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19.04.21 (일)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바다를 설명할 수 없다

주간고령 편집부 2019-04-14 (일) 10:40 7일전 7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생태적인 환경의 차이, 성장하면서 터득해 가는 나름대로의 지혜, 또는 방식, 자신이 습득한 지식이나, 지성적인 것들…


그렇게 저마다 연륜으로 쌓여지는 삶의 기술은 각양의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며, 한 인격체로서 상대에게 평가 받게 된다.


어떤 이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이 시대를 아주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이는 시대 상황을 아주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삶의 방법이나, 삶의 태도, 스스로 형성된 가치관은 어떤 신앙의 힘보다도 강해 보이기도 한다.


근간 모임에 가보면 이 시대의 정치얘기로 갑론을박 하다가 헤어진다. 그리고 그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정치인보다 더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도 있다. 모두가 정치 평론가들로 보이기도 한다. 저마다 개성과 환경, 취향이 다르듯 살아가는 것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설명해줄 수 없다. 내가 보는 세상이 크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가장 위대하고, 내가 뛰고 있는 시간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장자(莊子)가 말하는 우물 안 개구리, 정저지와(井底之蛙)이다.


우물안의 개구리가 동해바다의 거북에게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즐거운가, 나는! 우물 난간에 폴짝거리며 노닐다가 피곤하면 깨진 우물 벽에 들어가 쉬며, 물속에서는 헤엄치다 피곤하면 턱을 물 위에 내놓고 쉬노니. 뻘 속에 뛰어들면 몸과 발등을 숨겨 위험을 피할 수 있지. 주변을 둘러보아도 나만 한 장구벌레나 올챙이, 우물을 독차지한 즐거움이란 더할 나위 없다네.


그랬더니 동해의 거북이가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이렇게 들려주었다. ‘바다는 천 리로도 그 넓이를 재지 못하고, 천 길로도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 우왕(禹王)의 시대, 10년에 9년 동안 홍수가 쏟아졌지만 물이 불어나지 않았고, 탕왕(湯王)의 시대, 8년에 7년 동안 가뭄이 타들어 갔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그만, 물이 들어오고 나가도 그만이라, 이것이 바다의 큰 즐거움이라네.’ 이 말을 듣고 우물 속의 그 개구리는 깜짝 놀라 얼이 빠져 버렸다고 한다


우물 속에 있는 개구리에게는 바다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다. 우물 안의 한정된 공간에 갇혀있는 개구리는 우물로 드러난 공간 외에는 상상할 수가 없다. 한 계절 여름만 살다간 곤충에게는 겨울날의 눈과 얼음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가 없다. 편협한 지식인에게는 진정한 도의 세계를 설명해 줄 수가 없다. 그 사람은 자신의 수준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한정된 지식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장자는 이 고사를 통해 3가지 집착과 한계를 파괴하라고 충고한다.

첫째, 자신이 속해있는 공간을 파괴하라.
둘째,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을 파괴하라.
셋째,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파괴하라.

우물 안의 개구리는 공간에 구속되어 있고, 여름 벌레는 자신의 시간에 갇혀있으며, 지식인은 지식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학벌, 자신이 습득한 지식들의 대단함은 어느 누구도 자신보다 똑똑해선 용납되지 않는, 관념의 늪에 사로잡혀 있다.
이를 뛰어 넘어야 한다. 내가 보는 하늘만이 옳다고 단정하지 말고, 다른 이들의 하늘도 인정해 주는 여유, 그게 진정 대인(大人)이다.

*사외(社外)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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