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유시인·수필가 며칠 전 아내와 칠성시장에 갔다. 칠성시장은 서문시장 다음으로 대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없는 물건이 없다고 할 정도로 소문난 곳이다. 지하철 칠성시장역에서 내려 계단을 오를 때부터 시큼 짭짤하면서도 구수한 장터 냄새가 풍겨왔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도로 가장자리에 길에 늘어선 좌판과 그 위에 쌓인 갖가지 물건들이 우리를 반긴다. “사가이세이!”하고 아주머니들이 던지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어린 시절 고향 장터의 낭만을 되살아나게 한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감 어린 맛이다. ...
이전에는 향우회 모임에도 나가서 고향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나누기도 했는데 개인적인 사정과 이런저런 핑계로 요즘은 자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타향객지 생활을 수십 년 하다보면 그래도 언젠가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친구도 고향 친구가 제일 좋더라는 얘기를 하게 되는데 정말이지 백 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도 태어난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고 하지 않던가. 얼마 전 연어가 바다로 나아가서 몇 년을 잘 살다가도 자신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때를 본능적으로...
배 연수필가, 화가 고향의 사전적 의미는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또는 제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이라고 되어있다. 고향은 나의 과거가 있어서 그리움이 타향에서 곧장 찾아갈 수 없어서 안타까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면서일정한 형태로 나에게 형성된 하나의 세계라고도 한다. 그리고 고향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람 외에 산천이라는 자연도 포함되기에 고향산천이라고 한다. 생물학적 탄생과 일치시켜 어머니와 같이 보기도 한다. 고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어머니가 아닌가 싶다. ...
김상룡수필가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는 광활한 우주에 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한 번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때가 있다. ‘별에서 왔다가 별로 돌아가는 거지’ 옛적 할배 곰방대 같은 소리지만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답이 될 수도 있다. 죽음에 이르러 21그램 무게의 영혼이 자기 별로 향한 우주여행이 시작된다는 거,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지난달 우리나라 남쪽 바다 끝에선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트랜스포터에 실려 이송되고 있었다. 우주로 나아가야겠다는 온 국민의 열망이 ...
정아경 수필가 제주도는 먼 이국의 땅이었다. 대한민국 지도를 그릴 때 가장 마지막에 그리던 제주도는 멀고도 먼 곳이었다. 내가 서 있는 땅의 모양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다고 하셨던 것도 같고, 토끼를 닮았다고 하셨던 것도 같다. 선생님의 일방적 주입식 수업이었지만 내 고장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회 시간이 즐거웠다. 사회과부도를 닳도록 펼쳐가며 각 지역의 좌표를 찾는 것은 재미있었다. 육지에서 뚝 떨어진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남도 끝의 제주도는 지도에서도 멀었고, 그만...
윤 영수필가 점심을 먹고 마로니에 가로수 길을 걸으며 B가 말했다.“그대는 연구 대상이야.”라며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가로수길 너머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이야기에 열변을 토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부동산 따위에 관심 없다며 말끝을 흐리곤 애써 나무의 표피를 어루만졌다.그는 여전히 미련인지 애착인지 몇 마디를 잇는다. “지금이 80~90년대 판자촌에 틀어 앉아 재개발을 바라볼 것도 아닌데 그 강 건너 시골 아파트에 30년이나 뼈를 묻고 사냐. 새집을 분양받아 프리미엄 받아넘기고 해야 돈을 벌지....
여 명시인 지나고 보니, 은퇴를 한 지도 여러 해가 흘렀음을 퍼뜩 깨닫는다. 아점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한다. 이어 청소를 한다.분리수거 쓰레기통에, 일반 쓰레기봉투를 얼마나 양이 찼는지 체크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 버릴 것들은 다 챙겨 나간다.아파트에는 분리수거 함들이 따로 따로 잘 정비되어 있다. 종량제 봉투 쓰레기들을 모으는 큰 플라스틱 통이 있고, 박스를 모으는 원형 포대, 투명 페트병, 일반 플라스틱류, 비닐류, 철제류, 병류 넣는 곳, 스티로폼 박스 모으는 곳, 또 가정에서 쓴 폐기름을 담는 드럼통과 음식 쓰...
