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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대 차출…사선 넘나들며 전쟁물자 날라 애국에 일조

주간고령 편집부 2019-06-07 (금) 21:31 3개월전 260  




인터뷰하는 본지 기자

“6.25 한국전쟁 당시 정규군은 아니지만 보국대(保國隊)로서 탄약 등 전쟁물자를 나르며 군인들이 불법남침한 공산군을 몰아내는데 일조했다는 것에 나름대로 보람을 느낍니다.”라는 윤윤중(87) 어르신의 애국심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듯이 6.25참전호국영웅들로부터 당시의 생생한 얘기를 듣고 후세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겠지만 참전용사 대부분이 90세 전후여서 이제 시간이 없다. 호국보훈의 달 다산면 상곡리 윤윤중 어르신을 모시고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듣는다. -편집부-

 


다산면 상곡리 호국 영웅 윤윤중(87) 어르신

 

- 언제 보국대(保國隊)로 차출 되었습니까?

고향은 칠곡이지만 당시는 대구에서 살았다. 미8군에서 노무자로 하루 종일 일했지만 보리쌀 2홉이 노동의 대가였다. 당시야 너나할 것 없이 배고프던 시절이었지만 혈기 왕성한 18살 청년으로서는 배고픔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 날 부대에서 빵을 훔치다 들켜 급기야는 그것이 빌미가 돼 보국대로 차출을 당했다. 1951년 7월, 침산동에 있는 방직공장이 보국대 본부였는데, 10여일을 그곳에서 보내다 야간열차를 타고 정처 없이 간곳이 파주 임진강 부근 전장(戰場)이었다. 


‘캐나다 50부대’였는데, 50여명의 보국대 소대원이 함께하면서 낮에는 적군에게 노출을 피해 숨어 있다가 밤이면 전방 군인들에게 식량이나 탄약 등 전쟁 물자를 짊어지고 운반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낮엔 조용하다가도 밤만 되면 격전지로 변하는 것이 당시 전장의 참상이었다. 적에게 노출을 염려해 불을 피울 수도 없고 침낭 속에서 밤을 새웠고, 아침에 일어나보면 침낭 표면에 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는 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질 않는다.


사방에서 포성과 총소리가 빗발쳤고, 코앞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모습을 똑똑히 보기도 했으며, 그야말로 목숨은 하늘에 맡기고 우리 보국대는 오로지 임무를 완수해야만 했다.


우리가 주둔했던 곳은 적진과 아군주둔지 중간지점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총칼이 날아들지 피를 말리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우리 보국대는 총이 없고 다만 적이 나타날 때를 대비해 항시 칼을 수중에 지니고 있을 정도여서 불안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 보국대의 주 임무는 무엇인가요?

보국대(保國隊)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첫째는 일제강점기에 강제노동에 동원된 근로보국대가 있고, 두 번째는 6.25전쟁 당시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발령한 ‘징발에 의한 특별 조치령’이 있다. 세 번째는 6.25전쟁 당시 인민군보국대가 있다. 나는 두 번째인 국군보국대로서 군사시설 유지보수나 전방고지에 식량과 탄약을 짊어지고 운반하는 등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 주 임무다.

- 종전 1년 후 정식으로 징집, 5년 군생활

휴전 2개월 전인 1953년 5월 육군본부로부터 여비 조금씩 지급 받고 보국대 임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종전이 되고 1954년 10월에 정식으로 징집영장을 받고 파주 3군단지역에 입대해 제대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중대장으로부터 장기복무 종용을 받고 꼬임에 빠져 하사로 진급해 군 생활을 계속했다. 군 생활 중 가슴 아픈 추억이 하나 있다. 휴가 중 배탈이 심하게 나서 24시간 미귀한 사건으로 4개월 영창에 두 계급 강등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고초를 겪고 1959년 10월 만 5년 만에 제대를 했다.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승전 기념 메달을 받았지만 이사할 때 분실한 것이 너무도 아쉽다.


나는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공산당의 생리를 조금은 알 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을 완전히 믿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다만, 우리 세대는 이제 황혼 길에 접어들었지만 전쟁을 겪지 못한 전후세대들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것을 권하고 싶다.


- 가족관계는?

부인(82세, 김무연)과 슬하에 2남 1여를 뒀다.


2006년 다산으로 이사해 현재 장남과 우리 내외가 함께 살고 있는데, 최근에 부인이 낙상으로 다리가 골절돼 병원에서 입원치료중이다.


농사 지을만한 토지는 없고, 노령연금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윤윤중 어르신은 사선을 넘나들며 전쟁물자를 날라 국군장병들이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일조했다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최종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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