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성 우륵 대가야국은 AD 42년에 건국해 562년 신라에 멸망할 때까지 520년간의 흔적이 고령 관내 도처에 고스란히 남이 있다.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시대별, 분야별로 고령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본지에서는 2017년 고령문화원에서 발행한 ‘고령군 인물지’를 근거로 가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 까지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재평가하기 위해 이번호에 세 번째로 연재하고 있다. 편집부 ◆ 김계룡(金季龍)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김천찰방(金泉察訪)을 지낸 지(池)의...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큰 틀을 바꾼 2022년은 변화와 혁신의 패러다임에 모두가 응답한 ‘대전환의 해’라 할 수 있다. ‘군민의 이름으로’ 출범한 고령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고령군은 이렇듯 힘든 여건 속에서도 선택과 집중, 혁신과 변화의 힘으로 지역을 살리기 위한 군민과의 담대한 여정을 힘차게 시작했다. 민선 8기 고령군정의 진정성 있는 첫 걸음은 군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 여기고, 이남철 군수는 취임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각계각층의 군민과 소통간담회를 가져왔다. 한편, 민...
고령참외는 성주군과 연접한 운수면, 다산면 일대가 주산지며 가야산 줄기의 맑은 물과 사질 양토에서 뛰어난 기술과 꿀벌 수정 등 친환경적으로 재배하며 깔끔한 외형과 단단한 과육으로 저장성이 뛰어나 초기에는 금싸라기 품종만을 재배했다. 그러나 다산면을 중심으로 ‘조은대’품종을 재배해 일반 참외보다 당도가 1~2 brix 높고 육질이 아삭해 식감이 좋으며 저장성이 높아 소비자가 구매 후 오랫동안 보관 할 수 있어 큰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농가에서 병해충에 강하고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품종을 선택해 재배하고 있다. ...
이진아시왕 대가야국은 AD 42년에 건국해 562년 신라에 멸망할 때까지 520년간의 흔적이 현재 고령관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시대별, 분야별로 고령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본지에서는 2017년 고령문화원에서 발행한 ‘고령군 인물지’를 근거로 가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재평가하기 위해 이번호부터 연재하기로 했다. 2. 고려, 조선시대 인물문무관(文武官) ◆ 강군보(姜君寶)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증(贈) 중대...
고령의 지형지세는 서쪽으로 미숭산, 남서쪽에 만대산이 위치해 경상남도와 도계를 이루고 동쪽은 낙동강이 관내 4개 면을 우회하면서 대구 달성군과 경계해 흐르고 북은 의봉산과 가야산 줄기가 연결돼 가야산 맑은 물과 낙동강변의 사질양토로 천혜의 자연 환경으로 비닐하우스 재배가 발달했다. 1970년대 정부의 읍면별 특화작목 정책으로 고령군 전체 읍면별 특화작목으로 육성돼 쌍림면 딸기, 우곡면 수박, 개진면 감자, 성산면 멜론, 운수·다산면 참외가 고령군 5대 특화작목이다. 또 옛날 임금님에게 올린 진상미로 알려...
대가야국은 AD 42년에 건국해 562년 신라에 멸망할 때까지 520년간의 흔적이 현재 고령관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시대별, 분야별로 고령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본지에서는 2017년 고령문화원에서 발행한 ‘고령군 인물지’를 근거로 가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재평가하기 위해 이번호부터 연재하기로 했다. 1. 대가야시대 인물(1) ▣ 정견모주(正見母主) 정견모주상 정견모주상정견모주에...
