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잇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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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이를 먹어도 모르는 게 많다. 난을 키우다보면 물의 양을 조절하지 못해서, 혹은 햇볕의 양을 조절하지 못해서 병들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듯이. 동양난은 특히 예민해서 조금만 지나치게 관심을 주거나 한동안 무심하면 머리를 싸매고 드러눕기 일쑤거든. 애지중지해도 살려내 꽃을 보기가 참 어렵더구나.


너희 엄마 마음도 모르겠기는 매한가지다. 65년을 한집에서 살았어도 수시로 오리무중이 되곤 하거든. 딴에는 잘한다고 해도 곧 타박이 화살처럼 날아오니. 남자와 여자가 근본부터 다르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도대체 비위를 맞추기가 어렵구나. 들어가 볼 수 없는 그 속이 참 궁금할 때가 더러 있지.


별것 아닌 일로 너희 엄마가 토라졌는가 봐. 나는 토라진 줄도 몰랐다. 주말에 제사가 있어 서울 너희 오빠 집에 가는 일로 아침에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기는 했지마는, 엄마는 너희들을 조금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하는 성미거든. 애들이 보고 싶어 하루 일찍 가자고 한 것이 화근인 모양이라. 며느리도 일하느라 바쁜데 토요일은 좀 쉬게 두고 제삿날인 일요일 당일에 가자고 우겨서 한마디 했더니, 너 오빠가 토요일에 올라오시라고 미리 전화를 했건마는 저리 완강하게 군다. 일 년에 몇 번이나 간다고 저리 조심하나 싶어 은근히 부아가 나는 거라.


어머니는 늘 엄격했다. 작은 잘못도 꼭 짚고 넘어가고 반성을 하는 훈육하는 게 당신의 교육 방법이었다. 사소한 장난이나 싸움에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아이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넌지시 한마디 거들면 일이 더 커지곤 했다. 아버지가 엄격하게 중심을 잡아 주어야 아이들이 본을 받고 바르게 자란다며 화살이 애먼 당신께 날아가는 것이다. 그때만큼은 꾸짖거나 매를 들지 않아도 사랑으로 충분히 교육할 수 있다며 아버지도 지지 않으셨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콩나물을 기르는 일과 한가지다. 물을 주면 밑으로 다 새어 버리지만, 어느새 콩나물은 뿌리를 내리고 머리를 위로 쑥쑥 내밀지 않는가. 또, 콩을 시루에 키우면 콩나물이 되지만, 밭에서 키우면 콩나무가 되어 하나의 콩에서 많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작은 일부터 칭찬을 하면 더 큰일로 칭찬받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교육관이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하기 전까지도 우리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먼저 찾곤 했다.


저녁 시간이 되도록 너 엄마가 안 와. 아침에 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 나간 후에야 토라졌구나 싶었지. 아흔을 목전에 두고도 아직 속을 다스리지 못하는 저 좁은 소견이라니 싶더라만, 종일 상했던 기분을 애써 다독이다가 너한테 전화를 걸어 본 기다. 너 엄마가 알면 또 화를 내겠지. 별것 아닌 일로 아이들을 신경 쓰게 했다고 타박하면서.


점심은 대충 먹었는데 저녁 시간이 되고 보니 슬며시 걱정이 되더구나. 니가 전화로 성모당에 있다고 알려 줘서야 안심을 했다. 하기야 너 엄마가 갈 곳은 서너 군데밖에 더 있나. 성당, 성모당, 친구 집 두어 군데가 다지 뭐. 속상한 일이 있어도 너희들 집에는 절대 안 간다. 다른 일도 많은데 괜한 신경 쓴다고 그러겠지. 너희가 사춘기 아이도 아닌데 좀 유별스럽다 싶지마는 말은 속에 담아두고 입에는 튼튼한 자물쇠를 달았다.


알싸한 속으로 점심을 걸렀을지도 모를 너 엄마를 위해서 저녁을 했지. 보니까 아침 설거지가 아직 그대로 담겨 있는 거라. 밥을 하려던 조금 전의 생각과는 달리 싱크대를 보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더라만. 별것 아닌 일을 가지고 싶어서, 뾰로통하던 얼굴과 그릇들을 떨그럭 딸그락 잔소리를 해대더라만 그러거나 말거나 요란스런 소리를 내 가며 그릇을 씻어 엎었지. 말끔해진 싱크대를 보니 기분이 좀 맑아지더라. 너 엄마 좋아하는 된장국을 끓였는데 맛이 괜찮더라.


저녁 시간이 넘어서야 너 엄마가 종일 햇볕에 뽀송뽀송해진 빨래를 앞세우고 들어오데. 성모님 덕인지 니 덕인지 얼굴이 밝더라. 칼로 물 베기도 되지 않는 부부 싸움을 아흔이 다 된 나이에도 한다는 것이 참 멋쩍은 노릇이다. 나잇값을 하라는 말이 있지. 아흔을 목전에 둔 내 나잇값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니 헛웃음만 나. 밥상을 앞에 놓고 너 엄마가 긋는 성호가 저녁상을 정갈하게 만드는 것 같구나.


늘 식구가 많아 고생 많았지 너 엄마가. 모두 떠나고 이제 달랑 둘만 남은 낡은 둥지. 그것을 지켜내는 일이 뭐에 어렵다고 이리 부산을 떨었는지. 상을 물리고 산책 가자니까 성을 낸 것이 쑥스러운지 슬쩍 빼더라만 등을 떠밀어서 나갔다 왔다. 유심히 보니 흰머리에 부쩍 숱이 적어졌더라.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떻겠노 싶더라. 너 엄마가 곁에 있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삼강오륜에 부부유별이라는 말이 있지. 서로 간섭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말 아니겠나. 너 엄마 손이 따뜻하더라.


“어제는 그렇게 화해했다. 너 엄마는 성당에 갔고.”


아버지의 이야기가 모처럼 길다. 전날 받은 당신의 전화가 마음에 걸려 주말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찾은 부모님 댁이다. 당신은 혼자 신문을 보고 계시다가 변명처럼 전후사정을 설명한다. 갑자기 좁은 거실이 휑하니 넓어 보여 코끝이 시큰하다.

작가 프로필
2015년 제27회 신라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 2012년 제1회 삼성앤유 수필대전 우수상 / 2014년 제1회 등대문학상 가작 / 대구일보 에세이마당 필진 / 구수필문학회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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