속의 말까지 듣는 토순이가 조금 무서워졌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 주던 때가 훨씬 좋았다.
“한 가지만 물을게. 내가 원래 무슨 색인지 기억나니?”
회색이라고 대답했다.
“틀렸어. 밝은 노랑이야.”
토순이를 곁에 두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아기 때부터 말이다. 그런데 노란색이었던 기억이 전혀 없다.
“우린 친구니까 소원 한 가지만 들어주겠니?”
지금까지 소원을 말한 건 나였다. 토순이는 항상 듣고만 있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목욕시켜 줘.”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나는 내 몸도 씻기 싫은 아이다. 그렇지만 이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말없이 욕조에 물을 받았다. 세재를 풀고 인형을 담갔다. 생각보다 너무 더러웠다. 어떻게 볼을 비볐을까 싶을 정도였다. 몸이 뚱뚱하니 빨래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땀이 비 오듯 했다. 조금씩 시커먼 물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빨래를 하고 보니 토순이는 정말 밝은 노란색이었다.
인형을 건조대에 널었다. 마음이 꽤 상쾌했다. 진즉에 해 줄걸. 미안했다. 그런데 토순이가 아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말도 하지 않는다. 다시 원래로 돌아간 것 같았다.
집 안을 둘러보니 난장판이다. 도깨비 집이 맞다. 창고를 뒤져 겨우 청소기를 찾아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먼지가 뿌옇다. 먼지를 닦아내자 도깨비들이 놀라서 풀풀 뛰어다녔다. 윙 소리를 내며 청소기를 밀었다.
“새벽부터 뭐 하냐?”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아빠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꼭 도깨비 뿔 같았다.
“우리 집에 도깨비가 살아요. 그래서 청소기로 쓸어버리려고요.”
나는 심각하게 말했다. 아빠는 조금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도깨비가 살고도 남지. 네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새벽부터 청소를…….”
아빠는 중얼거리며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누고 물을 내렸다. 그리고는 한심한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청소를 시작했다. 아홉 살 평생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샤워 물소리와 함께 지린내 도깨비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외갓집에서 돌아왔다.
“무슨 일이야? 다들 왜 이래?”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집에 도깨비가 우글우글해요!”
엄마는 내 말보다 화장실 바닥을 청소하는 뚱보 도깨비를 보고 더 놀라는 것 같았다.
“너희 아빠가 웬일이니?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나 보다.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엄마가 고무장갑을 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설거지를 했다. 산처럼 쌓여 있던 도깨비들이 순식간에 배수구로 사라졌다. 언제 싸웠냐는 듯 청소하는 엄마 아빠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어느새 우리 가족은 집에 쌓여 있던 도깨비를 모조리 해치웠다. 도깨비들이 사라지자 이상하게도 집이 텅텅 빈 것 같았다. 아침 공기가 몹시 신선했다. 엄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했다. 아빠는 오랜만에 지각하지 않았다.
햇볕이 따스했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었다. 건조대에 널어 둔 토순이가 뽀송뽀송 마르기 좋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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