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이병화시인 여로 계절을 닮아가는 고난의 여정그림자 거울삼아 돌고 돌아어느덧 미수가 따라오네요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다움 이었는지… 스산한 새벽달 기러기처럼서걱대는 추억 품고 가지요 이성보다 감성을 가지고사슴처럼 기대고 싶은데 세월은 산을 넘고허허실실 여유가 행복인데 세월을 빗질하며 여유있게꽃처럼 웃으며 살고 싶다
이정란시인 27’어머니에게 삶이 꺾이는 숫자다남편을 가을나비처럼 떠나보낸 나이무거운 짐을 지고 다시 일어서야 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다시 92’서서 버티기가 버거운 숫자가 됐다지난날이 몸서리쳐지는 것이었을까이제 하나씩 버리고 계신다어머니의 머릿속은 자꾸자꾸 가벼워져자식조차 지울듯하다짐이자 꿈이었던 남매를 남겨놓고어머니 자꾸 멀어져 가신다 이제 93’더 가벼워진 어머니는쉽게 가실듯하고나는 숫자의 무정함에가슴 아파하고 있다
이병연시인 아직 아니야 어느새 입춘이 지났네찬바람이 기웃대던 문풍지에봄 향기 사알짝 묻어나는 듯 오늘은 햇살 가득한언덕에 올라 볼까 뺨을 스치는 바람의 발톱이아직은 날카롭다 입춘은 와서내 마음에만 불을지피고 있었네 * 2020년 경북장애인종합예술제 시 부문 수상
곽도경시인 화가 목련, 날다 관음도에는 바다 위에도 목련이 피네 시린 물결 위에서꽃들은 짝을 짓고어린 꽃들이 태어나고 하나, 둘아니 백, 이백 송이바다 위에는온통목련 또 목련 겨드랑이 어디쯤이 가려웠을 거야날개가 돋기 시작한 꽃 어느새일제히 날아올라허공은온통괭이갈매기 또 괭이갈매기
이종갑시인, 시조시인 마음의 꽃밭에다 통나무 집 하나 짓고빳빳하게 날이 선 갈대 같은 그리움에허공의 창문을 열고 구름을 쫓다보니 일없이 지나는 날 노을만 밟혀드네 씁쓸하게 켕기는 뜨거운 겨자 눈물누가 또 매운 고추를 베어 문 듯 아리다.
서상조시인, 소설가 적도가 온다 사과나무는 왜 북극이 그리울까차츰 차츰 북쪽을 향해 가고 있다 한라봉도 따라가고적도가 고향인 바나나도 뒤를 따른다 나도 버티고 버티다가 언젠가는 저 나무들의 뒤를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적도가 밀려오고 있으니 올해 여름은 더 덥다
문성희시인 한 잔 술에 추억을 부으면어둠 속에 빛나는 별빛이 내려앉네 지나가던 가녀린 바람 손길이 느티나무 가로수를 연주하네 내 사랑 쉴 곳은 어디인가구름에 실려 가는 달무리 술잔에 추억이 풀리네그 향기에 취해 가슴은 젖네 온몸 떨리던 그 밤의 기억맑은 두 눈에 담겨 오는 그녀의 그리움
강기철시인 꽃 지는 치마산 펼쳐진 분홍 치마폭그 수줍은 가랑이 사이로 뱀 한 마리 기어 들어간다저거 저거 치마를 들춰야 하나치마를 아니 저 뱀을 어떡하나 흘깃 흘깃 조마조마그 여자 열 오른 얼굴 아래점점 짧아지는 치마폭만 바라본다내 봄날이 다 지나간다
곽호영시인 도로 아미타불 시간이 흐르면서악몽 같던 상황이 수습되기 시작했다상처가 치유될 수 있었던 것도시간이 흐르면서였고그를 이해할 수 있는 관용도시간이 준 선물이었다구차하다고 생각했던 삶을꽤 괜찮게 살 수 있게 해준 것도시간이 흐르면서였다 대책도 없이그와 마주쳤다모든 상황이 원위치 되는 데 걸린 시간은삼 초면 충분했다
이길호시인/고령문협 낭송분과위원장 DB(동부)화재 소장 어느 죽음 한 사나이가 죽었다고 하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몇 년 동안 걸치더니 독이 되었던 것일까 권력이란 것이 철없는 자들의 장난에 불과하고 진정 존재하는 것이 아닐진대 그 착각의 독배로 인하여 때 아닌 죽음을 맞았네 어디 한 사람뿐이랴 지금도 세인의 욕을 딛고서 그 유혹으로 죽음의 행보를 하는 자가 있을 것이네
여명시인 찔레꽃 향기는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장사익의 목젖 바이브레이션 따라 도포자락 소매끝동이 파르르 떤다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이해인 수녀의 ‘사랑한다는 말은’ 그, 낭송이 끝나는 싯구 끝가지께로 벌새 한 쌍이 사뿐히 날아든다.
진금선(동시인 / 스토리텔링 동화 연구가) 비닐 대신 시장바구니로장을 보시는 엄마도세재 대신 밀가루 풀어설거지하는 아줌마도 뱅글뱅글 이리저리 다녀도벗겨지지 않는 비닐 목에 건 돌고래가 야금야금 먹었던 플라스틱배 속에 쌓여 죽어가는 동물들이 생길까 봐 하는작지만 위대한 노력들 말하지 않고표정도 없는데알 수 있는 동물들의 슬픔 그 슬픔이 우리들의 슬픔으로 이사하지 못하도록 천년만년 친환경‘참 잘했어요’ 도장 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