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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나라

주간고령 편집부 2019-01-22 (화) 02:41 2개월전 34  


추억속의 우리 집   

 

 

       
                                             이  점  옥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있는 이곳은 어디인 것일까?
사방천지가 산으로 둘러싸여 산에는 푸르름이 사라져 버린 청량한 빛으로 온갖 나무들이 우뚝 솟아 있다. 오직 한 길 외길만이 사람들이 오고갈 수 있게 해 줄 뿐.


지난 장마에 쓸려내려 무너진 길에는 몇 개의 돌이 옆에서 길을 지탱해주며 차들이 오고 갈 때마다 차 무개를 이기느라 낑낑대고 있다. 이제 그만 무너져 내렸으면……. 그럼 차들도 더 이상 오지 못할 텐데. 아마 산 속의 절과도 같이 고요한 천지가 될 꺼다. 밤에 우는 새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처음 부모님을 따라 이곳으로 집을 옮겼을 땐 황량한 들판의 외로운 나무처럼 동네에서 1킬로쯤 떨어진 외딴집이었다. 마당은 넓은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니 외딴 골짜기에 홀로 떨어진 듯 한 쓸쓸함이 들었다. 지금은 오히려 조용하니 따로 산 속에 수도하러 안 가도 되고, 떠드는 동네 아이들 소리 안 들려서 조용하고, 이런 별천지가 따로 없는 것만 같다.


봄이면 마당엔 분홍색 화사한 벚꽃이 저마다의 팔을 벌려 벌을 맞이하고, 마치 눈이 오듯 꽃잎을 한 잎 두 잎 멀리 날려 보낸다. 집 뒤의 산에도 때맞춰 연록빛 잎들이 파릇파릇 색깔을 뽐내고 있다. 집을 빙 둘러싼 산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봄을 맞이할 때 나도 닫힌 내 마음을 열어 봄을 맞이하고 싶다. 들판엔 온갖 풀들과 야생 꽃들이 조용히 언 땅을 뚫고 목을 내민다.


엘리어트는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다. 4월은 언땅을 녹이고 새싹을 키워내니 축복된 달이다.


논두렁 위엔 어디를 가나 쑥이 지천으로 자라나 여기저기에 동그라니 모여서 “어서어서 데려가 주세요” 하듯 목을 길게 내밀고 있다. 햇살이 따스하거나 포근한 날이면 엄마와 같이 쑥을 뜯어 쑥털털이며, 쑥국 또는 쑥떡을 해서 맛있게 먹곤 한다. 쑥의 향긋하고 신선한 향은 어느 향기보다도 내 코를 자극한다.

 지천에 널려 있는 쑥은 흔하지만, 그 향은 어느 것도 따라 올 수 없는 향을 가지고 있다. 나도 언제나 쑥처럼 푸르고 신선한 향을 간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시간은 금방이다. 산은 하루하루 짙어가고 푸르름을 뽐낸다. 저처럼 고요하고 오만하고 지적인 존재가 과연 있을까? 모든 것을 감싸 안은 저 웅장함이란…….


내가 본받아야 할 존재는 산이 아닐까? 언제고 제자리에서 변화하고 노력하고 온갖 만물을 감싸주고 지켜주며 키워내니까 말이다.


여름이 무르익을 무렵이면 눈처럼 휘날리던 벚꽃은 온데간데없고, 푸르른 잎엔 매미들이 맴 매~엠 거리며 목소리를 자랑한다. 안마당에선 백일홍이 뼈만 남은 가냘픈 가지에서 초록빛 싹을 틔워낸다. 처음 백일홍을 봤을 때 죽은 나무가 왜 저기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런 나무가 겨울을 이기고 봄이 오고 여름이 왔을 때 피워내는 싹을 봤을 때 새삼 감탄했다. 죽은 나무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푸르른 잎과 진홍빛 꽃을 피워 내다니……. 모든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것 같다. 세상 모든 만물은 내가 아는 만큼 느껴지는 것 같다. 집 앞 논에선 푸른 벼들이 쭉쭉 뻗어 어느새 아이 키만큼 자라나 있다.


아침이면 벼이삭엔 동그랗고 청아한 이슬방울들이 거미줄에 엉겨 붙어 영롱한 빛을 자아낸다. 해가 뜨면 곧 사라지겠지만 어느 순간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광경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계화가 시작되어 지금은 거의 기계로 다 하지만 그 전에는 모두 손으로 다 했었다. 모판내기, 모심기, 벼 베기, 타작 등 어느 것 하나 손이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온 가족이 모여 줄에 맞춰 모를 심고 난 후 논에서 먹는 새참은 열심히 일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맛이 아닌가 싶다. 요새는 뭐가 그리 바쁜지 다들 모심기 때고, 어느 때고 가족이 모일 일이 적으니 과학의 발달로 손은 편해졌을지 몰라도 예전과 같은 정은 우러나지 않는 것 같다.


백일홍이 소리 없이 질 무렵이면 들녘엔 어느 새 추수가 한창이다. 백일홍은 백 일 동안 꽃이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다. 마당엔 백일홍 꽃잎이 수북이 떨어져 바람에 이리저리 쓸리는 동안 우리 집도 추수에 한창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점옥 작가 프로필
고령공공도서관 주부독서회 회장
대구형상시학 회원
동서문학상 맥심상 수상
매일신문 여성백일장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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