한현정시인 / 소설가 “이게 다 너 때문이야.”겨울이의 가슴속에 쌓여 있던 울분이 폭발하고 말았어요. “엥, 무슨 소리야.”“너 때문이라구!”“내가 뭘 어쨌다구!”“네가 팽이 자랑만 안 했어도…….”“그러니까 더 좋은 팽이를 구해와. 불면 훅 날아가는 허접한 것 말고 말야!”민준이는 거만한 표정을 지었어요. 겨울이는 화가 나서 민준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어요. 민준이도 겨울이의 멱살을 잡았어요. 둘은 뒹굴며 싸웠어요. 필사적으로 버티고 때리고 발로 찼어요. 사범들이 달려와 떼어놓지 않았다면 계속 싸웠을 거예요.돌아오는 ...
한현정시인 / 소설가 “아줌마, 얼마에요?”“음, 삼천 오백 원이구나.”겨울이는 천 원짜리 네 장을 분식집 아줌마 앞에 놓았어요. 아줌마는 백 원짜리 다섯 개를 남겨 주었어요.왠지 거스름돈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꼈어요. 바지에 돈이 남아 있으면 엄마한테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태권도 수업도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 딱히 갈 곳도 없었어요. ‘그동안 돈이 없어서 못 했는데 인형이나 실컷 뽑자.’겨울이의 눈이 빛났어요. 인형 뽑기 방에는 중학생 형이 세 명 있었어요.“아흐! 뽑을 뻔했는데…….”형들이 마음대로 되...
최종동 대한웰다잉협회 고령군지회장 나는 죽었다. 지금 나는 관 속에 누워 있다. 삼베 수의를 입고 손과 발은 하얀색 끈으로 꽁꽁 묶인 채 600x1900x450mm 크기의 나무로 만든 관 안에 누워 있다. 관 뚜껑이 닫히고 세 차례의 못 박는 망치질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나의 귓전을 친다. 귀청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관 뚜껑과 관 사이에 가느다란 빛이 새 들어왔다. 아주 캄캄한 어둠은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뚜껑 위로 어떤 천이 덮이는 듯 하더니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아! 여기가 바로 무덤이구나. 밖과 안...
우종율수필가 우후죽순이라 했던가. 여기저기 빈틈없이 장악했다. 러시아군 탱크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침공하듯, 며칠 전 새 넝쿨손이 울타리 전체를 덮어버렸다. 이대로 둔다면 온 밭 전체가 녀석의 줄기로 싹쓸이할 게 틀림없다. 낫을 들고 녀석들의 줄기를 자른다. 녀석들은 억울하단 말조차 하지 않는다. 철면피다. 경계가 있는 곳에 함부로 뿌리를 내리면 주거 침입죄에 해당이 된다. 도대체 어디서 온 녀석일까.닷세 동안 텃밭을 찾지 않은 게 이유라면 이유다. 그동안 우기가 길기도 하고 일상에 푹 빠져 다른 곳에 눈을 둘 여유조...
“여보세요. 전화 주운 사람입니다. …네. 편의점에서 주웠어요. 학생이랑은 이미 통화돼서 학생이 폰 찾으러 오고 있어요. 여기는 부천이에요. 좀 멀죠… 하하 제가 집이 부천이라 … 폰을 주웠는데 아무리 편의점에서 기다려도 안 오기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와 버렸네요. 학생이 오는 길에 지하철을 잘못 타서 천안 방면으로 가는 바람에 늦어졌다고 하네요. 원래 1호선이 헷갈리기 쉽잖아요. 부모님께 연락드리려고 해도 번호를 잊어버려서 연락을 못 했다고 만약 부모님 전화 오면 잘 좀 받아달라고 했어요. 슬슬 학생이 도착할 시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