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연서원 전경(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285번지) 하루는 어떤 사람이 냇물에서 잡은 물고기를 선생께 선물로 가져왔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셨다. 선생은 “그대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시니 이 물고기를 가져가 봉양하라.”고 말씀하시며 받지 않았다. 그 사람은 무안해 하며 물고기를 가지고 돌아갔다. 옆에 있던 제자가 “선생님께서는 어찌 그렇게 사람의 후의를 물리칠 수 있습니까?라며 선생께서 한 일을 의아스럽게 여쭈니, 선생께서는 ”군자는 선물을 받거나 사양할 때 반드시 선물하는 이의 형편을 먼저 살펴야 할 것...
見道樓(1990년 庚午年 봄에 준공된 樓門) 조정 중신들의 권유에 따라 선조는 새로이 왕비 김씨(이조 좌랑 김제남의 딸)를 맞이하게 됐다.1606년(선조 39년), 새 중전인 김씨 왕비(후일에 인목대비가 됨)가 왕자를 낳았으니, 그가 바로 조선 5백년을 통해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비극의 왕자 영창대군(永昌大君)이었다.선조는 지금까지 왕자가 열셋이나 있었으나 모두 후궁한데서 태어났기에, 정실 왕비로부터 태어난 왕자는 영창대군 하나뿐이었다. 그리하여 선조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원자(元子:임금의 맏아들로서 아직 왕세자에 책...
1곡 봉비암 안내문 무흘구곡 표지석(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9) 지금에 이르러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하게 하는 바가 있고, 이미 행실이 옳지 못했던 사람들도 이를 본받아 착한행실을 하게 됐으며, 조정의 명을 잘 받들더라.군수가 이 고을에 와서 너의 착한 행실을 듣고선, 향토의 선비들을 보내어 술과 고기로 제사를 드리고, 또 장차 묘 주위에 나무를 심게 해 효자문(孝子門)도 세우리라, 너는 그 영(靈)이 있어 이를 누리고 이 뜻을 알지어다.군수가 초도순시에 너의 묘에 제사를 드리고, 지금 또한 나무를 심고, 원장을 한...
회연서원 강당(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9) 2)평생 처사(處士)인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영향 퇴계 이황에게 가르침을 받은 한강 선생은 이어서 평생 동안 처사(處士:덕망과 학덕을 갖춰 있으면서도 벼슬을 하지 않고 조용히 야(野)에 파묻혀 사는 선비)로 있었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영향을 받은 바가 적지 않았다.남명 선생은 1501년(연산군 7)에 태어나 1572년(선조 5)에 돌아가신 유학자로, 자(字)는 건중(楗仲), 호(號)는 남명(南冥),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판교(判校) 언형(彦亨)의 아들이다.경남...
회연서원 전경(성주군수륜면 동강한강로9) 한강 묘소(성주군성주읍4길31) * 한강(寒岡)의 어린 시절 1) 발군(拔群)의 영재(英才) 한강은 태어나면서부터 남달리 총명했고, 자라면서 영특(英特)해 다섯 살 때부터 여느 아이들과 다른 모습이 나타나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또한 한 가지를 마음속에 작정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끈기와 인내심이 강했다.타고난 성품이 호탕(浩蕩)하고 너그러운 가운데 의지가 굳었으며, 빼어나게 잘생긴 얼굴에 빛나는 눈동자는 언...
한강 선생 영정 무흘구곡 표지석 ▣ 무흘구곡(武屹九曲) 고령에서 성주, 김천을 이어주는 길과 계곡이 무흘구곡(武屹九曲)이다.이 계곡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 이하 한강) 선생이 남송 때 주희가 노래한 무이구곡을 본받아 지은 무흘구곡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탄성이 절로 나오는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한강(寒岡)의 무흘구곡(武屹九曲), 1곡부터 9곡에 이르는 詩를 소개한다.천하산수최저령(天下山誰最著靈) 천하의 산중에 어느 곳이 가장 신령스러운가인간무사차유청(人間無似此幽淸) 인간 세상 이곳처럼 그...
