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9.19 (목)

<최종동의 에세이> 뛰지 말고 걷자!

주간고령 편집부 2019-08-17 (토) 16:47 1개월전 30  


편집국장 최 종 동


열차를 타고 가다 목적지 근처에 오면 어김없이 차내 방송에 “잠시 후 ○○역에 도착 예정이오니 열차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서지 마시고 잃으신 물건이 없는지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하고 친절한 안내 방송이 나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입구쪽으로 나오라는 신호로 착각하는 건지 경쟁적으로 입구쪽으로 몰려나가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본다.
어디 그뿐인가? 열차에 내려서도 마치 단거리 선수인양 계단을 뛰어 오른다. 구두굽 소리가 마치 탭댄스를 연상케 한다. 그러한 분위기면 아무리 느긋한 사람도 휩쓸리게 되고 급하기 마련이다.
조급증인 ‘빨리빨리’가 대한민국 국민성이라고 외국인들 사이에선 정평이 나 있는 지도 이미 오래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의 여행지 음식점에서도 주문 후 느긋하게 기다리며 정담을 나누는 외국인들에 반해 재촉하는 사람은 한국인들뿐이라니 낯 뜨거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교통문화를 한 번 살펴보자. 주행 중 자동차가 횡단보도를 가로막고 멈춰선 풍경은 다반사고 정지선을 지키고 섰다손 치더라도 신호가 바뀌기 직전 뭉기적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말하자면 사전 출발 자들이 많다. 그나마도 그러지 않으면 뒤차가 어김없이 빵빵거린다. 빨리 가자고···.
이렇게 우리는 급한 무리들 속에서 휩쓸리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 더 얘기하자. 주행 중에 차선을 바꾸려고 방향지시등을 켜면 뒤차는 더욱 급히 달려든다. 끼워주기 싫다는 심보다. 양보의 미덕이란 사장된 지 오래된 것이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현실이 그렇다보니 편법으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급차선 변경하는 사람들이 있어 뒤따르는 운전자가 깜짝 깜짝 놀라는 일이 잦다. 이 모두가 자업자득이다.
이제는 우리의 경제 규모로 보아 비행기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 비행기도 마찬가지로 도착 예고 방송이 나오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안전벨트 푸는 소리, 핸드폰 켜는 소리, 출구로 우르르 몰려나가는 부류가 많아 참으로 꼴불견이다. 비교적 상류 레벨에서도 실상이 이러하니 서민들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자제해 달라는 안내방송 따위엔 신경 끈지 오래다.
이렇게 우리들은 조급하고 바쁘게만 살아왔다. 오죽하면 일상 주고받는 인사가 “요즈음 바쁘시지요?”일까.
여기서 왜 우리국민들이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바삐 살아가지 않으면 남에게 뒤처진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었을까? 거기엔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외세의 침략으로 수난을 많이 당하면서 살아온 민족이다. 가깝게는 불과 70여 년 전의 동족상쟁인 6,25를 전 후한 우리 삶의 모습은 찌든 가난의 연속이었다. 전후(戰後) 세대들은 보릿고개의 실상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당시 농업이 주를 이뤘으니 농사에서 얻어진 먹거리 외에는 먹을 게 없었지만 좁은 땅에서 얻어진 수확물로는 국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호구지책으로 나온 것이 입도선매(立稻先賣)로 연명했던 춘궁기에 아직 햇곡식이 나오기 전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 인생의 한 평생 굽이굽이 고개가 많지만 ‘보릿고개’가 가장 힘들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그 후 정치적 불안으로 4,19학생의거를 거치고, 결국 은인자중하던 軍이 나서서 혁명을 하여 기아에서 해방을 위해 많은 노력 끝에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된다. 새마을운동은 민족의 진로를 확 바꾸어 놨다. 그리고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가는 절체절명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쉬엄쉬엄 여유부릴 틈도 없었고 앞뒤 돌아볼 새도 없이 허겁지겁 달려오다 보니 이렇게 급해졌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생각해 보면 누굴 탓하기 전에 우리 모두에게 처해진 운명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경제규모가 세계에서 12,3위를 달리게 되었으니 한 템포 늦춰 좀 쉬엄쉬엄 가도 될 것 같으나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게 어려운가 보다.
그래서 나 혼자만이라도 지금부터는 ‘뛰지 말고 걷자’를 모토로 정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 이지만 지금부터는 이웃도 돌아보고 그 간 격조했던 친구들도 찾아보고 여유를 되찾아야 할 것 같다.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닌 말 그대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미력이나마 동참해서 서둘지 않는, 보다 안정된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게 나만의 욕심일까···?.

Copyright ⓒ 주간고령.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