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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고령지역 세거성씨(世居姓氏) 연원(淵源)을 찾아서

주간고령 편집부 2019-01-27 (일) 18:57 2개월전 201  


안동권씨(安東權氏) 추밀공파(樞密公派), 복야공파(僕射公派)

 

 

본지는 ‘고령지역 세거성씨(世居姓氏) 연원(淵源)을 찾아서’를 격주로 기획 연재한다. 씨족연원(氏族淵源), 현조(顯祖), 고령입향(高靈入鄕) 내력 및 시기, 입향조(入鄕祖) 이 후 역대 인물 등을 문헌적 고증(考證)을 근거로 밝힘으로써 각 문중 고유의 씨족연원(氏族淵源), 열조(烈祖)들의 위업(偉業), 올곧은 정신 및 문화유산(文化遺産)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코자 하오니 관심 있는 문중들의 많은 참여를 바라며, 이번호에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추밀공파(樞密公派), 복야공파(僕射公派)를 소개한다.

 

 

1. 씨족연원(氏族淵源)

(1) 시조(始祖) 권행(權幸)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始祖) 권행(權幸)은 대대로 안동에 살던 토족(土族)으로 본래 이름은 김행(金幸)으로 성은 신라 김씨의 후예이며 김씨(金氏)이나 그의 상계(上系)는 확실치 않다. 후삼국(後三國)의 난세(亂世)에 김행(金幸)은 전략적 요충지(要衝地)인 고창(古昌 : 현재 안동)을 방수(防守)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고 경순왕 3년(929년) 10월 후백제왕 견훤(甄萱)이 고창(古昌)을 포위하니 성주(城主) 김선평(金宣平) 및 장정필(張貞弼)과 더불어 창의(倡義)하여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도와 이듬해 경순왕 4년(930년) 1월 병산회전(甁山會戰)에서 견훤군(甄萱軍)을 격파하였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함에 있어 고려 태조는 공에게 “행(幸)은 능히 기미(幾微 : 낌새)를 밝혀 귀순(歸順)하였으니 권도(權道 :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의 적절함에 통달(通達)한지라 가히 권도(權道)가 있겠다(能炳機達權)”하고 권씨(權氏)로 성을 하사하고 대상(大相) 벼슬을 내렸다. 고려 태조의 삼한통일(三韓統一)을 도와 삼한벽상삼중대광(三韓壁上三重大匡)에 오르고 아부공신(亞父功臣)에 책록(策錄)되었으며 태사(太師)에 제수(除授)되었다. 한편 고창군(古昌郡)은 이름을 바꿔 안동부(安東府)로 승격시키고 태사공(太師公)의 식읍(食邑)으로 하였다. 생몰년(生沒年)은 미상이다.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인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祠堂)인 태사묘(太師廟)로 안동시 북문동 23번지에 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다.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천등산 남쪽 조화곡 자좌(子坐)에 있다.
(2) 분파(分派)
안동권씨의 분파(分派)는 10세조(十世祖)를 파조(派祖)로 하여 15개파로 나누어진다. 수중공파(守中公派), 부호장공파(副戶長公派), 추밀공파(樞密公派), 복야공파(僕射公派), 동정공파(同正公派), 좌윤공파(佐尹公派), 별장공파(別將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시중공파(侍中公派), 급사중공파(給事中公派), 중윤공파(中允公派), 군기감공파(軍器監公派), 정조공파(正朝公派), 검교공파(檢校公派), 호장공파(戶長公派)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권수중(權守中)을 중시조(中始祖)로 모시는 수중공파(守中公派)는 권행(權幸)의 직계종가(直系宗家)로 여기고 있으며, 추밀공파(樞密公派)와 복야공파(僕射公派)가 안동권씨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3) 우리나라 최초 족보인 성화병신보(成化丙申譜)를 간행 
성종 7년(1476년) 간행된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족보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성화병신보(成化丙申譜)라 함은 성종 7년(1476년)이 명나라의 제8대 황제인 헌종(憲宗) 재위기간의 연호(年號)가 성화(成化)이며 성화연간(成化年間)에 만들어진 것이라 하여 성화보(成化譜)라 부르며 병신년(丙申年)에 만들어져 성화병신보(成化丙申譜)라 부른다.
(4) 안동권씨 파별 분포 현황
추밀공파(樞密公派) 후손들은 성산면 기족리에 동족부락을 형성하여 세거하고 있으며 복야공파(僕射公派) 후손은 개진면 구곡2리 봉골마을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 가고 있다.

