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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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필>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김 년 수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가 올해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5월 12일) 봉축표어로 ‘마음愛 자비를! 세상愛 평화를!’을 선정했다. 올해 봉축표어는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갈등을 부처님의 자비정신으로 극복하면서 한반도에 온전한 평화가 자리 잡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 한다.


봉축위는 “부처님께서는 태어나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씩 걸으시며 한 손은 하늘을, 다른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외쳤다. 모든 존재가 존귀함을 선언하고, 모든 삶은 자신 스스로 주인공임을 선언한 것”이라며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삶의 주인인 자신을 알아 자비정신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고, 모두 함께하는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뜻을 상징한다.


불기(佛紀)란? 불교에서 석가모니의 입멸 연대를 기준으로 쓰는 기원(紀元)이다. 입멸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었으나 1956년 11월에 태국 · 스리랑카 · 미얀마 등의 불교국가들이 그들이 채택한 연대에 따라 석가모니 입멸 2천5백 주년을 맞이하여 인도 뉴델리에서 세계불교자 회의를 개최한 이후, 이 연대가 공식으로 채택되었다. 따라서 입멸 연대는 기원전 544년이 되고, 현재의 불기는 현재의 서기 연도에 544년을 더하면 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아기 붓다(Buddha·석가모니)가 태어난 즉시 일곱걸음(七步) 후에 외쳤다는 육성이다. 뒷날 시로 문자화된다. 왜 하필 일곱 걸음일까? 2600년 전 인도에서 ‘일곱’은 어떤 의미일까?


탁발도 칠가식(七家食)이다. 일곱 집을 순서대로 밥을 빌었다. 그래서 인심이 고약한 집도 건너뛸 수가 없다. 아무튼 일곱을 고수했다. 당시에는 7진법을 한 단위로 삼았다는 현대식 설명이 뒤따랐다. 당나라 때 관계지한(灌溪志閑, ?~896)은 일곱 걸음 후 선 채로 임종했다고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直指)는 기록하고 있다. 붓다는 일곱 걸음 후에 2행 16글자를 남겼지만 지한선사는 생을 마감하는 일곱 걸음 후에도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일곱 걸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 위나라 시대 조조(曹操, 155~220)의 후계자는 조비(曹丕, 187~226)와 조식(曹植, 192~232)이다. 두 사람의 권력갈등 속에서 형 조비는 동생 조식의 생사(生死)를 담보로 시를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단 일곱 걸음 안에 끝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煮豆燃頭)
가마솥 안에 있는 콩은 울고 있네(豆在釜中泣).
본시 한 몸, 한 뿌리에서 나왔는데(本是同根生)
어찌 이리 심하게 들볶는가(相煎何太急).
이 한시는 조조(曹操)의 둘째 아들 조식(曹植)이 첫째 아들인 조비(曹丕)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절체절명의 순간에 지은, 다시 말해서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시(詩)를 짓지 않으면 참수를 당해야 하는 순간에 지었다는 것으로 유명한 "일곱 걸음 걷는 동안에 지은 시"인 칠보시(七步詩)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인 형 조비(曹丕)와 아우 조식(曹植)을 콩깍지와 콩에 비유하여 지은 작품으로 이 시를 통해 조비(曹丕)가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형이 동생을 너무나 들볶으므로 마치 가마솥에 콩을 넣고 콩깍지로 삶는데, 어느 정도 견딜 만큼 들볶아야 하는데 너무 급하고 심하게 들볶는다고 한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붓다의 탄생게(誕生偈)가 ‘칠보시’의 원조가 아닐까?.

* 사외(社外)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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