신철휴 선생 기념비(우곡면 우곡로 1146) ▣ 고령체육회 발족에도 기여 1946년 3월 고령읍(현, 대가야읍) 쾌빈리 소재 중앙여관 사무실에 당시 체육인들이 모여 고령체육회를 결성했다.당시 참여한 인사로 영남체육회 창립13인 중의 한사람이며 우리나라 빙상계의 거목인 차성호(車性鎬) 선생을 비롯해 애국지사 해영(海影) 신철휴(申喆休) 선생, 유 일(兪逸)씨, 김홍식 전 국회의원, 유상호 전 도의원 등 장년층과 서규원, 이준구, 이동환, 이우년, 최인두, 김세균, 석태균, 정규택, 김문배, 이하영, 문위준씨 등 젊은...
신철휴 선생 내외분(부인 김소선 여사)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이 병원이지 시설이나 치료약도 제대로 없었고, 치료나 투약 역시 형식적이었다. 병원에 들어온 지 1개월이 지난 어느 날 병원에서는 나가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선생은 등에 업혀 다시 감방으로 왔다. 이제는 기진맥진해 앉아 있을 힘마저 없어 늘 누워 있게 됐다.이 딱한 사정을 본 같은 감방의 죄수들은 밖에 나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종종 간수의 눈을 피해 ‘참새 새끼’ 또는 ‘지렁이’를 잡아다 먹였다. 여기에서 선생은 효과를 얻어 점차 건강이 회복됐다. ...
해영 신철휴 선생 어둠 컴컴한 지하 비밀실에는 몇몇 동지들이 폭탄을 만들고 있었고, 그들이 만든 폭탄은 한쪽편에 쌓여져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김성근은 나직한 그러나 힘주어 해영 선생 일행에게 말했다. ‘동지들 참 잘 왔소, 조국 강토는 지난번 3.1만세 사건으로 말미암아 피로 물들이고 있고, 2만 우리 동포는 맨 주먹으로 항쟁(抗爭)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하루속히 단 하나의 폭탄이라도 더 만들어서 일제를 때려 부셔야만 하지 않겠소. 자~ 동지들, 먼저 내가 시범으로 만들어 볼 테니 ...
신철휴 선생 묘소(대전 국립현충원) 저항기(抵抗期)의 광복운동(光復運動) 1. 비운(悲運)의 조국을 등지고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조약(韓日合邦條約) 조인 이후 대한제국조선(大韓帝國朝鮮)으로 개칭하고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를 설치한 일제는 초대 총독에 사내정의(寺內正毅)를 앉히고 강압과 흉계(凶計)는 날이 갈수록 심해만 갔다.그해 11월에는 우리 한국인이 저작한 각 학교용 교과서는 모조리 몰수하는가 하면 총독부에서는 소위 식민지교육(植民地敎育)을 위한 교원심득(敎員心得)이란 짓을 만들어 공포했다. 이제는 ...
신철휴 선생 흉상(우곡면 우곡로 1146) 고령군 고령면(현, 대가야읍) 고아리에서 1898년 출생한 해영(海影) 신철휴(申喆休, 이하 해영) 선생은 일제(日帝) 강점기인 1919년 20대의 젊은 나이에 가족과 고향산천을 뒤로하고 만주로 망명했다.국가와 민족이 풍전등화와 같은 엄중한 시기에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오로지 민족의 독립만을 위한 결단이었다. 만주로 건너간 해영 선생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1919년 3월 해인사 지방학림사건에 대구, 현풍, 고령지역 책임담당으로 활동했다.독립운동의 산실인 만주 신흥무관학교 ...
회연서원 전경(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285번지) 하루는 어떤 사람이 냇물에서 잡은 물고기를 선생께 선물로 가져왔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셨다. 선생은 “그대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시니 이 물고기를 가져가 봉양하라.”고 말씀하시며 받지 않았다. 그 사람은 무안해 하며 물고기를 가지고 돌아갔다. 옆에 있던 제자가 “선생님께서는 어찌 그렇게 사람의 후의를 물리칠 수 있습니까?라며 선생께서 한 일을 의아스럽게 여쭈니, 선생께서는 ”군자는 선물을 받거나 사양할 때 반드시 선물하는 이의 형편을 먼저 살펴야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