(쌍림면 송림리 소재1) ▣ 죽유의 교육사상 □교육관 및 목적 스승 남명의 학문은 성리학적 범주를 토대로 한 학문을 지향하고, 성인자기(聖人自期)의 요체로 경의(敬義)로 파악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법성인(法聖人)을 교육의 목적으로 상정했다. 이는 죽유의 교육관이나 교육목적론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은 개인의 자질에 따라, 각기 성장과 발달을 통해서 이뤄지는 인재양성이므로, 박록(朴漉)의 사림제문(士林祭文)에서 묘사되는, “뜻은 오로지 교육에 있으며,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죽유의 교...
죽유종택(쌍림면 송림리 소재) 마지막으로 성오당 이개립의 성오당에 쓴 ‘省吾堂八詠’이 있다. 이 작품도 일반적으로 볼 때 성오당의 각 건물과 경관의 성격에 비슷하게 맞춰 읊고 있으나 작자의 의도가 비교적 드러난다고 생각되는 작품 한두 수를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서적을 간직한 누대’라는 제목의 장서루(藏書樓)란 작품을 보자. 장서루는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도서관인데 도서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의 범위를 넘어 죽유 자신의 생각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영백흥망백변여(映帛興亡百變餘) 역사의 흥망은 백번 이상의 변...
운양각(죽유 종택 내) 당시적 풍격을 지녔다고 널리 알려진 權應仁(권응인, 1521~? )이 소식의 「적벽부」에서 운자를 취하여 절구 10수를 지었는데, 오운이 이것을 모방해 위의 시를 지었다. 이 작품에서 오운은 소식이 「적벽부」에서 발휘한 시적 상상력을 대폭 수용하고 있다. 객과 나를 내세워 대화체로 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天地一瞬耳’와 ‘飛仙挾不得’ 등은 「전적벽부」의 ‘天地曾不能以一瞬’, ‘挾飛仙以遨遊’를 적극적으로 용사한 것이다. 이 용사는 위에서 제시된 시편에 제한되지 않고, ‘何用羨登仙’, ‘有客...
죽유 묘소(영주시 소재) 교지 64세 때(1603) 7월 보름이 지나 백암(栢巖) 김늑(金玏), 남천(南川) 권두문(權斗文, 1543~1617), 취수(趣睡) 박녹(朴漉, 1542~1632)과 더불어 구대(龜臺) 아래에서 뱃놀이를 했다. 65세 때(1604) 가을에는 취수(趣睡), 박녹(朴漉), 남천(南川), 권두문(權斗文, 노대해(盧大海)와 더불어부석사(浮石寺)를, 67세 때(1606) 3월에는 회곡(晦谷) 권춘란(權春蘭, 1539~1617), 면진(勉進) 금응훈(琴應壎, 1540~1616) 구대(龜臺)를 유람했...
대가야읍(大伽倻邑)-6 * 당간지주(幢竿支柱) : 보물 제54호이다. 지산리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다(지산리 산2번지). 높이 3.5m, 너비 63cm, 두께 47cm의 화강암이다. 이곳 위치로 봐서 현 향교 자리에 큰 사찰이 있은 듯 하며, 6.25사변 때 폭격으로 약 15도 기울었다.* 징사월담정선생 유적비(徵士月潭鄭先生遺跡碑) : 선생의 본관은 진양이다. 고려조 병부상서 금자광록대부 진양부원군 은열공(兵部尙書 金紫光祿大夫 晉陽府院君 殷烈公)의 후손이다.서기 1508년 중종3년 9월 13일 참봉 린(麟)의 아들로서 대가야...
동곡재(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소재) 1. 씨족연원(氏族淵源) (1) 시조(始祖)① 연일정씨(延日鄭氏)의 원류(源流)는 취산(觜山) 진지촌(珍支村)의 촌장(村長)이었던 지백호(智伯虎)로 하나 연대가 워낙 오래고 고증(考證)이 없으므로 계대(系代)를 상고(詳考)할 수 없어 그 원손(遠孫)으로 신라 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지낸 정종은(鄭宗殷)을 도시조(都始祖)로 한다. 정종은(鄭宗殷)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영일호장(迎日戶長)을 지내고 영일현백(迎日縣伯)에 봉해졌으므로 그 후손들이 본관을 영일(迎日)로 하였다 한다. 본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