2. 현조(顯祖)


(1) 고려(高麗)
① 권수평(權守平 : ? ∼ 1250년)
보승별장(保勝別將) 부호장(副戶長) 중윤(中允)을 지낸 권중시(權仲時)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대정(隊正)으로 벼슬길에 나아가고 권귀자제(權貴子弟)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견룡(牽龍 : 고려시대 궁궐을 지키던 숙위군)에 선발되었으나,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양하여 역시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 뒤에 관직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이르렀다. 공은 추밀공파(樞密公派)의 파조(派祖)가 되었다.
② 권수홍(權守洪)
보승별장(保勝別將) 부호장(副戶長) 중윤(中允)을 지낸 권중시(權仲時)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향직(鄕職)인 부호장(副戶長)을 지냈으나 군기감(軍器監)을 증직(贈職)받았고 후손들이 크게 귀현(貴顯 : 지위가 높고 귀하여 이름이 유명함)하여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상장군(上將軍)에 가증(加贈)되었다. 공은 복야공파(僕射公派)의 파조(派祖)가 되었다.
③ 권보(權溥 : 1262년 ∼ 1346년)
자가 제만(齊滿)이며 처음 이름은 권영(權永)이다.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권단(權)의 아들로 태어났다. 충렬왕 5년(1279) 18세에 과거에 급제했으며, 이듬해에 다시 전시(殿試)에 급제한 후 거듭 승진해 첨의사인(僉議舍人)이 되었다. 충선왕이 왕위에 올라 사림원(詞林院)을 설치하자 공은 박전지(朴全之) 등과 함께 학사가 되었고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임명되었다. 충렬왕이 복위하자 공과 조간(趙簡)·김태현(金台鉉)·김우(金祐)에게 관리의 선발과 임명을 맡겼다. 밀직학사(密直學士)로 승진하고 여러 번 옮겨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가 되었다. 충선왕이 복위하자 그를 찬성사(贊成事)·판총부사(判摠部事)로 임명하고 7품 이하의 무관을 선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충숙왕 때 첨의정승(僉議政丞)·판총부사(判摠部事)로 임명하고 영도첨의사사사(領都僉議使司事)·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으로 올렸으며 추성익조동덕보리공신(推誠翊祚同德輔理功臣)의 칭호를 내려주었다. 또한 정동행성원외낭중(征東行省員外郞中)·왕부단사관(王府斷事官)을 지내기도 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④ 권한공(權漢功 : ? ∼ 1349년)
호는 일재(一齋)이며 첨의평리(僉議評理) 권책(權頙)의 아들이다. 충렬왕 때 과거에 급제해 충렬왕 20년(1294년) 직사관(直史館)에 임명되고 원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왔다. 충선왕 1년(1309년) 밀직부사(密直副使), 1310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1311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밀직사(密直使), 1312년 첨의평리를 역임하였다. 관직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렀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일찍이 원나라의 명을 받아 태자좌찬선(太子左贊善)이 되었다. 시호는 문탄(文坦)이다.
⑤ 권중화(權仲和 : 1322년∼1408년)
자는 용부(容夫)이고 호는 동고(東皐)이다.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권한공(權漢功)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공민왕 2년(1353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우·좌부대언(右左副代言)을 거쳐 지신사(知申事)로 전선(銓選 : 사람을 가리어 뽑는 것)을 담당하였고 우왕 3년(1377년)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시험을 주관했으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을 역임하였다.
