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리(外里) ⑴ 연혁(沿革) 본래 고령군 일량면 바깥에 위치했다 해서 바깥마을, 바깥마, 바깥일량, 외일량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촌을 합해 외동(外洞)이라 해서 고령면에 편입되고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9409호에 의거 고령면이 읍이되고 1988년 5월 1일 동일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 바깥장터, 장거리, 장터, 장기점(場基店), 장기(場基) : 현 장기리의 주동은 모듬내 건너 솥질 마을이 주마을을 이루고 있지만 1920년 이전에는 현재 상수도 바로 ...
이남철 고령군수 취임사 전문 존경하는 군민 여러분! 지금 이 순간 함께 해 주신 내외귀빈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600여 공직자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이제 막 닻을 올린 민선 8기, 위대한 고령의 새로운 출발! 그 첫날에 군민여러분과 함께 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새롭게 시작될 희망 고령을 염원하며 보내주신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46대 고령군수로서 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선거에서 경쟁했던 분들께도 위로의...
농헌재(대가야읍 중화2길 7-13) 1. 씨족연원(氏族淵源) (1) 시조(始祖)시조 문충공(文忠公) 이개(李開)는 신라말에 강양(江陽 : 현재 합천)으로 옮겨 합천이씨의 근원을 이루었다. 관조(貫祖)는 높은 학덕을 쌓아 벼슬길에 나아가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올랐으며, 국가에 큰 공을 세워 강양군(江陽君)에 봉작(封爵)되었다. 고려 건국 시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불복하여 가수현장(嘉樹縣長)에 이어 강양호장(江陽戶長)으로 강직(降職)되었으나 덕치선정(德治善政)을 하였다. 고려 말 사헌부의 대간(臺諫)들이 관조...
▣ 신리(新里) ⑴ 연혁(沿革)본래 고령군 내곡면(內谷面) 지역이다. 신라 경덕왕 때 신복현이 있었으므로 신리 또는 새마을이라는 뜻으로 ‘새마’라 했다.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음동을 병합해 고령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신동(新洞) : 신리라고도 한다. 옛날 대가야국이 망하고 신라 경덕왕 때 신복현(新復縣)이었는데, 그 신복현의 ‘신’자를 따서 신동 또는 신리라 부르게 됐다.* 옥담(玉潭) : 옥담은 신라 진흥왕 때 명장 이사부(異斯夫)가 ...
반원재(덕곡면 반성1리 소재) 1. 씨족연원(氏族淵源) (1) 시조(始祖) 광산 김씨 정유대동보(光山金氏丁酉大同譜)에 의하면 시조(始祖)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45대 신무왕(神武王)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으며,『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 및『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신라 49대 헌강왕의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선계(先系)는 정확하게 상고(詳考)할 수 없고, 다만 김흥광(金興光)이 신라의 왕자(王子)임은 틀림이 없다고 본다.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당시 신라가 어지러워 장차 국난(國亂)이 ...
■ 합가리(合伽里) 합가1리 전경 합가2리 전경 ⑴ 연혁(沿革)본래 고령군 하동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가동, 하가동을 병합해 합가동이라 하고 쌍동면에 편입됐다. 1930년 쌍동면과 임천면이 병합됨에 따라 쌍림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웃개애실, 상가곡(上佳谷), 안개애실(內佳谷), 상가(上呵) : 조선 중엽 김송암(金松岩)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을 개척했다. 개애실(개애곡)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웃개애실...
옥산사(경북 구미시 인의동 소재) 1. 씨족연원(氏族淵源) (1) 시조(始祖)⓵ 문강공(文康公) 여헌(旅軒)선생 유록(遺錄)에 기록하기를「고려삼중대광신호위상장군(高麗三重大匡神號衛上將軍)」을 지낸 장금용(張金用)을 시조(始祖)로 모시는 것은 우리가 선대 조상으로 알 수 있는 최초의 선조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조상은 몇 대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 선대 조상이 이곳 인동(仁同)땅에 전거(奠居)하신 내력을 살펴보면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이십대 뿐인데 그 이상의 선조께서도 이곳 인동(仁同)땅에 본래 적(籍)을 두었는데도...
▣ 용리(龍里) ⑴ 연혁(沿革)본래 고령군 고곡면 지역으로 반룡사 아래여서 반룡리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용동을 병합해 임천면에 편입됐다. 1930년 임천면과 쌍동면이 병합됨에 따라 쌍림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왜 상용동(上龍洞) :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마을 주변의 산세가 개구리혈이라 개구리 왜자를 써서 ‘왜’가 됐다. 또 이 마을을 안고 있는 미숭산의 아홉산줄기가 마치 아홉 마리의 용과 같아 이곳에 구룡사(九龍寺)를 지었다. ...
1. 씨족연원(氏族淵源) (1) 시조(始祖) 김균(金稛)⓵ 지문하부사(知門下府使) 김지윤(金智允)과 판도판서(版圖判書) 권현(權鉉)이 따님 안동권씨(安東權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공민왕 9년(1360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공양왕 대에는 조준(趙浚)이 권력을 잡자 친구인 인연으로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이르렀다. 조선이 개국한 뒤 태조를 추대한 공으로 개국공신 3등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가자되고 익대개국공신(翊戴開國功臣)의 공신호를 받았으며,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다. 벼슬이 보국숭록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
신곡리 표지석 ▣ 신곡리(新谷里) 신곡1리 마을전경 오금약수터 ⑴ 연혁(沿革)본래 고령군 유천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박곡동과 신림동을 병합해 박곡동이라 해서 임천면에 편입됐다. 1930년 쌍동면과 임천면이 병합돼 신곡동(新谷洞)이라 부르게 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박실, 박곡(朴谷) : 신곡리에서 제일 으뜸이 되는 마을이다. 깊고 큰 골짜기에 위치한 마을이라 해서 박실 또는 박곡이라 하며, 안쪽 깊숙한 마을이라 해서 박실...
도은 선생 영정 애추석사(哀秋夕辭) 을묘추남행소작(乙卯秋南行所作) : 을묘년(1375, 우왕 원년) 가을에 남쪽으로 갈 때 짓다. 애추석지참처혜(哀秋夕之慘悽兮) 슬프다 처참한 추석이여풍우삽기회명(風雨颯其晦冥) 비바람 휘몰아쳐 사방이 어두워지네회침우이가매혜(懷沈憂以假寐兮) 깊은 시름 안고 잠깐 빠져든 잠 속에서혼정정기상정(魂聇聇其上征) 혼은 둥실둥실 그 위를 올라가는구나지허무이황홀혜(指虛無以恍忽兮) 허공을 나아가니 황홀함이여약유로호우영(若有路乎紆縈) 구불구불 길이 트인 것 같아라홀언승피창혜(忽焉升彼蒼兮) 홀연히...
산주리 수령500년 보호수 은행나무 ▣ 산당리(山塘里) ⑴ 연혁(沿革)본래 고령군 하동면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초곡동을 병합해 산당동이라 하고 편입됐다. 1930년 쌍동면과 임천면이 병합됨에 따라 쌍림면에 편입되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⑵ 지명 유래(地名 由來)* 산댕이, 산당(山塘) : 마을이 번창하려면 연못이 있어야 하지만, 다행히도 이 마을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항시 흐르고 있어 연못이 필요가 없었다. 마을 이름을 뫼(山) 못 당(塘)을 써 산당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