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익 시인 10월에는 오염되지 않은 청량한 바람이 가슴을 젖시게 하시고 황금빛 들녘의 풍성함을 가득 안게 하소서 온갖 상처가 머물다간 자리마다 부드러운 햇살로 어루만져 아물게 하시고 새로운 날들로 가슴 부풀게 하소서 눈과 귀를 씻지 않게 말과 행동이 하나 되게 하시고 우리 어버이들의 땀과 혼이 가득 베인 곡창지역의 드넓은 평야와 울창한 숲이 미명의 이름으로 이제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하소서 10월에는 가슴에 앙금을 모두 씻어내고 하루, 하루가 새 하늘을 여는 개천절이 되어 ...
21세기는 감히 택배시대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생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사는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음식물을 포함한 주문하는 모든 물건이 집으로 배달되는 참 축복받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모교인 대구의 K중고등학교 재경동창회에서 동문들을 위해 결성된 ‘경맥문학회(慶脈文學會)’가 1년에 한 번씩 종합문화예술지인 “경맥춘추(慶脈春秋)”를 발행한다. 동문 자신과 가족의 시, 수필, 소설, 사진, 서예, 그림과 평론 등을 게재해서 1년에 한두 번 발행되는 잡지이다. 올해는 세계도처에서 사는 모교의 동문들...
이자경 시인 너를 오래 기억할 수 있음은 내게 고통이 아니었어 그것은 오히려 축복이었지 보고 싶어도 침묵으로 보낸 수많은 날들이 고결함을 만드는 기다림이었나 봐 옷깃을 여미듯 꼭 다문 입 그 안에서 비밀스럽게 자라는 아픔이 은은하고 신비로운 빛으로 승화하여 기품 있고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네 너를 오래 기억할 수 있음은 그리움을 가슴속 미소로 참아낸 세월이 있었기에 만들어진 눈부신 아름다움 진주를 만드는 과정이었어
이문익시인 캔버스에코발트빛 하늘과한가로이 산을 넘는 흰 구름을 담아뒷동산에서 뛰어놀던어릴 적 고향 풍경을 그려보자 꼴 베고 콩서리 하던코흘리개 동무들도 부르고마당에 둘러 앉아음식 만드시던 어머니와 외할머니, 그리운 이들도 모두 모시어 초가 위로 두둥실 떠으로는 보름달을 바라보며동동주 한 사발로 회포를 풀면서밤이 이슥토록 옛 이야기꽃을 피워보자
박수나(시인/(사)국제문인협회 회원) 담담하고 차분한 심경얼마 전까지만 해도 밀려오는 생의 흔적의 그리움이가슴을 살짝 조아려 주었건만 이젠 삶의 감정이 메말라져그토록 애틋했던 그리움도다 깊은 계곡 너머로 사라진허무한 머언 옛날 이야기 진실을 가슴에 묻어두고숨죽인 시야에서 헐떡이던어설픈 존재감의 옆모습마저허망함 실어 뽀얗게 증발하려 한다 아무리 찔러보아도 통증조차 없는 길고 깊은 슬픔의 호수처럼 미련한 나를 저버리지 않은 긴 세월이대로 의연하게 아픔 씹어 넘기리라
전정식(수필가/‘국제문예’ 수필부문 등단) 한 달 전, 아파트 단지에 운영 중인 휘트니스 센터에 등록했다. 주로 러닝머신에서 30분을 뛰는 것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시간을 늘리는 정도인데 1시간 동안 스피드 6~7을 놓고 뛰고 걷기를 반복한다. 1시간이면 대략 420칼로리가 빠진다. 이 모든 것은 오늘 치러질 건강검진에서 흡족한 결과를 얻기 위함이다. 나는 매년 의무적으로 한번 받게 되는 직장 내 검진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전부터 결과 지표에 굵고 붉은 글씨로 정상치를 벗어난 숫자가 조금씩 늘어...
이명희(시인 / 국제문인협회 회원) 나에게 주어진 귀한 하루무작정 걷는다나의 애마인 신발과 함께 갈 곳을 정하지도 못한 채바람이 귓가에 투정하는 소리 따라따가운 햇볕이 미는 방향 따라무작정 걷는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애마는 무거워지는데머리는 가벼워지고가슴은 자유로워지고 있다 가슴에 숨 쉴 조그마한 공간이 생긴다그곳에 그대를 부른다 그대가 웃는다무작정 같이 걷는다인생 여정
권영순(수필가 / 국제문인협회 회원) 꼬박 이틀을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맸다. 평탄한 길을 걸어가다 갑자기 절벽 앞에 선 기분이랄까. 앞으로 내디딜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견디다 못한 남편에게 격한 감정을 폭포수처럼 쏟아부었다. 하늘같이 의지한 남편에게 따뜻한 위로의 햇살을 기대했다. 그런데 의외로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를 맞는 것처럼 남편은 시어머니를 이해하라며 시어머니 편을 들었다. 내가 그토록 듣고 싶은 말, “시어머니의 요구에 많이 힘들지 않는냐?”는 위로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시인 이문익 너와 함께 무수히 거닐었던호수 같은 강변 저 멀리붉은 노을이 피면 하늘은 온통 그리움으로 물들어 가고보에 물소리 네 맑은 웃음처럼귓전을 맴돌아 흐른다 어둑어둑 땅거미 가슴에 내리고상현달빛 물에 어리면 부서지는 은파, 애절한 시가 되어강물을 적시며 노래를 하고 네 체온이 남아있는 내 가슴에는 그리움이 노을처럼 핀다.
수필가 정 길 생(전 건국대학교 총장) 이곳 S 실버타운에서 가장 편한 곳은 공중 목욕탕이다. 그곳은 언제 가도 우리 노인네들에게 몸과 마음의 안식을 준다. 또 그곳에 가면 체면과 자존심 같은 것들은 모두 벗어던지고 벌거숭이가 되어 서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 노인들이 목욕탕에서 나누는 대화 중 가장 자주 듣는 화제는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 안부전화를 하는 자녀들의 효심을 자랑하는 노인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그런 노인들과는 달리 당신에 대한 자녀들의 무관심을 섭섭해하는 노인들이 더 많다. 지난 주...
시인 이문익 단풍 향기무심하게 강물에 흐르고푸른 하늘엔바람도 구름을 안고산 넘고 강 건너 들판을 지나정처 없이 흘러가는데 일렁이는 기억 너머로갈꽃이 춤추는 해거름 들녘에서동무들과 어울려소 치며 꼴 베고 놀던사금파리 같은 갈색 향수와유년의 시간이 겹쳐잔잔하게 파문이 쌓여만 간다 하교 길십오 리 굽은 신작로를 뛰다가 걷다가 징금다리 개울가에 책 보따리 던져 놓고피라미를 잡고 놀던 소년이어느새가슴 한 곳이 비어버린서리가 내리는 중년이 되어 서 있다.
시인 이문익 빛에 찌든 삐쩍 마른 어둠을 개고 하얗게 쉰 세월의 저 강에 저린 가슴 풀어놓으면해빙기질퍽이는 비탈길에서 봉합한 시간들이눈에 녹아내린다 겨울이 남아있는 잿빛 하늘이 낮게 흐르는 강에는 낡은 허주에 기러기 울음만 쌓여가고뒤듬바리 걸음으로 쫓아온 날들은뒷짐을 진 채 돌아서 있구나 스산한 계절 사이로회색 바람이 불어오던 날낙동강 모래톱에 묻은 상념의 뿌리가 어지럽게 자란 강변에는 갈밭을 배회하는 바람이 생각을 여미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