태조 2년(1393년)에 삼사좌복야(三司左僕射)로 영서운관사(領書雲觀事)를 겸임하면서, 새 도읍지 한양의 종묘·사직·궁전·조시(朝市)의 형세도(形勢圖)를 올렸다. 1396년에는 사은진표사(謝恩進表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398년 예천백(醴泉伯)에 봉해졌다. 태종 4년(1404년) 우의정(右議政)이 되었다. 고사(故事)를 비롯해 의약·지리·복서(卜筮)에 통달하고 전서(篆書)에도 능하였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2) 조선
① 권근(權近 : 1352년 ~ 1409년)
초명(初名)은 진(晋)이고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이며 호는 양촌(陽村)이다. 검교 의정부 좌정승(檢校議政府左政丞) 권희(權禧)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공민왕(恭愍王) 18년(1369) 문과에 급제한 후 춘추관(春秋觀) 검열(檢閱)이 되고, 우왕(禑王) 때 예문관응교(藝文館應敎)·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를 거쳐,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우왕 1년(1375년) 정도전(鄭道傳)·정몽주(鄭夢周)와 같이 친명정책(親明政策)을 주장하였으며 명나라 예부자문(禮部咨文)을 도당(都堂)에 올리기 전에 몰래 뜯어본 죄로 우봉(牛峯)에 유배되었다. 새 왕조에 출사(出仕)하여 예문관대학사(藝文館大學士)·중추원사(中樞院使) 등을 지냈다.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화산군(花山君)에 봉군되고, 정종 때는 정당문학(政堂文學)·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대사헌(大司憲) 등을 역임하면서 사병제도(私兵制度)의 혁파(革罷)를 건의, 단행하게 했다. 태종 1년(1401년)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이 되었고, 대사성(大司成)·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를 거쳐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이사(貳師) 등을 역임하였다. 성리학자(性理學者)이면서도 사장(詞章)을 중시해 경학(經學)과 문학(文學)을 아울러 연마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② 권거남(權居南)
초명(初名)은 약(約)이고 태종 2년(1402년) 문과에 급제한 후 거남(居南)으로 개명(改名)하였다. 봉익대부(奉翊大夫)로 치사(致仕)하였다.
③ 권준(權蹲 : 1405년 ~ 1459년)
자는 오미(五美)이고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권근(權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종 9년(1427년) 공신(功臣)의 아들로서 감찰(監察)에 기용되어 호조좌랑(戶曹佐郞)이 되었다. 세종 16년(1434년) 종부시판관(宗簿寺判官)으로 재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강원도와 함길도에 파견되었고 돌아와 지평(持平)이 되었고, 1450년 음죽현감(陰竹縣監)을 거쳐 1452년 좌우부승지(左右副承旨)를 역임하였다. 단종 1년(1453년) 우승지(右承旨)로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수양대군(首陽大君)에 협력하여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에 책록(策錄)되고 대사헌(大司憲)에 올랐다. 세조 1년(1455년) 안천군(安川君)에 봉해지고 한성부윤(漢城府尹)·이조참판(吏曹參判) 등을 거쳐 세조의 즉위와 함께 형조판서(刑曹判書)가 되었다. 세조 5년(1459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안숙(安肅)이다.
④ 권혜(權惠 : 1424년 ∼ 1486년)
형조판서(刑曹判書) 권준(權蹲)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종 8년(1477년) 정월 18일 성종실록에 임금이 상참(常參 : 약식 조회)을 받고 경연(經筵)에 임하여 “행 대호군(行大護軍) 권혜(權惠) 등 5인이 윤대(輪對)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음직(蔭職)으로 충청도(忠淸道) 정산현감(定山縣監 : 청양군 정산면의 옛이름)을 지냈다. 
⑤ 권중(權重)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를 지낸 권사원(權思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봉직랑(奉職郎)의 품계를 받은 후 통정대부(通政大夫) 행(行) 하양현감(河陽縣監)을 지냈다. 생몰년(生沒年)은 미상(未詳)이다. 하양공파(河陽公派) 파조(派祖)이다.

3. 고령(高靈) 입향(入鄕)


(1) 세조 때에 복야공파(僕射公派) 후손인 처사(處士) 권처의(權處義)가 합천에서 우곡면 속리에 입향하였으니 안동권씨 후손 중에서 최초로 고령에 시거(始居)하였다.
(2) 추밀공파(樞密公派) 후손으로 사직(司直) 벼슬을 지낸 권구(權懼)가 중종 19년(1525년) 정쟁(政爭)을 피하여 충주(忠州)에서 성산면 기족리에 입향하였다.
(3) 숙종 때에 절충장군(折衝將軍)의 품계를 받은 권시추(權時樞)가 합천군 초계에서 개진면 구곡리 봉골마을에 입향하였다.

 

4. 입향조 이후 역대 주요인물


(1) 조선시대
① 권구(權懼 : 1481년 ∼ 1532년)
초명(初名)은 선직(善直)이고 자는 문환(文桓)이며 호는 만오(晩悟)이다. 정산현감(定山縣監)을 지낸 권혜(權惠)의 네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종 5년(1510년) 4월 15일 중종실록에 “이병정(李秉正)·권구(權懼)·유경(柳坰) 등이 왜군을 정토(征討)할 것을 의논하자 정토할 것을 전교(傳敎)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무관(武官)인 사직(司直)을 지낸 것으로 판단된다.
② 권시추(權時樞 : 1680년 ∼ 1771년)
자는 택현(擇賢)이고 호는 양헌(陽軒)이다. 처사(處士) 권두동(權斗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생장(生長)하면서 소학(小學) 읽기를 좋아하였고 부모님을 섬기는 데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여 봉양하였다. 위중한 병세(病勢)를 살피기 위하여 그 대변(大便)을 맛보고 부모님을 소생시키기 위하여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입에 넣는 등 지극한 효행을 다하였으며 거상(居喪)에 예(禮)를 다하여 수질(首絰)과 요대(腰帶)를 벗지 않았다. 수직(壽職)으로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후손들이 공의 효행(孝行)과 학덕(學德)을 기리기 위하여 1960년 조양재(朝陽齋)를 세워 향사(享祀)를 받들고 있다.
③ 권병유(權丙有 : 1833년 ∼ 1903년)
초명(初名)은 유섭(有燮)이고 자는 덕일(德一)이고 호는 송재(松齋)이다.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증직(贈職)된 구석(龜錫)과 경달(慶達)의 딸인 증숙부인(贈淑夫人) 신창표씨(新昌表氏) 사이에서 순조 33년(1833년)에 태어났다. 고종 11년(1874년)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오위장(五衛將)에 올랐다.
(2) 근∙현대 인물
※ 추밀공파(樞密公派)
① 권영만(權寧晩 1931년) : 육군 준장, 1군사령부 작전참모
② 권오상(權五祥 1932년) : KBS 대구방송국 아나운서, 편성국장
③ 권영환(權寧煥 1933년) : 통일주최 국민회의 대의원, 동고령단위농협조합장 대구광역시 동구 2대 구의원 및 구의회 의장
④ 권동용(權東勇 1940년) : 최김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 단국대 교수
⑤ 권영규(權寧奎 1941년) : 해군 중령, 국방대학교 교수
⑥ 권영세(權寧世 1949년) : 아동문학가
⑦ 권영규(權寧圭 1941년) : 세방그룹 사장
⑧ 권국명(權菊命 1942년) : 대구가톨릭대학교 인문대학 인문학부 교수
⑨ 권영웅(權寧雄 1944년) : 대구지방법원 이사관
⑩ 권오성(權五成 1947년) : 경북도 유교문화권 개발단장, 울진군 부군수
⑪ 권영석(權寧石 1954년) : 대구고등검찰청 검사
⑫ 권영구(權寧九 1958년) : 제4대 고령군의회 의원
⑬ 권기영(權奇英 1967년) : 성균관대학교 교수, 삼성서울병원 병리과 전문의
⑭ 권영삼(權寧參 1969년) : 동아대학교 수학과 교수
⑮ 권영우(權寧祐 1970년) : 육군 대령
⑯ 권영교(權寧敎 1971년) : 변호사, 권영교 법률사무소 소장
⑰ 권오성(權五成 1972년) : 미래에셋(주) 상무이사
⑱ 권동호(權東鎬 1973년) : 원광대학교 교수
⑲권오석(權五錫 1973년) :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등법원판사
⑳ 권영필(權寧必 1979년) :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복야공파(僕寺公派)
① 권수용(權壽龍 1934년) : 국제라이온스클럽 지구 회장
② 권선봉(權仙鳳 1940년) : 개진면 명예 면장, (주)협성그룹 회장
③ 권태안(權泰安 1940년) : 세무사
④ 권칠용(權七龍 1946년) : 덕성섬유 대표
⑤ 권중암(權重岩 1949년) : 쌍용건설 상무이사
⑥ 권태고(權泰高 1957년) : IBK 기업은행 리스크관리부장, 런던 지점장
⑦ 권태휘(權泰輝 1957년) : 동고령단위농협조합장
⑧ 권태명(權泰明 1959년) : 삼성화재 전무이사, 삼성카드 부사장
⑨ 권영길(權永吉 1959년) : 공학박사, 경남대 교수
⑩ 권태수(權泰秀 1959년) : 인천공항세관 서기관
⑪ 권윤정(權允正 1963년) : 의학박사, 병원장
⑫ 권영희(權寧熙 1964년) : 경북지방경찰청 제1부 경무과 청사이전팀장 경정
⑬ 권중부(權重富 1964년) : NH농협은행 고령군지부 및 성주군지부 지점장
⑭ 권태경(權泰慶 1966년) : 대구미르치과원장
⑮ 권중수(權重秀 1967년) : 사무관, 고령군청 관광진흥과장 

 

 

자료 제공  : 추밀공파 권오일(權五一),
                   복야공파 권준일(權俊一)
집      필  : 향토사학자 이동훈(李東勳)
정      리  : 최종동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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